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54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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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저 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힐 달 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저,저, 하는 사이 중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가득 담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나보낸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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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한국동시 100년 애송동시 50편 문학동네 동시집 9
강소천 외 지음, 양혜원 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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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을 때 일이다. 돌이 가득한 언덕길을 올라가는 데 손톱만한 노란 나비들이 나폴나폴 내 발목 높이에서 날아다녔다.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인 줄 알았다. 바람과 나비들 때문인지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두 다리는 무거웠는데 입에서 잊고 있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고단한 몸에 동요라니. 그렇지만 정말,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고마웠다. 그렇게 한 번 시작된 노래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이 되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실제로 열심히 실을 풀어내고 있는 거미들과 눈이 마주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또 노래를 불렀다.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동요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알았다. 시와 노래에 힘이 있다는 것을. 특히 어릴 적 불렀던 노래들 안에.

 

  우연이지만 생일 전 날, 두 권의 동시집을 선물 받았다. 맨 앞에 놓여있던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전철에서 읽다가 자꾸 목구멍에서 튀어 나오는 노래 때문에 당황했다. 책 속에 갇혀 있던 동시들이 그 동안 답답했던지 노래가 되어 살아나더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소환해 냈다. 친구와 두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손동작을 맞추며 불렀던 반달과수원길’, 6학년 음악시간 앞에 나가 벌벌 떨며 불렀던 과꽃등이 떠올랐다. 노래뿐만 아니라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던 열기도, 이미 어른이 된 친구들의 개구쟁이 모습도 그대로 보이고, 모든 것이 생생했다. , 그러고 보니 나는 옛날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다.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은 것 같아 고맙고 행복했다.

  <어느 데인지 참 좋은 델 가나 봐>는 제목과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좋은 델 가고 싶었다. 이 책속에 실린 동시들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지.

 

개울물/ 권정생

 

빤들 햇빛에

세수하고

어느 데인지 놀러 간다

 

또로롤롱

쪼로롤롱

 

띵굴렁

띵굴렁

 

허넓적

허넓적

 

쪼올딱

쪼올딱

 

어느 데인지

어느 데인지

참 조은 델

가나 봐.

 

  의성어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 바로 시다. 권정생 선생님의 개울물을 읽으면 개울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풀들, 돌들, 하늘과 햇빛, 바람까지도 그대로 그려진다. 깊이 관찰한 시인만이 말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이다. 개울물을 읽다가 언젠가 한 번 뵀던- 절친했던 교수님을 만나러 왔다가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던- 권정생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는 참 이상하다. 나조차 잊고 있던 지나간 시간들을 불러오니 말이다. 짧은 글 속에 커다란 세계가 숨어 있다.

 

새싹 / 권오삼

 

딩동

누구세요?”

“1월인데요.”

…….”

 

딩동

누구세요?”

“2월인데요.”

…….”

 

딩동

누구세요?”

“3월인데요.”

, 나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봄이 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재치 있는 동시이다.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다. 씨앗을 품고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여자아이가 꼭 어릴 적 내 모습 같았다. 동시를 쓰는 사람들은 마음을 낮추고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시를 쓸 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예쁘고 겸손하다. 그 눈을 닮고 싶다.

  지독하게 추웠던 겨울도 어느 새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추웠다는 사실은 인정하는데 몸이 느꼈던 추위의 감각은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뾰족하게 생긴 하얀 꽃봉오리들을 발견했다. 목련이었다. 며칠만 지나면 활짝 만개할 것 같다. 그 꽃송이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있겠지. 그러다가 힘들게 했던 추위는 금방 잊고 곧 활짝 피겠지. 내 안에 있던 시와 노래들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선물처럼 잊고 있던 어릴 적 동심과 아름다운 추억들이 동시집을 타고 찾아 온 것처럼, 미세먼지 가득한 날들 속에서도 찬란한 봄을 기다릴 수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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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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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처럼 파란 표지가 시속에 그려진 세계로 시를 읽는 이들을 끌고 가는 것 같다.
필리핀 선교탐방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 분께 읽고 있던 이 시집을 선물로 주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구입해서 읽었다.
선물로 주고 와서 정말 다행이다. 대한민국의 가을하늘을 주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택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지만 마음을 두드리는 진실과 소박함이 있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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