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용혜원 지음 / 나무생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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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 시인의 신작 시집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가 나왔다.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십여 년 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던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꿈꾸지 못하고, 그저 제도권 안에서 끌려가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꿈꾸길 외치던 그 모습이 슬며시 떠오른다.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위트 있게, 또 때론 우리의 감성을 울리던 그 모습.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집을 시작한다.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슴에 심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일까? 그건 심장이 살아 움직이는 삶일 게다. 심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성한 감성으로 살아낸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고. 그래서일까? 시인의 시들은 다양한 감성이 담겨 있다. 사랑, 그리움, 기다림, 외로움, 슬픔, 아픔, 행복, 따스함, 꿈, 설렘, 힘겨움, 회한, 쓸쓸함, 실망, 절망, 분노 등 참 다양한 감성들을 시인은 그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시집의 제목이 참 예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왠지 제목만을 생각한다면, 사랑시들로 가득할 것 같다. 물론 사랑시도 담겨져 있다. 우리의 삶에 사랑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뿐 아니라 시인이 품고 만나는 삶의 감정들, 인생의 씁쓸함, 힘겨움, 아픔과 눈물, 고독과 한숨도 담아낸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가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는 결코 삶의 힘겨움에도 회의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노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겨움 가운데서도 다시 희망을 바라보고 다짐하는 노래들이 많다. 예를 든다면 이런 시들이 있다.

 

늘 전전 긍긍하며 실망 속에 머물기보다는 /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

초록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힘차게 살자 // 어둠에 빠져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길을 찾아 /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 일부

 

강한 사람은 무수한 슬픔 속에서 /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는 / 깊고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

< 상처가 있을 때 > 일부

 

삶의 힘겨움 어두움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빛 가운데로 걸어감을 노래한다. 삶의 다양한 슬픔과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회복을 넘어 타인을 감싸줄 수 있음을 노래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시는 힘겨운 삶에 힘을 준다. 다시 일어나 힘차게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어쩌면 시집의 제목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역시 그런 의미이겠다. 이렇게 희망으로 우리는 이끌어주기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용혜원 시인의 신작 시집 속엔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을 시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하나만 적어본다.

 

숲길을 걸으며 / 야생화에게 길을 물었더니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숲을 걷고 걸으며 / 나는 알았다 //

야생화들이 / 가는 길마다 피어나 / 길 안내를 해주었다 //

희망의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걸어간다

< 숲길을 걸으며 > 전문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은 여전히 힘겹고 암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햇살은 처음부터 여전히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음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젠 그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걸어가자. 시인이 꿈꾸는 희망을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의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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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소설 무 1 - 신이 선택한 아이
문성실 지음 / 달빛정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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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소설을 만났다. 『신비소설 무(巫)』란 소설인데, 2000년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출간되고 있는 소설이다(아마도 당시 완결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완결하나보다.). 그 첫 번째 책은 「신이 선택한 아이」란 제목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낙빈이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박수무당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낙빈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최 선생은 입학예정자 가운데 한 친구가 입학 후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아 의아해 한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무당의 아들이란다. 최 선생은 낙빈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 낙빈의 엄마를 설득하여 낙빈을 학교에 다니게 하는데, 낙빈에게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무엇을 하든 낙빈이 속한 편이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 것. 아이들은 이것이 낙빈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라 믿고, 낙빈과 항상 같은 편이 되길 원한다(아울러 낙빈을 향한 두려운 마음 역시 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일로 인해 낙빈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배척된다. 낙빈이 4학년 형을 다치게 했다는 누명을 씌우며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은 낙빈과는 무관한 일.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낙빈을 향한 두려움은 도리어 낙빈을 공격하고 배척하며 상처를 주게 된다.

 

이렇게 낙빈은 상처뿐인 짧은 학창시절을 뒤로 한 채, 천신이란 분이 계신 암자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승덕, 정희, 정현 등의 형과 누나를 만나게 되어 함께 수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앞에 여러 사건들이 생김으로 이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어떤 활약을 하게 될까?

 

첫 번째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다. 물론 때론 무섭고 오싹한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마치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고, 결국엔 신의 선택에 의해 그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의 낙빈. 심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던 가운데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천신의 암자에 칩거하지만, 그럼에도 사건사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사하는 승덕. 희생보살의 능력이 입혀져 아픈 사람들의 아픔, 상처, 고통을 대신 아파하며 상대를 치료해줄 수 있는 정희. 정희의 쌍둥이 남동생이자 무예 고수인 정현.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초자연적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소설은 영적 존재들의 등장으로 우리가 알지 못할 세상,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신비로움을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뿐 아니라, 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 가는 영적 존재 특히 원령들의 경우 이 땅에서 너무나도 큰 억울함으로 인해 그 원망이 죽어서도 한을 품게 된다는 전개를 통해, 이 땅에서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원망을 쌓아가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많은 이들이 폄하하는 무당의 길이란 것이 결국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아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희생적 존재들임도 생각하게 한다.

 

물론 한을 품은 영을 안으로 불러들여 고통을 대신 껴안고 보듬어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을 치러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낙빈 어머니는 그렇게 돕는 것이 무당의 일임을 잊지 않았다.(145쪽)

 

이는 사실,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자신은 뼈를 깎는 고통도 감내할 각오. 이런 각오가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종교 안에서 살아가는 종교인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낙빈과 승덕, 정희, 정현.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게 될지도 궁금할뿐더러, 이들은 또 어떤 사연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그리고 이들 앞에 놓이게 될 수많은 사건들, 그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게 될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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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7 안데르센 동화집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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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만큼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도 드물 겁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으며 자랐던 기억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장난감 병정」, 「백조 왕자」, 「엄지공주」, 「빨간 구두」, 「눈의 여왕」등등 참 많은 동화들을 읽고 자랐죠(솔직히 어떤 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건지, 아님 딸아이에게 읽어준 건지 혼돈스러운 것들도 있어요. 아마 둘 다이겠죠.^^).

 

이렇게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하였던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금번 시공주니어에서 햇살과나무꾼의 번역으로 원작에 충실한 안데르센 동화집이 나왔거든요. 총 7권으로 출간된 이 동화집은 안데르센이 직접 자신의 200여 동화 가운데 156편을 뽑은 단편 모음집 『동화와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겁니다. 여기에 마치 천일야화와 유사한 느낌의 「그림 없는 그림책」(다락방에 사는 가난한 화가를 찾아온 달님이 자신이 세상 곳곳에서 본 것들을 매일 밤 이야기해주는 연작 단편동화로 33번째 밤까지 이어지고 있네요.)이 더해져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만난 책은 마지막 7권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 점은 부끄럽지만 7권에 실린 동화(22편 수록) 가운데 정확하게 아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답니다.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안데르센의 동화를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동안 안데르센 작품의 극히 일부만을 맛봤던 거죠. 게다가 읽은 작품들 역시 어린이들에게 맞춰 각색되거나 편집된 내용들일 테고요. 그렇기에 원작 그대로 번역된 작품을 읽을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읽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자답게(?) 이미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어가다 보면, 잔잔함 가운데 깊은 맛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되요. 이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고요. 역시 고전은 고전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아울러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결코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쓰인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요. 어쩌면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이 읽어야 어쩌면 동화의 참 의미를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물론, 이런 생각도 잘못일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이야기의 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거든요. 무엇보다 더 맑고요.).

 

이 책에만 22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에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참 많은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요. 「엉겅퀴가 겪은 일」, 「전원사와 주인 가족」등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작가란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감동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요. 「춤추어라, 춤추어라, 나의 인형아!」를 읽고는 역시 아이들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아울러, 혹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을 강요하는 부모는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고요. 평생 치통을 알았다는 안데르센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는 「치통 아줌마」를 읽고는 안데르센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도 창작의 고통은 힘겨웠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찮은 시인이에요! 아니,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인도 아니에요. 그냥 발작하듯이 시를 짓는 것뿐이라고요. 치통처럼 그냥 발작하듯이요.”

 

왠지,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나요?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는 도전하지도 않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도 발견하기도 되고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열여섯번째 밤>을 읽고는 작품이 전해주는 페이소스에 한동안 그 안타까움과 슬픔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더라고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바다 속의 거대한 뱀」, 「증조 할아버지」등에서는 낡은 시대(신화가 가득한 시대)와 새 시대(진보의 삶, 발전하는 과학)의 대립. 그리고 그 안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작가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고요. 과학과 신화의 공존. 구시대와 새시대의 갈등과 공존 등을 발견하게 되요. 아마도 안데르센은 새 시대를 배척하진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새 시대의 진보, 과학과 산업, 그 문명이 허락하는 편리가 분명 있음을 인정하는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신화를 넣어요. 나무의 요정이 등장하기도 하고, 인어가 등장하기도 하죠. 그런 가운데 작가는 이런 과학과 산업을 자칫 신봉하며 참된 신화와의 균형이 깨뜨려진다면, 자칫 문명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이것들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뱀”이 될 것이며, 또한 드리아스 요정을 죽이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요. 어쩜 오늘 우리 시대가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당시에는 이런 경계보다는 오히려 신봉의 분위기가 만연했을 텐데 말이에요. 역시 위대한 작가는 글뿐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참 여러 가지 내용들을 생각해보게 되지만, 무엇보다 안데르센이 말하는 희망은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안데르센은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에서 말해요. 신은 갓난아기를 보내실 때 행운의 선물도 함께 보내주신데요. 그리고 이 선물을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 두신데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선물을 반드시 발견하게 하신데요. 그러니 지금 당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 행운의 선물을 발견함으로 밝은 세상을 맞게 된다는 거죠. 어쩌면 이런 주제야말로 안데르센 이야기의 큰 축이자, 그가 오랜 세월 사랑받게 되는 비결이 아닐까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스물여섯 번째 밤>에서처럼,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이 지금 당장은 좁고 갑갑한 굴뚝을 헤매는 상황일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에는 그 상황을 견뎌내고 나아가 환한 세상, 맑은 공기를 만끽할 날이 주어지겠죠. 이런 내용의 동화들은 여느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큰 힘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치, 이야기를 통해 한스가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에요(「앉은뱅이」). 비록 지금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안데르센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다시 일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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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Dear 그림책
윤석남.한성옥 지음 / 사계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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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시집와 나이 마흔에 화가가 된 여인, 그 후 38년의 시간을 화가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여인 윤석남 씨의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를 읽어봤다. 아니 감상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책에는 화가의 그림 32점이 실려져 있다. 그러니 화가의 그림 도록이라 말할 수 있는 책. 이러한 그림에 짧은 고백적 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처음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싶었다. 마치 화가의 딸이 화가의 그림을 보며 이해할 수 없는 그림만 그린다며 타박하였다는 것처럼. 다시 책장을 펼쳐 그림 한 점 한 점을 살펴보는 가운데, 뭔가 화가가 그림을 통해 그리고 짧은 글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 느껴진다. 그건 바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것 아닐까?

 

화가의 그림들은 실에 매달린 그림들이 많다. 이 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화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난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바는 우리네 인생이 마치 이처럼 실에 매달린 것과 같은 인생이라는 것. 한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여길지라도 여전히 뭔가에 매달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내 삶의 지경이 넓은 듯 착각하며 살지만 결국엔 그네 위의 작은 공간과 같은 협소한 삶 위에서 아등거리는 삶. 이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화가는 말하고 있지 않을까?

 

개인의 삶은 없이 식구들을 위한 시간을 살아내야만 했던 우리네 엄마들. 화가 역시 그림이란 탈출구를 뒤늦게 찾아내어 꿈을 그려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실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인생.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하며, 자신의 일을 꾸려나가는 인생을 화가는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참, 책 제목이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이다. 누굴 가리키는 걸까? 가장 그리고 싶은 존재였던 어머니를 그리면서 나이 마흔에 화가가 되었다니, 일차적으로는 아마도 화가의 어머니를 의미하겠다. 그리고 이젠 화가 역시 딸에게 다정씨가 되어있을 테고. 오늘 이 책을 읽는 우리 역시 누군가의 다정씨이며, 누군가 다정씨가 계실 테고.

 

서평을 쓰려 책을 다시 펼치다 불현듯 어머니가 떠올라 전화를 넣어본다. 화상통화를 하며 손주들의 할머니~ 하는 소리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행복해 하는 어머니.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하시는 어머니야말로 나에게는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가 아닐까.

 

여전히 우리네 삶은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달팽이처럼 느릿한 움직임이라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다정씨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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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아빠
김세호 지음 / 단한권의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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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이름의 책을 만났다. 『개떡아빠』라니. 괜스레 날 지칭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과연 개떡아빠는 어떤 아빠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개떡이란 게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참 맛난 음식임에도 분명한데, 과연 무슨 의미로 사용되는지도 궁금하고. 『개떡아빠』는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사실 소설과 동화의 구분이 모호하다.). 같은 제목의 「개떡아빠」와 「철갑똥파리」란 중편소설이다.

 

「개떡아빠」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쓴 성장소설로서 참 개떡 같은 가족, 여섯 가족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배고픔의 서러움에 사무친 할머니. 그래서인지 식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할머니. 먹는 것 앞에서는 손주들도 전혀 고려치 않는 참 개떡 같은 할머니다. 술에 취해 자는 아이들을 깨워 꺼칠한 수염으로 아이들을 고문하곤 하는 아빠. 언제나 간식거리를 사오지만, 이 모든 것은 할머니를 위해 사오는 효심 가득한 아빠 역시 할머니를 챙기는 효자임에 분명하지만, 자식들과 아내를 챙기지 못하는 개떡 같은 아빠다. 자신의 입만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과 아빠의 효심 가득한 만행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 생활전선의 힘겨움까지 더하여 안으로 썩어들어 가다 폭발하고 마는 엄마. 똑똑하지만 딸이라는 서러움과 참 다양한 캐릭터의 가족들로 인해 더욱 까칠해지기만 하는 누나. 백일 되는 날 술 취한 아빠가 무등을 태운 상태로 넘어지는 뒤론 마냥 웃고 좋기만 한 약간 부족한 형. 그리고 선데이 서울을 통해 여성을 알아가고, 할머니의 돈을 훔쳐서라도 자신의 통장에 저금을 하는 ‘나’. 이렇게 여섯 가족이 만들어 가는 개떡 가족 이야기. 각기 아픔도 있고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이런 이들이 하나도 버무려질 때, 일견 볼품없지만 맛있기만 한 개떡처럼 이 가족만이 전해주는 독특한 맛이 있다. 그 맛을 느껴보길.

 

「철갑똥파리」는 똥파리와 꿀벌, 말벌, 무당벌레, 거미, 베짱이, 개미 등 곤충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우리 인간세상을 풍자할뿐더러,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다. 거미가 붙잡은 똥파리를 놓아주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하루살이들이 남(달팽이)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 모습. 폭군 말벌이 꿀벌들을 배려하고, 빼앗기보다는 함께 일하기를 꿈꾸는 세상. 서로 다른 똥파리, 무당벌레, 베짱이, 말벌이 서로의 다름에도 함께 친구가 되어 어우러지는 세상. 베짱이가 개미처럼 일하고 남을 위하기도 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똥파리와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처럼 잘 어우러지는 세상인지를 질문한다. 아니, 그런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길 꿈꾼다.

 

또한 똥파리는 자신이 먹는 똥을 하찮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서 꿀벌과의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똥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닌, 너무나도 귀한 양식임을 깨닫게 되는 모습을 통해, 과연 오늘 우리 세상에서 하찮은 것은 무엇이며, 누가 규정한 정의인지를 묻는다. 아울러 그토록 똥을 먹고 사는 똥파리이지만, 이 똥파리가 어느 누구도 꿈꾸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통해, 똥파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임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귀한 존재임을 생각하게 한다. 단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몇 군데 있어 작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너무나도 귀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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