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화상과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감정들.


 강렬한 눈빛, 눈 주위에 흐르는 세월의 흔적들, 굳건하게, 기개있는, 혹은 아련한 눈빛의 사내나 여인의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이 살았을 삶이 궁금하고, 그들이 집중하고 또 집중하며 그려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깊게 퍼져나간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거침없이 붓을 휘갈기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다. 때때로 자신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모델을 살 돈이 없어 거울을 보며 자신을 그린 화가도 있지만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많은 작품 중에서도 구도, 색깔, 인물이나 풍경을 표현한 것들이 제각기 다르지만 화가들이 그려낸 화풍은 같은 것이 없다. 한 화가의 작품을 오래도록 보다보면 보지 못한 작품을 마주쳤을 때 단번에 그 화가가 떠오르게 된다. 화가의 얼굴을 통해 내밀하게 드러내는 다채로운 감정들이 그들의 붓 속에서 표현되어 있고, 마치 옆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표정과 모습들이 마음 속 깊이 박혀 버린다. 오래전 철학자 <강신주의 감정수업>(2013, 민음사)을 통해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감정에 대해 세계문학과 함께 감정의 결을 느꼈다면 저자 박홍순이 쓴 <감정의 자화상>은 화가의 자화상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다.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상상, 열망, 투영, 허무, 수용, 우월, 울분, 상실, 고독, 공포, 인내, 결벽, 일탈에 이르기까지 자화상 속에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히 드러난다. 실레, 램브란트, 프리다, 쿠르베, 프로이트, 마그리트, 이쾌대, 들라크루아, 키르히너, 콜비츠, 뒤러, 아르테미시아, 이중섭, 고야, 누스마움, 드가, 고갱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미 그들의 화풍 속에서 드러낸 감정의 결이 화가의 얼굴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익히 그들의 화풍 속에서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감정의 선들을 저자는 헤세, 발자크, 톨스토이, 위고, 마르케스, 로브그리예, 강경애, 셰인스피어, 헤밍웨이, 린저, 괴테, 하디, 최인훈, 그라스, 케르테스, 부스케, 조이스, 볼테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감정과 결부시킨다. 읽어본 작품도 있지만 미처 접하지 못했던 소설들과 읽었지만 동화되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더해 감정의 색을 찾아낸다.


책이 보드랍게 잘 읽히기 보다는 거칠거칠한 면들이 많았지만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화가들의 자화상처럼 그들의 고뇌를,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더하니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서양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화가와 작품을 비롯해 아시아권 화가들과 작품들을 더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꽤 오래전 지인의 추천으로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사놓고 책이 바래도록 책을 펴지 못했다. 초반에 몇 장을 읽다가 다시 책을 덮곤 했는데 고야의 자화상을 보며, 다시 고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그라스의 책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실레의 작품은 생활 곳곳에, 책의 표지에 자주 등장했던 터라 익숙한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감정의 자화상>을 읽으면서 더 깊이 알게된 화가가 실레다. 짧은 생애지만 그의 분열적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들이 그림 속에 묻어나 있고, 그림 속 깊은 인물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화가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실레는 결혼 전 모델이었던 발리와 깊은 연인관계였지만 결혼은 이웃에 살던 다른 여인과 한다. 그의 그림에 있어 다소 외설적인 모습들이 발리와 함께 있었을 때 두드러졌지만 그는 결혼 후에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매력적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욕망들이 날큼하게 보여주는 강렬한 모습들이 화가 자신에게 모두 들어있는 것처럼 실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중 자화상>을 통해 표현해 했다. 


위의 사진 속에 아련한 눈빛의 남자인 르누아르의 모습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내라는 감정에 투영되는 화가였다. 그가 나타내는 빛감, 색채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그려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프리다 칼로처럼 건강하고 싶었으나 건강하지 못해 억누르는 아픔을 부여안고 그림을 그렸던 처럼 르누아르 역시 1888년 이후 만성 류머티즘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아련한 눈빛의 신사가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