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빨강은 없다 -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2
김경서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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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느낌있게 미술의 개념을 알아가는 과정


 책의 제목이 멋있게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 개체이지만 다름 보다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때때로 획일적인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같은 색을 띄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미술이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다른 색채와 다른 향을 품은 작품들이 많아 언제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학생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쉽게 개념을 이해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미술교사와 학생 보라의 선문답을 통해 미술의 다양성과 이해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경험하고, 표현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누어 미술을 바라보고 있다. 창비 청소년 문고 시리즈이기 때문에 어른의 시각 보다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미술을 설명하고 있다. 많은 도판을 통해 그림을 설명하기 보다는 아이와의 질문과 답문을 통해 그림을 가리키는 형식이기에 보기에 더 편했다.현대미술을 보는데 있어서는 늘 주저하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눈을 잘 돌리지 않는데 몬드리안이나 피카소, 자코메티, 백남준, 뒤샹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술 개념들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의 그림이 갖는 추상적인 느낌은 나에게 늘 먼 그대였고, 왜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을 통한 설명은 이제껏 이해하지 못한 추상화에 개념을 확실히 이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경어체의 책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학생에게 알려주듯 세심하게 설명해주는 미술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자세이기도 했다. 책을 보듯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 바라보는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 그들이 표현하고자 것을 주시 할 수 있는 안목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교사는 유도하고 있다. 솔직하게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자세.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라는 근원적인 물음. 우리가 미술시간에 느끼지 못했던 느낌들과 개념들이 세밀하게 숨어있다.


나에게도 이런 미술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더 깊이 미술에 대해 심취했을 것 같다. 미술이란 그저 손으로 만들고, 점수를 매기기 위한 하나의 시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시간이었다. 얇은 미술책을 시험 공부하기 위해 펼쳤을 뿐 깊은 이해가 없었던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개념을 배웠지만 마음에는 와닿지 않았던 순간들을 시간이 지나서야 스스로 배워가는 요즘 내가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무엇을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업의 과정을 더 휼륭한 가치로 받아들였던 만나라 작품과 안견의 '몽유유원도'에 대해 얽힌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세밀한 과정으로 정성스레 만든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지워버린다는 만다라 작품은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를 깨닫고 헛된 욕망을 지우는 과정이다. 승려들은 그것을 통해 수행하고, 작품의 결과게 집착하지 않는 연습을 배운다고 하니 미술이란 결과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무엇을 보고, 느끼는 것에 따라 명확해지는 미술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하고 개념적으로 그것을 부수고 다시 창조하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개념미술에 대한 개념이 재밌고, 고개를 갸우뚱 했던 현대미술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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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와 '아름답다'는 다른 판단이니까. 예쁘다는 건 조형에 대한 외적 판단이거든. 보라는 길앞잡이의 색과 형이 예쁘다고 했지? 색과 형은 조형의 기본 요소야. 겉으로 보이는 모양(형), 색, 밝기의 정도(명암), 재질의 느낌(질감), 볼륨이 있는 느낌(양감) 등이 바로 조형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지. - p.31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을 때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형상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입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까. 몬드리안은 형상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자연의 형상 속에서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추출해 내는 추상주의 양식을 개척했지. - p.46


그렇지 않아. 몬드리안이 추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완성한 것은 아니거든. 몬드리안은 자연의 구조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그 형상을 그리는 것에서 미술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 그런 다음 자연의 형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담긴 가장 기본적인 조형의 구조만을 남기는 것이 그의 추상화 과정이었지. 실제로 '추상(abstract)이라는 개념에는 '추출하다'라는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추상주의는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움의 핵심적 요소를 추출해 낸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 p.49


당연히 쉽지 않지! '나'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똑같이 그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똑같다고 말하려면 실제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잖아. 그렇지만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74~75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했어. "나는 내 조각을 한 손으로 들어 전시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 넣었다. 다섯 사람의 장정도 제대로 못 드는 커다란 조각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 자코메티는 최소한의 형상으로 고독한 현대의 인간상을 표현하려 했어.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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