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경이로움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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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지 않는 즐거움 


 이탈리아 로마에 갔을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이겠거니, 하면서 젤라토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처음 젤라토를 베어 문 맛은 강렬했다. 익숙하게 접했던 아이스크림 맛이 아니라 더 진하고 단맛이 강했다. 그 후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스페인 광장에서 먹었던 젤라토가 생각나 거기서 사 먹었던 맛있던 젤라토가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강한 맛에 적응을 못했지만 나중에는 맛있게 먹었던 한 입처럼 안드레아 데 카를로의 <불완전한 경이로움>은 자주 접하지 못해 생경했지만 읽다보면 젤라토처럼 은근히 중독되는 맛이 나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죠? 그 달콤하고 떫으면서 타닌 성분이 약간 느껴지는 확실한 맛을 아주 잘 보존했습니다. 더 순하게도 축축하게도 만들지 않고 본연의 맛의 정신을 포착했죠. 당신은 진실과 쾌락 사이의 정확한 정점을 찾았습니다." - p.116


갑작스러운 정전 때문에 밀레나가 일하는 젤라토 가게는 '비상상황'이었다. 점점 녹아드는 젤라토를 어디로 옮길 수 없었다. 휴가철이 지나 지나가는 행인도 별로 없었고, 누군가 많은 젤라토를 안기면 이상한 눈초리로 볼까봐 그녀는 인근 가게에 사정을 설명하고 젤라토를 먹어보라며 나누어준다. 그러다 한 통의 주문전화로 밀레나는 한 숨 돌리게 된다. 10kg의 젤라토를 그녀는 용기에 담아 배달을 나서고 그곳에서 비봉커즈 밴드인 리더 닉을 만나게 된다. '불완전하 경이로움'이라는 젤라토 가게를 연 밀레나는 누구보다 젤라토를 천연재료를 써서 최상의 젤라토를 만드는 것에 자부심이 강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


먹을 때도 녹아들기 이전의 맛을 고수하려는 젤라토의 맛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녀를 알아준 것은 그녀가 배달가서도 몰라봤던 한 남자였다. 술을 마시고 숙취로 기분이 다운 된 그의 집에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멤버들이 하나 둘 모이고, 세번째 결혼식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모든 일상이 배를 탄듯 울렁이는 불안감을 느끼던 그는 결혼을 하고자 마음 먹었지만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 상황은 앞으로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하게 만든다.


밀레나 역시 함께 동거를 하고 있는 비비안과의 생활이 평탄치 않다. 비비안은 밀레나가 임신을 하기를 원하고, 밀레나는 그것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비비안을 통해 배달 갔다가 만난 그 남자가 유명밴드인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은 깊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서로 알게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엄마의 무관심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닉은 어느 상대를 만나도 자신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다 에일리가 시킨 유명가게의 젤라토를 먹는 순간 맛에 반했고, 그는 '불완전한 경이로움'을 찾아간다.


자신을 반기지 않는 밀레나를 보고서도 그는 그녀가 젤라토를 만드는 곳에 발걸음을 디디고 그곳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돌아선다. 그는 일탈적인 스포츠를 즐기면서 날아올랐다가 추락하는 시간 속에서 밀레나와의 만남을 떠올린다. 그들이 마주하는 정점은 작지만 서로의 불안한 근원적인 물음을 그들이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유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깊은 사이라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관계의 모순과 혼란을 잘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안드레아 데 카를로의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더 재밌게,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다. 처음 젤라토를 먹었던 맛의 생경함을 느꼈던 것처럼 이전에 먹어보지 못한 맛의 면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경이로움은 왜 불완전할까요?"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기다린다. 그녀는 정답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농담으로 대답해야 하는지 의아했지만 결국 생각 없이 말해 버렸다.


"지속되지 않으니까요."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살폈다. 그의 시선은 아주 수용적이고 개방적이며 어떤 말을 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는 점에서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사라지죠. 그것을 가지고 있는 놀라움, 호기심, 사소한 관심, 재미, 쾌락, 즐거움과 같이요."


"맛있는 아이스크림처럼 말이죠."


그녀는 자신과 그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면서 이상하게도 그런 점이 전염되어 자신도 비슷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은 부드러움과 견고함이 매혹적으로 균형을 이뤄 맛을 아주 적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차갑죠. 그럴 때 맛볼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그러다가 금세 다 먹게 되죠. 그 맛이 똑같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 더 먹을 수도 없어요." - p.120~121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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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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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서막


 누군가의 고백을 들으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 책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한 없이 무겁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들리는 말로 설명되는 무엇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만 전해주는 목소리로 들려오는 간곡하게, 묵직하게 방점을 찍어온다. 책을 읽고 나서 마츠 다카코가 연기한 영화 <고백>의 예고편을 찾아 보았다. 소설처럼 영화의 전후반을 다 보지 못했지만, 소설 속 첫머리에 나오는 유코 선생의 모습은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고백이란 때때로 누군가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을 인간의 결핍을 하나의 악으로 만들어 법의 맹점을 잘 파고 들었다.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이야기라도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색은 달라질 수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인 <고백>은 누군가의 복수극이다. 아무런 정보없이 책을 펼쳤는데 책은 고요하게도 누군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교사는 교탁 위에 서서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사직을 하기 전 마지막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이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남자가 결혼하기 전 HIV감염 보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홀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였다. 미혼모로서 딸아이를 낳았지만 네 해 동안 그녀는 정성을 다해 길렀고, 사고로 죽었다던 딸아이는 사실 사고가 아닌 살해 당한 것이라고 유코는 이야기 한다. "그 범인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선생인 유코는 그간 A와 B에게 겪었던 일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가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경찰에게 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들이 수업 전 바로 먹은 우유에 마나미의 아빠의 혈액을 집어 넣었다고 고백한다.


완벽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한낱 교사가 아이들에게 강하게 뭐라 호소하다니 착각도 유분수 아닐까. 아이들에게 자기 인생관을 강요하고, 자기만족을 얻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결국 높은 곳에서 아이들을 굽어보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일 년의 휴직기간이 끝나고S중학교에 부임했을 때, 저는 자신에게 규칙을 정했습니다. 아이들을 이름으로 막 부르지 않는다, 최대한 같은 눈높이에 서서 정중한 말씨로 이야기한다, 이 두가지 입니다. - P.14~15


나이가 되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 소년법에 의해 유야무야 되느니 너희들에게 나는 이런 방법으로 끝을 맺겠다며 펀치를 날린 유코는 선생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시작된 일이 강아지에게 밥을 주러 간 딸아이에게 미치게 되고, 결국 수영장에 익사 되어 발견하게 된다. 학교 선생님이자 딸아이를 잃어버린 한 여자의 고백은 여기서 끝이난다. 그렇게 시작된 고백의 파장은 A인 슈야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B인 나오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렇게 번갈아 가며 성직자-순교자-자애자-구도자-신봉자-전도자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엇갈린 마음. 빗겨난 화살은 희생되지 않아야 할 누군가가 살해 당하고, 그들은 거리낌없이 자신의 결핍어린 마음을 누군가에게 비춰보려고 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 시작은 엄마와의 애정어린 관심이었고, 보살핌이었으나 서로가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은 달랐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정성을 다해 기른다는 의미. '모성'이라는 말의 색깔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을 정도로 '고백'은 저마다의 깊은 고백과 한숨으로 이야기가 뒤덮인다. 

조용한 독백의 이야기가 마치 나에게만 해주는 이야기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쪼여 들었다. 선생인 유코는 학교를 떠났지만, 그녀가 파 놓은 함정 속에 아이들은 저마다 삶을 갈구한다. 이기적인 암의 표현들이 난무했고, 그 속에 '우리 아이는 아닐 거라는' 빗겨난 모성이 그를 더 옥죄이게 만든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좋아하지기만을 기대했던 나오키의 엄마는 나오키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나빠지는 동시에 그녀가 믿고 싶었던 진실이 아닌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뭐든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가 언제나 들어줄 테지만, 의논할 마음이 들지 않을 때는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한테 털어놓는다 생각하고 여기에 글을 쓰렴. 인간의 뇌는 원래 뭐든지 열심히 기억하려고 노력한단다. 하지만 어디든 기록을 남기면 더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하고 잊을 수 있거든. 즐거운 기억은 머릿속에 남겨두고, 힘든 기억은 글로 적고 잊어버리렴." - P.121


내 아이를 믿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나오키의 엄마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결국 튕겨져나와 더 나쁜 상황으로 발현된다. 이야기는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전환되고 복수의 핏빛은 선순환되어 다시 돌아왔다. 이야기의 결말을 읽고 나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다.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나야 맞는 것일까. 시작점에 돌아와 다시 그녀가 읊조리는 고백을 듣고 다시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과연 이렇게 끝을 맺어야 그녀의 마음이 편했을까. 자꾸만 물음표 가득한 물음들이 가슴 속에 맺혀 온다. 부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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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빨강은 없다 -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2
김경서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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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느낌있게 미술의 개념을 알아가는 과정


 책의 제목이 멋있게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 개체이지만 다름 보다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때때로 획일적인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같은 색을 띄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미술이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다른 색채와 다른 향을 품은 작품들이 많아 언제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학생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쉽게 개념을 이해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미술교사와 학생 보라의 선문답을 통해 미술의 다양성과 이해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아름다움에 대해 경험하고, 표현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누어 미술을 바라보고 있다. 창비 청소년 문고 시리즈이기 때문에 어른의 시각 보다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미술을 설명하고 있다. 많은 도판을 통해 그림을 설명하기 보다는 아이와의 질문과 답문을 통해 그림을 가리키는 형식이기에 보기에 더 편했다.현대미술을 보는데 있어서는 늘 주저하기 때문에 그쪽으로는 눈을 잘 돌리지 않는데 몬드리안이나 피카소, 자코메티, 백남준, 뒤샹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술 개념들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의 그림이 갖는 추상적인 느낌은 나에게 늘 먼 그대였고, 왜 그렇게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을 통한 설명은 이제껏 이해하지 못한 추상화에 개념을 확실히 이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경어체의 책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학생에게 알려주듯 세심하게 설명해주는 미술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자세이기도 했다. 책을 보듯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 바라보는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 그들이 표현하고자 것을 주시 할 수 있는 안목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교사는 유도하고 있다. 솔직하게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자세.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라는 근원적인 물음. 우리가 미술시간에 느끼지 못했던 느낌들과 개념들이 세밀하게 숨어있다.


나에게도 이런 미술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더 깊이 미술에 대해 심취했을 것 같다. 미술이란 그저 손으로 만들고, 점수를 매기기 위한 하나의 시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시간이었다. 얇은 미술책을 시험 공부하기 위해 펼쳤을 뿐 깊은 이해가 없었던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개념을 배웠지만 마음에는 와닿지 않았던 순간들을 시간이 지나서야 스스로 배워가는 요즘 내가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무엇을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업의 과정을 더 휼륭한 가치로 받아들였던 만나라 작품과 안견의 '몽유유원도'에 대해 얽힌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세밀한 과정으로 정성스레 만든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지워버린다는 만다라 작품은 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이치를 깨닫고 헛된 욕망을 지우는 과정이다. 승려들은 그것을 통해 수행하고, 작품의 결과게 집착하지 않는 연습을 배운다고 하니 미술이란 결과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무엇을 보고, 느끼는 것에 따라 명확해지는 미술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하고 개념적으로 그것을 부수고 다시 창조하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개념미술에 대한 개념이 재밌고, 고개를 갸우뚱 했던 현대미술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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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와 '아름답다'는 다른 판단이니까. 예쁘다는 건 조형에 대한 외적 판단이거든. 보라는 길앞잡이의 색과 형이 예쁘다고 했지? 색과 형은 조형의 기본 요소야. 겉으로 보이는 모양(형), 색, 밝기의 정도(명암), 재질의 느낌(질감), 볼륨이 있는 느낌(양감) 등이 바로 조형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지. - p.31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을 때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형상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입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까. 몬드리안은 형상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자연의 형상 속에서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추출해 내는 추상주의 양식을 개척했지. - p.46


그렇지 않아. 몬드리안이 추상화를 그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완성한 것은 아니거든. 몬드리안은 자연의 구조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그 형상을 그리는 것에서 미술 작업을 시작했다고 해. 그런 다음 자연의 형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담긴 가장 기본적인 조형의 구조만을 남기는 것이 그의 추상화 과정이었지. 실제로 '추상(abstract)이라는 개념에는 '추출하다'라는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추상주의는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움의 핵심적 요소를 추출해 낸다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 p.49


당연히 쉽지 않지! '나'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똑같이 그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똑같다고 말하려면 실제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잖아. 그렇지만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명료하지 않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74~75


자코메티는 이런 말을 했어. "나는 내 조각을 한 손으로 들어 전시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 넣었다. 다섯 사람의 장정도 제대로 못 드는 커다란 조각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 자코메티는 최소한의 형상으로 고독한 현대의 인간상을 표현하려 했어.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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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파더 1~2 세트 - 전2권
안데슈 루슬룬드.스테판 툰베리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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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의 이야기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맞닥뜨리게 된다. 현실의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상상력이 더해진 드라마와 책은 이보다 더 약과일 때도 있고, 때론 이보다 더 쎄고 강하게 펀치로 날려버린다. 호러 영화를 보는 만큼이나 수컷들의 진한 이야기는 두 눈을 뜨고 스크린을 바라볼 수 없도록 잔혹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총을 쏘는 것 보다 더 잔혹한 현장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마다 눈을 질끈 감게 되지만, 인간에게 있어 폭력이란 자신의 힘을 우위로 정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게 돈이든 권력이든 약탈하기 위한 최소의 수단이기도 하다. 더 강하게, 더 악랄하게. 누군가를 내리 누를 수 있는 그들만의 힘. 보면 볼수록 고개가 절로 돌려지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악의 근원'이 궁금해 여지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펼쳐들었다.


오래 전에 <비스트>(2011,검은숲)를 통해 안데슈 루슬룬드 작가의 데뷔작을 접한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흡입력이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되는데 <더 파더> 역시 흥미진진한 리얼 크라임 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비정한 아버지를 둔 세아이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상과 단절하고 폭력으로 노출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의 삶. 아버지 이반은 큰 아들 레오에게 폭력적이게 살도록 노출시킨다.

남을 때릴 때는 어딜 노려야 하며, 두 동생을 네가 잘 지켜야 한다고 그는 계속해서 그에게 주입시킨다. 폭력적인 삶에 이골이 난 부인 마릿은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이반은 부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아내의 발길을 막는다. 가장 아이였던 빈센트만 데리고 나가려고 하지만 그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그녀에게 협박을 하고 결국 마릿은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하고 집을 빠져 나간다. 친정에간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복수를 감행하는 남자. 무엇이든 그에게 걸리면 용서란 없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실행을 하는 사람이므로.


세 아이를 거느린 가장이 어떤 것에도 참지 않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는 이미 세상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그의 그런 전적이 은행 강도를 벌이기 위한 시발점이었고, 그들은 완전무장한 강도단이 되어 현금수송 차량을 턴다. 레오를 추축으로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그를 쫓던 형사 브론크스는 자신의 불우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자신 역시 가족으로 인해 폭력에 노출되고, 그의 형 마저도 어린 시절 노출된 폭력으로 더 큰 폭력범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다.


읽는 내내 그들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 가족이라는 연대의 끈. 서로를 향해 총을 들이대는 상황 속에서의 두 사람은 폭력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실제 있었던 일을 작가 안데슈 루슬룬드와 스테판 툰베리는 날 것 그대로를 담아 아무도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지 그들의 살아온 결대로 읽다보니 절로 안타까움이 들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이 이 책에 이토록 잘 어울리는 말이라니. 그의 폭력에 무서워하던 소년은 시간이 지나 그와 닮아 있다는 말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온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실감나는 장면들과 숨막히는 심리전이 그야말로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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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눈앞의 현실 - 엇갈리고 교차하는 인간의 욕망과 배반에 대하여
탕누어 지음, 김영문 옮김 / 378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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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좌전> 해설서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름이 낯익은 저자의 이름이 눈에 사로잡는다. <한자의 탄생>(2015,김영사)과 <마르케스의 서재에서>(2017, 글항아리)에 이어 세번째로 <역사, 눈앞의 현실>이 출간되었다. 탕누어는 타이완 출생으로 프랑수아즈 사강과 같은 글을 쓰는 소설가 주텐신의 남편이기도 하다. 문자 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덕분인지 <역사, 눈앞의 현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동서양의 문학들이 앞다투어 예시로 전개된다. 분명 동양의 고전을 맛보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보니 중국의 고전 뿐만 아니라 경계를 넘어 세계의 모든 이야기가 다채롭게 들어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각각 한 줄기 도(道)의 빛이고, 한 가닥 한 가닥의 직선이며, 아주 고독한 것이라고 상상한다.​ - p.15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시대 역사서인 <좌전>의 해설서다. <장자> <노자> <중용>등 동양고전 하면 들어봤을 많은 이름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좌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우리가 <춘추 좌전>이라 부르던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으니 당연히 좌구명이 쓴 이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원래 <춘추>가 본 이름이며, <좌전>은 <춘추>의 해설서다. 해설서에 또 해설서를 읽으니 그야말로 포괄적인 해설서를 한 번에 읽고 있는 기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는 『춘추』 판본인데,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쓴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이르러 『춘추』는 더 이상 열린 성격의 기록이 아니면서, 또 끝없는 현실과 결합된 즉시적인 기록이 아니게 되었지만, 처음으로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며 또 한 사람의 식견과 의도도 들어 있는 완전한 책으로 재탄생 했다. - p.85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터라 <춘추>의 이름이 반가웠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알지 못하기에 탕누어가 쓴 해설서의 글만으로 유추하기는 쉽지 않았다. <춘추>와 <좌전>을 읽은 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좌전>의 세계를 동양 사상의 경계로 두지 않고 단테의 <신곡>과 ​보르헤스, 휘트먼, 마르케스, 한나 아렌트, 레이먼드 첸들러등 그야말로 동서양을 뛰어넘는 철학가들과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섞어가며 그들의 세계를 해석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뒤로 완전히 숨겨야 한다."

"작가는 후대인들에게 자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_플로베르 (p.93)


<춘추>에서 보여지는 역사서에서는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사유와 보편적인 행동, 선과 악의 세계가 고스란히 보여진다. 처음 가는 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작가들의 이름이 등대처럼 하나둘씩 등장 할 때마다 길을 잃지 않고 탕누어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책의 생명은 시대의 유행을 따르는 표지가 아니라 작가가 다루는 독특한 내용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즉 그 한 가지는 공통의 내용, 공약수의 부분, 여분은 삭제한 것, 오직 평면적으로만 펼치는 시대의 목소리, 통상적으로 모종의(비슷함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지혜로 응결되는 교훈이다. - p.107


역사의 수레바퀴는 과거의 현재의 세계가 공존한다. 이미 전처를 밟고 있음에도 인간은 다시 그 길로 넘어서거나 단숨에 뛰어넘어 전진한다. 때로는 전진한 만큼 다시 후퇴하는 종족이기도 하다. 인간의 손으로 많은 것을 이룩해 냈지만 다시 과거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눈앞의 현실로 보고 있는 요즘 그의 해석은 다층적이면서도 다변적인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동양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책이다. 다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춘추>와 <좌전>을 읽은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의 넓고, 깊은 사유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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