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일기
노먼 메일러 지음, 조성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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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접근하면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는 바로 성서의 기록, 수집, 편집 작업이 성서 내용이 가리키고 있는 시대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간과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성서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 시대와 성서가 기록된 시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약성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4복음서의 경우, 이들의 기록은 예수 당시가 아닌,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난 시대이다. 그렇기에 복음서들의 내용은 예수 당시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 복음서들이 기록되어지는 신앙공동체 내에서 그들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에 영향을 받아 기록되어졌다. 따라서 복음서들은 자신들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에 따라서 신격화되어 있는 예수상을 그들 복음서에 투사하였다. 그렇기에 각각의 복음서들은 유사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온 인류의 구세주로써 그는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복음서 속에 있는 예수에 대한 접근에 있어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터부시되고 있는 경향 역시 있음이 사실이다.

노먼 메일러의 <예수의 일기>는 그의 글 첫 부분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기록에 과장이 많이 있음을 전제하고 글을 전개해 나간다. 또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적인 존재인 예수, 하지만 한 인간이었던 그가 겪었던 갈등, 두려움, 성냄, 슬픔, 기쁨, 내적 혼란, 주저함, 자신감 등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 그는 이런 예수의 내면 세계에 주로 관심하면서 이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예수의 시각에서 일인칭시점으로 예수 일대기를 풀어 가는 방법을 택한다.

그렇기에 본서는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의 강조와 그의 인간적인 고민을 엿본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첫머리에서 말했던 예수에 대한 과장이 적지 않다는 전제는 글이 전개되어감에 있어 실망을 안겨준다. 여전히 작가는 지난 2천년간에 형성된 기독교의 전통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눈에 띄는 복음서 저자들의 과장을 그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글을 써내려 간다. 어쩌면 그러한 부분은 그가 전문적인 신학자가 아니기에 갖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격찬을 받을 만한 것은 기독교 역사가 옷을 입힌 예수의 신격화 작업을 그는 예수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오히려 인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간 예수가 행하지 않았을 법한 예수 신격화의 작업들을 그는 예수의 사역으로 인정하면서, 그런 신격화 작업의 흔적들을 예수 일대기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인간적인 내면세계를 파헤치는 재료로 삼는다. 이런 그의 작업은 과히 격찬 받을 만 하다.

그의 글에 있어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을 찾는다면, 예수의 일대기를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오류인데, 모든 복음서의 내용들을 짬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각자가 속한 신앙공동체의 전통에 의해서, 또는 각자가 추구하는 신학적 지향점에 따라 자기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서로 다른 이야기들로 써 내려가고 있고, 또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복음서 이야기들은 각각의 복음서가 추구하는 관점에 의해 읽어져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예수의 일대기를 기록하려다 보니 그들 각각의 예수 사역들을 짬뽕시켜서 국적 불명의 예수를 만들고 있음이 그의 실수라면 실수일까?

노먼 메일러의 <예수의 일기>는 그럼에도 오늘의 지나친 예수 우상화세태에 있어 신선한 충격을 일반 독자들에게 줄 수 있음은 사실이다. 이러한 예수에 대한 인간적 접근을 통해 많은 이들이 예수의 인성 가운데 신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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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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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익 할아버지의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참 좋다는 것. 다른 여러가지 표현을 들먹거리는 것이 왠지 꺼려진다. 그리고 그분이 참 용기 있는 분이란 생각이다. 단순하고 절제하는 삶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 나무를 사랑하고 농사짓는 것을 업으로 삼고 농부의 길을 걷고 계신 분... 그러한 삶을 선택하기까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분이 용기 있다는 나의 생각 자체도 그분의 관점에서 본다면 맞지 않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의 입장에선 그분의 삶이 많은 걸 포기한 삶처럼 보이겠지만, 그분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삶이 바로 자신을 세워 가는 철저한 삶의 현장일수 있기에... 그리고 그분의 입장에서는 잃은 것보다는 어쩜 온통 얻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아무튼 전우익 할아버지의 삶이 참 멋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그처럼 행할 용기가 없음이 역시 나의 한계가 아닌가 여겨져 더욱 작아지는 느낌이다. 시골에서 나무와 함께 하는 그분의 세상을 읽어 가는 독특한 관점 역시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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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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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로 기억된다. 교회선생님으로부터 빌려본 책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감동을 받았던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 후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책. 이젠 커버린 내가 얼마 전 꿈속에서 교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이야기해주던 내용이 있다. 바로 “우동 한 그릇”의 내용. 난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감동을 전해주려 애쓰지만, 그 감동의 전달이 쉽지 않아 애태운다. 잠에서 깬 후 잠결에 꾼 꿈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한 책의 내용마저 뚜렷하게 전달하던 꿈속의 내 모습에 무척 신기해하던 일이 있다.

얼마 후 들른 서점의 진열장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어 반갑게 손에 든다. 바로 며칠 전 꿈속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던 바로 그 책, “우동 한 그릇”이다. 서점 주인에게 이 책이 혹 예전에 나왔던 책이 아니냐고 묻자, 예전에 출판된 책이 맞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에 내 꿈속에 나타났던(?) 바로 그 책임을 알고 얼른 사게 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쳐들면서 또 다시 맛보게 되는 감동이란!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배려가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허름한 세 모자의 밤늦은 우동 한 그릇의 주문에도 웃으며 조금 많은 양의 우동을 말아주던 주인아저씨의 묵묵한 인정. 우동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삶의 희망을 키워가던 세 모자. 작은 빵집에서 일하지만 그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작은 인정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려 노력하는 여종업원의 모습.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이 일하는 빵집의 빵을 먹고 싶어한다는 할머니에게 사랑과 인정을 담아 건네주는 모습.

진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크고 힘찬 어떤 정신이나 힘보다는 이러한 작은 배려와 사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지만, 벌써 눈시울을 글썽이게 하는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들... 이런 작지만 아름다운 마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맛깔 나는 곳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아무리 세상이 삭막해지고 무서워진다 해도 이런 작은 아름다움들이 모인다면 결국 세상의 어두움은 그 아름다움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빛깔을 띄느냐 하는 것은 그 누구의 몫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몫임을 자각하게 된다. 정말 가슴을 후끈 달구어주는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책이다. 내가 꾼 꿈은 이런 아름다움을 다시 맛보도록 하기 위한 계시(너무 거창하지만...)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놀란다. 이 책의 초판은 1989년도가 아닌가! 난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었는 줄 알았지만, 이 때는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었는데... 역시 사람의 기억은 이처럼 불완전하고 세월 따라 변해가기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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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하늘 한 하늘 창비시선 75
문익환 지음 / 창비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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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그는 살아생전 줄기차게 통일을 노래하던 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희년 개념(이스라엘이 50년째 되는 해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도 놓아주며, 땅도 원주인에게 돌려주던 제도)을 차용하여 남북이 나뉜 지 50년이 되는 해가 오기 전에 이 땅엔 통일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분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던 95년도를 한해 앞두고 결국 통일을 보지 못하고 분단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분은 어쩌면 희년의 해인 95년도에는 분명 이 땅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 염원 50년은커녕 6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에 그분이 살아 계셨다면 통한의 눈물만을 흘리셨을 것이다.

목사이자 신학자 그리고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그분의 네 번째 시집인 “두 하늘 한 하늘”은 그분의 꿈이 그러하였듯이 ‘통일’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통일을 노래한 시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들도 상당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쓴 시들, 자신의 스승인 김재준 목사와 함석헌 선생을 그린 시들이 6부와 7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제5부의 ‘그날이 오면’은 보다 나은 세상의 도래를 위해 젊음을 산화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이 부분에서 두드러진 사상은 부활사상이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남아있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행동할 때, 그들의 정신은 오늘의 삶 가운데서 부활하여 시인이 노래하는 ‘그 날’을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간간이 비치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언어들 역시 통일을 바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는 사회의 반민주화와 독재정권이 바로 분단수호세력, 통일반대세력과 일맥상통한다는 그의 생각에서 유래할 것이다.

시집 전반에서 보이는 그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가 ‘비무장지대’라는 시가 아닌가 싶다. 그의 노래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점차 확대된다면 그가 그처럼 바라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비무장지대는 무기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곳이라
우리는 총을 버리고
군복을 벗고 들어간다
막걸리통들만 둘러메고 들어간다
너희도 따발총 버리고
계급장 떼고 들어오너라
.....(중략)
날씬한 허리 용수철로 튀었다 펴며
푸른 하늘 밀어올려라
아아아아아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붙여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

자신들의 나라 일에 자신들의 의사 하나 마음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오늘 우리네 현실을 보며, 통일은커녕 독립마저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우리에게 통일은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통일보다는 독립이 선취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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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씨앗의 마음
시애틀 추장 외 지음, 서율택 옮김 / 그림같은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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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조상으로부터 물려온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침략자들에게 힘으로 또는 회유로 모두 빼앗겨 버린, 그래서 지금은 쓸쓸히 ‘보호구역’안에서 스러져 가는 아메리칸 인디언들. 바로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 본서이다. 작은 씨앗이 종국엔 수많은 결실을 얻는 것처럼, 이 책은 작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커다란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엮은이는 이들이 겪었던 아픔이나 서양인들의 잔혹성을 들추어내려는 것이 본서의 목적은 아니라고 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아픔을 전제하고 글을 읽는다면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더욱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이 작은 지혜의 글들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살찌게 하는 이유는 이들의 마음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들은 자신들의 신인 위대한 정령에 대한 경외와 사랑, 그리고 동포들에 대한 사랑과 이타적 돌봄, 그리고 생활 습관에 베어 있는 자연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기초하여 살던 자신들의 이야기이기에 아 작은 지혜 글들은 커다란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인디언들을 그들의 영토에서 몰아내었던 서양인들의 종교 역시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랑이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잘못된 종교형태와 근본정신이 왜곡된 앎, 근본정신을 잃은 종교열성이 가장 비종교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아마도 아메리카에 정착한 그들 역시 본질을 망각한 종교인들이었으리라.

아무튼 이 책에 쓰여진 글들은 모두 사랑이란 이름 하에 요약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두드러진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지에 대한 사랑, 나무에 대한 사랑, 동물들에 대한 사랑, 즉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이 자연의 품안에서 자연의 보살핌 때문에 살아감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 외에는 절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꼭 자연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도 항상 자연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이미 서구 사상에 젖어 그들처럼 자연을 짓밟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진 않은가?

우정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것을 백인들에게 나누어줬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백인들이 탐내던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단 하나의 죄 아닌 죄 때문에 자발적인 나눔이 아닌 백인들의 총칼 앞에 착취당하고 만다. 결국엔 그들은 ‘보호구역’이란 곳으로 몰려 자연의 보호를 빼앗기고 만다. 이들의 슬픈 역사 속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는 그들의 지혜의 글들은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강자만을 지향하는 우리네 강퍅한 사회에 이러한 작은 지혜의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로움과 참 지혜를 깨닫게 하길 기원한다. 아울러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의 따스함에 감염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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