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

​ 올해 5.18 기념식을 생중계하는 것을 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제창인지, 합창인지의 논란으로 언론에 대두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뉴스의 화제로 오르지 않았다. 올해는 대통령의 방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함께 부를 수 있는 자유로움인지 몰라도 언론에서는 꽤 오랫동안 5.18 기념식에 대해 보여주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해의 일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조차도 국사책 말미에 과거정부와 현정부에 대한 설명이 있는 현대사는 수업에서 깊게 다루지 않았다. 교과서 조차도 짧게 설명이 되어 있을 뿐 왜 그일이 일어나고, 어떤 이유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도 설명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학교 울타리 밖으로 벗어 났을 때, 언론에서 기획된 프로그램과 영화, 소설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각각의 매체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드러낸 부분도 있었고,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2014,창비)를 통해 비로소 그때 그 일이 얼마나 무섭고, 잔악했는가를 가슴 속에 체감할 수 있었던 있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을 후 너무도 무섭고, 무서워 책을 읽는 내내 잠을 잘 때마다 악몽을 꾸었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새로운 몇 권의 책을 접해도 <소년이 온다>의 잔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당시에 있었던 일을 각 인물을 통해 문학적으로 잘 풀어냈다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당시 5.18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세밀하고도 체계적인 기록물로 평가 받는 책이다.

32년 전에 ​비밀리에 많은 이들의 증언과 자료수집, 취재를 통해 출간되었으나 올해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되면서 다시 5.18에 대한 진실에 대해 설전이 오갔다. 채널을 돌리다가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재점화되기 시작했고,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이의 회고록의 술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과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났다고 점점 왜곡되고 폄훼해 가는 시간 속에서 그때의 진실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알리기 위해 새 옷을 입고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초판으로 출간 될 때에는 320페이지 밖에 되지 않았으나 5.18에 관련된 재판, 특별법등이 수록되어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다시 책이 나왔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1분 늦가을 초저녁에 울려퍼지는 3발의 총격이 일어난 시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1년 시작해 세 차례 헌법을 바꾸며 18년간 장기집권을 해 나갔으나 자신의 부하인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재규에 의해 정권의 막이 내렸다. 10.26사태 이후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없는 큰 공백이 벌어졌고, 커다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시 군부에 의해 새 정권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서히 조여드는 군화의 세찬 발걸음이 다시 정권의 깃발을 거머쥐게 되었고, 민주화 운동이 봄을 맞던 시기였으나 그들을 제압하기 위한 신군부 세력의 진압은 과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이들만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서 길을 가다가,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아이, 어른 할 것없이 무차별적인 폭행이 자행되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과잉 진압을 했고,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이 곳에 일을 '폭동'이라며 언론을 조작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고 말한다. 혹은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와서 진압을 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돌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 조차도 진실을 알 수 없었고,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 또한 배운 적이 없어 5.18에 대해 알지 못한다. 왜곡과 오보 없이 진실 그대로의 광주는 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싶다. 많은 이들이 히틀러가 자행한 나치즘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고 알아가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더없이 무지한 것 같다.

수많은 시간의 기록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했던 시민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한 개인의 삶의 시대의 어둠에 갖혀 어떤 의미도 없이 죽어갈 수 밖에 상황을 만든 이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있으니 지금까지 눈을 감고 살았던 것처럼 아득하다. 눈을 뜨고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과 잘못에 대한 반성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져야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트로드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
로리 로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세한 균열로 만들어낸 오해와 진실.


​ 강한 태풍이 불어와 나의 모든 것을 할퀴어 놓는 것과 잔잔한 바람이 불어와 조금씩 잠식하며 내 삶을 흐트러 놓는 것 중 어떤 바람이 더 세고 강한 것일까?라는 물음이 짙게 밀려온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42번째 책인 로리 로이의 장편소설 <벤트로드>는 2012년 에드거상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한 신예작가의 작품이다. 책은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조곤조곤한 말투로 섬세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치 유리 위를 걷거나 흔들리는 다리에서 조금씩 발을 떼듯 느릿한 속도로 이야기를 몰아가고 있다. 캔자스 주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났던 아서가 가족들과 함께 캔자스 주의 벤트로드에 다시 정착하면서 이야기는 고조된다.


어떠한 이유로 고향을 떠났다가 세월이 흘러 다시 고향을 찾았다면 아주 큰 성공을 해서 금의환향을 하지 않은 바에야 다시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작은 마을일수록 더 베타적이지만, 다행히 그는 엄마와 작은누나가 살고 있었고 아서는 가족과 함께 벤트로드에 정착한다. 아서가 가족들과 이곳에 오기 전 도로에서 무언가 부딪힌 것이 하나의 복선인 것처럼 처음부터 그들의 발걸음에 미세하게 빗금이 쳐져있다. 아서는 실리어와 그의 아이들인 대니얼과 에비와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곳곳에 묻어나오는 '그사건'의 흔적들이 함께 혼재되어 있다.

그의 큰 누나인 이브의 죽음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향을 떠나왔지만 본의아니게 아서의 딸인 에비는 이브의 유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러던중 마을에 한 소녀가 실종되고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루스의 남편인 레이를 의심스럽게 바라본다. 둘째 누나인 루스가 남편인 레이에게 폭행을 당해 엉망인 몸을보고 아서는 화를 감추지 못하고 그와 한바탕 한 후 루스와 레이를 떨어뜨려 놓는다. 술을 먹으면 어떤 일을 할 줄 모르는 망나니가 되는 레이는 루스에게 풀듯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어있지만 이브가 죽기 전에 레이는 점잖으면서도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러나 이브가 집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이후부터 그의 가족도 레이도 모두 변해있다. 언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 루스. 모든 것이 비틀어진 삶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마을에서는 예쁜 금발의 소녀가 실종되었을 때 이브를 떠올렸고 이브 역시 레이가 그렇게 죽였을 것이라고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린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심정적인 범인은 레이로 지목된다. 로리 로이가 그리는 인물들은 저마다 모두 불안정하다. 어딘가 모르게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예감에 숨을 죽이게 만든다. 이야기가 고조 될때마다 미세하게 균열이 가는 소리가 쩍쩍 들리지만 '그사건'에 대한 속내를 쉬이 펼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레이였다.


모두가 불안정하지만 특히 이브의 드레스를 입고 이브와 레이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에비는 자꾸만 레이에게 주목한다. 형편없는 레이의 모습은 폭력에 시달리는 루스는 그의 아이를 품은 것과 상반되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끝까지 계속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에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인지를 펑하고 터트린다. 처음에는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밋밋한 소설이구나 싶었으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장 피해자라고 느꼈던 인물이 주는 무서움이 크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꿈속의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슨 말을 하시겠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4년 만의 신작 장편

 『잠』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꿈을 제어할 수 있거나 꿈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주인공은 자크 클라인, 28세의 의대생이다. 자크 클라인의 아버지는 항해사로, 자크가 열한 살 때 항해 중에 목숨을 잃었다. 자크의 어머니 카롤린은 유명 신경 생리학자로, 수면을 연구하는 의사다. 카롤린은 아들 자크가 어렸을 때부터 꿈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쳤고, 역설수면이라고 불리는 수면의 다섯 번째 단계에서 자신만의 꿈 세계인 상상의 분홍 모래섬을 만들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카롤린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수면 탐사 실험에서 수면 6단계를 발견하고, 콜럼버스 시대에 탐험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지도에 테라 인코그니타라고 표기했던 사실에 착안해 수면 6단계를 <미지의 잠(Somnus incognitus, 솜누스 인코그니타)>이라 이름 붙인다. 수면의 6단계는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근육은 이완되지만 뇌 활동은 훨씬 활발해지는 단계로, 시간의 지각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실험 도중 사고로 피험자 아킬레시가 사망하고, 이 일은 카롤린의 해고로 이어진다. 충격을 받은 카롤린은 그날 저녁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당황한 아들 자크가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어느 날, 꿈속의 분홍 모래섬에서 20년 뒤의 48세 자크를 만나게 된다. 48세의 자크는 어머니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며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어머니를 구하러 가라고 권한다. 자크는 꿈속의 만남을 믿지 않고 무시하다가 두 번째로 같은 꿈을 꾼 뒤 말레이시아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머니 카롤린이 찾아갔던 <꿈의 민족>으로 알려진 세노이족을 찾아 나서는데…. 



 

 


* 서평단 신청 방법

1. 본 게시물을 스크랩해 주세요. (전체 공개)

2. 스크랩한 페이지를 본인의 SNS에 홍보해 주세요. (다양한 SNS 가능/전체 공개)

3. 스크랩 주소와 함께 서평단 신청 이유를 아래 댓글로 남겨 주세요.

4. 본인의 댓글에 대댓글로 도서 받으실

   주소/연락처/성함을 비밀 댓글로 남겨 주세요.


★ 반드시 위 네 가지 모두 지켜야 합니다.


* 모집 인원: 30명

* 모집 기간: 5월 22일~5월 30일(9일 간)

* 당첨자 발표 및 도서 발송: 5월 31일 (수) 예정


* 서평단 활동 방법

도서를 받으신 후, 6월 11일까지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또는 타 SNS: 인스타/페이스북 등)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겨 주신 리뷰는 당첨자 발표 페이지 아래에 댓글로 주소를 남겨 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올리지 않으신 분들은 이후 이벤트에서 당첨 제외됩니다.


* 『잠』 서평단의 경우 1권만을 제공받게 됩니다. (2권 완결)


많은 신청 바랍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외와 고독의 끝이 죽음으로 향해하는 가는 이야기.


 동전의 양면같이 남자와 여자의 삶이 닮아있다. 누군가 자살을 하거나 죽음이 따라야만 여자의 역할이 행해진다. 그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만 절제절명의 순간에 그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캐치하지 못해 그를 다시 죽음으로 몰고간 순간, 순간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 언제나 죽음을 마주해야만 하는 일은 그녀를 숨막히게 한다. 순간적으로 내가 마주 하는 순간들에 대해 일탈하고픈 마음에 상아는 박물관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안을 만나게 된다.

건강하던 엄마가 서서히 생기를 잃고 죽어가고, 엄마의 죽음 이후 가장 가까이 자신을 보살피던 아버지는 할머니댁에 자신을 놓아두고 서서히 텀을 벌려나간다. 시간에 따라 점점 더 틈이 벌어지고 아버지의 존재는 이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자신을 버리고, 다시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 곁에 잠시 살았으나, 서로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그는 그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아버지 조차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자, 정안은 저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는 학예사로서 고대 유물을 만지며 보존하며, 퇴색된 유물들을 다시 봉합해 제 빛깔을 되찾아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워 누구와도 관계없이 그저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 어둠을 마주 하면서 살아간다. 상아 역시 타인이 불행해야만 그녀가 손길을 내밀어 도와 줄 수 있기에 새로이 만나는 이들 모두 사나운 바람을 할퀴어간 사람들 뿐이다. 사회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정신을 놓거나 소외감에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아를 점점 더 죄의식에 짓누르게 만든다.

유년시절 함께 살던 계부의 이상한 행동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살던 그녀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죽음과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계속해서 가중되다 보니 그녀 역시 고독의 끝자락에 서 있게 된다. 홀린듯 박물관에 들어가 진열장에 있는 악수를 만져보듯 유리로 손을 내딛자, 정안이 그녀의 손을 잡듯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낸다.

정안은 미라 특별전에 오라며 팜플렛을 건네고 상아는 그것을 받아 서둘러 박물관을 나온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안은 상아에게서 자신이 만지고 있는 미라와 같은 모습이 상상이 되고, 그녀의 모습에서 죽음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소외와 고독이 만들어낸 남녀는 누구와도 관계없이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각각의 짤막한 단편집인 줄 알았으나 연작소설처럼 이루어진 이 책은 어둠 속의 빛처럼 죽음과 사랑이 공존하는 이야기다.

침잠한 죽음의 향내가 가득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소외와 고독에 의해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하고, 그것이 한 남자 한 여자에 의해 다시 피어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활짝 피어나는 꽃처럼 만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프지만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야기는 끝이난다. 뉴스를 틀면 익숙하게 들려져 오는 그들의 소식은 또 누군가에게 소리없는 상처를 입히고,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


그는 태어날 때부터 유독 자신에게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과 사투를 벌이려는 듯 시간이 무너뜨려놓은 것들에 매달리곤 했다. 그리하여 기어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면봉이나 수술용 메스로 녹의 찌꺼기들을 닦아내고 그것들을 특수 약품에 침수시켰다가 말리기를 여러번 해가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려내곤 했다. 그렇게 그는 시간의 흔적을 지워내는 데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 p.52~53


그는 이상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의 눈앞에 여자의 벌거벗은 몸이 보였다. 그는 상상 속에서 여자에게 떨리는 손으로 X선을 비추었다. 여자의 가슴에는 푸른 녹이 피어나 있고, 움푹 팬 아랫배에는 거뭇하게 곰팡이가 슬러있었다. 여자가 서서히 돌아섰다. 그는 소스라쳤다. 여자의 등은 나무부처의 등처럼 도금이 벗겨진 지 오래였다. 산소와 접촉된 부위부터 산화되어 거무스름하게 타들어가 있었다. 그런 여자의 몸속에서 나무부처를 갉아먹으며 섭생하는 흰개미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학예사들이 사자(死者)라고 부르는 지독한 흰개미 떼였다. 그는 아찔한 먹먹함에 눈을 감았다. - p.55~56


여기를 봐.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존재의 몸에는 자신의 운명이 어떠한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어. 그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다 그래. 너의 손에도 너의 운명이 새겨져 있단다. 그러고는 엄마는 그의 손바닥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 p.107


누군가의 죽음을 유기하기 위해 파놓은 깊은 구덩이 같은 발굴 현장에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이 그는 죽음처럼 보였다. 죽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우리 머리 위로 일정하게 떨어져 내려 삶의 윤곽을 뒤덮어버리는 선뜩한 비늘들인 것이었다. - p.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정하게 너울거리는 빛.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접하기 전에 이미 나는 그의 글에 편견을 가졌다. 그의 이름이 너무 익숙하게 다가와 그가 써놓은 저작들이 궁금해 한 온라인 서점을 검색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티즘'이라는 제목이 박혀왔고 그 글이 어떻게 쓰여졌던 간에 왠지 '야시시한' 이미지만 찐득하게 기억되어 왔다. 아마도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읽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조르주 바타유의 이미지를 그렇게 기억해왔을 것이다. <눈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 표지의 은밀함이 부끄러워 차로 이동 할 때는 표지를 가리고 책을 읽었으나 생각과 다른 이미지의 글이 명징하게 놓여있었다. 바타유의 시선 아래 보여지는 초현실적인 사랑 나눔은 우리가 알던 살색의 향연이 아니었다.

 

기존과는 다른 남녀의 합일과 악몽과 사디즘,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들의 행위는 마치 기괴스러웠다. 포근한 침대에서의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마치 죽어있는 사람들이 모여져 있는 무덤에서 그 행위를 오가는 모습들이 불안정하게 너울거리는 빛처럼 보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 조차도 그는 죽음의 상징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의 글을 화면 밖으로 끄집어 낸다면 기괴한 호러의 영화가 될 것 같다.

 

그의 첫 소설인 <눈 이야기>를 센세이션하면서도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혔다면, <하늘의 푸른빛>은 그가 <눈 이야기>로 명성을 얻은 후 7년 뒤에 퇴고한 작품이다. 첫 작품을 아무런 이물감없이 읽어왔다면, <하늘의 푸른빛>은 너울성 파도처럼 쉼없이 흔들거렸다. 나치즘이 서서히 유럽의 모든 것을 장악할 무렵의 배경을 그리고 있기에 이 책의 주인공은 '트로프만'은 남녀간의 육체적 결합을 욕망 이상으로 폭력과 죽음에 더하여 그의 사유를 담고 있다. 외설적인 결합의 면면이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욕망의 척도가 아니라 당시 발발되는 전쟁의 신호탄으로 느껴져 그의 행위는 더없이 황폐하고 결격하게 다가온다.

 

국가간의 전쟁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고, 그것을 폭발적으로 상기시키는지 조르주 바타유의 글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눈 이야기> 보다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의 확장된 이야기는 더없이 철학적인 탐구와 인간의 본성이 틈입되어 나타난다. 야욕적인 본성의 날과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불안정한 정국의 모습이 '트로프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그려졌다. 상반된 이미지가 다양하게 그려져 있어 호러니 사디즘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조르주 바타유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더없이 그의 문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이러니한 일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사유의 내면은 확연히 다르다.

 

바타유가 천착하고 있는 에로티슴은 늘, 금기와 위반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같은 재료에 따라 맛깔스러운 음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악한 음식맛을 내기도 한다. 비록 그의 작품은 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을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분야에 '진짜가 나타났다.'는 생각 뿐이었다.

 

---

 

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떠 있었다. 그것은 소리를 지르게 할 만큼 부조리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적대적인 부조리였다. 어서 빨리 동이 텄으면, 태양이 떠올랐으면 싶었다. 별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거리에 나가 있을 것이다. 원래 별이 뜰 무려보다 동틀 무렵이 더 무서웠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오후 2시쯤 난 카루젤 다리 위에 있었다. 파리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로 도살장의 소형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죽을 벗긴 양들의 머리 없는 목들이 천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고, 푸른색과 흰색 줄무니를 넣은 백정들의 작업복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트럭은 쨍쨍한 햇빛 속을 느릿느릿 지나갔다.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을 좋아했다. 두 눈을 감으면 눈꺼풀 너머의 태양은 붉은 색이었다. 태양은 무시무시했고, 폭발할 것 같았다. 태양이 폭발하여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보다 더 태양다운 것이 있을까? 그 짙은 더움 속에서 나는 빛에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내 앞의 자자르는 그저 한 마리의 흉조, 더럽고 하찮은 한 마리의 흉조에 불과하게 되었다. 내 두 눈은 실제로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속으로가 아니라 정오의 하늘의 푸른빛 속으로 잠겨들었다. 나는 그 찬란한 푸른 빛 속으로 몰입하려고 눈을 감았다. - P.157~158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며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길을 돌아서는 순간 빈 공간이 우리 발아래로 펼쳐졌다. 이상하게 그 빈 공간은 우리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만큼이나 무한해 보였다. 무수히 많은 작은 빛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둠 속에서 수백 개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서 환하게 밝혀진 묘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나는 도로테아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별들의 심연에 매혹되었다. 도로테아가 내게 다가왔다. - P.2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