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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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고요한 일상적인 삶의 순간들.

 ​켄트 하루프의 <축복>은 마치 클로버밭에 들어가 그 많은 클로버들 가운데 행운의 상징인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비로소 힘이 빠지면 바로 옆에서 하늘거리고 있는 세입클로버를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나를 더 부각시킬 수 있는 '행운'을 찾아 평생을 헤메이다가 비로소 일상적인 삶의 순간이 얼마나 더 행복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것처럼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이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인지를 켄트 하루프의 <축복>이 말해준다.


언제인지부터 자각하지 못 할 정도로 '죽음' 이라는 주제에 대한 책을 피해왔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이 삶과 죽음은 떨어질 수 없는 주제이건만 지금까지도 나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싫었다. 마치 내가 눈을 질끈 감고 피한다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보다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무거움이 아니 무서움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서 조차 죽음을 자세히 다루는 책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이 주제가 참 싫다. 언젠가는 이 무거운 주제를 깨고 마주 볼 날을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죽음이라는 것이 무섭다.


켄트 하루프의 <축복>은 대드 루이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77세의 나이로 홀트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고, 그에게 아내와 딸과 아들이 있다. 그는 암을 선고 받았고 그에게 남아있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에게는 약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고, 작가인 켄트 하루프는 담담하면서도 고요하게 그의 일상을 보낸다. 한 달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철물점을 딸 아이에게 넘겨 주려 하고, 때때로 아들이 사춘기때 벌인 일을 목격하고 아들을 못마땅해한다. 어린 시절 그의 곁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떠올리는 장면이 못내 그리워라는 장면이라기 보다는 그 어떤 감정의 고조 보다는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대드 루이스를 비롯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담담한듯 그려낸다. 각각의 상황들에 의해 그들은 저마다의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주는 '순간'의 힘은 누군가에를 지탱해주는 힘이 아닌가 싶다. <축복>에서의 대드 루이스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잘못을 한 이를 무한정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인채로 살아가다가 어느날 삶을 놓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대드 루이스가 물건을 팔고 장부를 속이고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던 직원 클래이턴을 과감없이 그만두게 한 일에 대해 그가 매몰차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를 용서해 주었더라면 그가 다시 그런 일이 없었을까? 그 이후 일련의 일이 도미노처럼 일어났지만 그는 그만의 사과로 다시 클레이턴의 식구를 도왔다.


따옴표가 없어서 이것이 문장인지 그들의 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켄트 하루프가 그려낸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네잎클로버를 찾는 사람들 숲에서 조용히 앉아 세잎클로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그가 그려낸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조용하고, 잔잔하다. 그런 잔잔함이 마음 속에 하나 둘 채워지면 이내 켄트 하루프가 그린 <축복>이 내 마음 가득히 담겨져 이 소설을 음미하게 된다. 화려하거나 소란스러운 풍경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잔잔함이 마음 속 깊이 물들었던 시간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두 분이 사랑이 뭔지 알고 계시다는 걸 알겠군요. 다만 거기에 제 생각을 조금 덧붙여보겠습니다.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잖습니까.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진실되게 살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의 이면을 보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도 용납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도 용서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전부랍니다. 사랑은 인내하며 무한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참고 견딥니다. 두 분이 남은 삶 동안 함께하며 서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삶이 아주 길기를 바랍니다. - p.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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