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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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한 2022<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시리즈 10권 가운데 한 권인 이대연 작가의 부표란 책을 만났습니다. 시리즈의 단편집들은 모두 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부표, ()이란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둘 모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부표에서의 주인공 는 아직 아버지의 삼우제를 치르기 전, 즉 아버지의 죽음 직후의 상황입니다. 장례를 마치고 바로 본업에 복귀하여 낡은 등부표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는 바다 속에서 수명을 다하고 올라온 부표의 표면에 달라붙은 담치(홍합의 아류)를 보면서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인생, 그리고 자신들의 힘겹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일확천금을 꿈꾸던 사내였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뒷전인 아버지,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아버지는 오랜만에 나타나면 그동안 번 돈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 돈은 다시 주식투자에 소용되는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없는 아버지. 결국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부표와 같은 인생과 부표 교체 작업을 하는 주인공의 작업이 묘하게 교차됩니다. 물론 부표 교체 작업을 하는 주인공 는 결코 부표와 같은 인생이 아닌 견실한 생활자라는 느낌이지만 말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 생일에만 먹었던 홍합 미역국은 기껏 일 년에 세 번 먹을 수 있는 호사 아닌 호사였으며 다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나마 가족 생일에 먹는 홍합 미역국조차 일 년에 세 번뿐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가족에 뿌리 내리지 못한 부표와 같은 인생이니 말입니다. 그 죽음을 바라보는 는 그러나 결코 담담할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담담하게 전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돈을 버는 는 때 아닌 멀미를 합니다. 체한 것일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충격이겠죠. “부표와 같은 인생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남겨진 3천만 원에 불과한 유산은 분명 큰돈은 아니지만, 남겨진 가족에겐 그 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치유케 하는 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은 역사소설입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닌 허구가 가미된 역사소설이랍니다. 역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병조참의인 모정 배대유는 한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무정이란 인물로 조선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내, 배대유의 생명을 두 차례 구했던 인연 깊은 인물이자, 배대유를 두 번 죽이려 했던 인물이 배대유를 찾은 것은 어떤 의도일까요?

 

바로 한 젊은이의 졸기를 써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답니다. 여기에서 소설의 제목 ()이 나옵니다. 이렇게 두 번째 소설 역시 죽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며,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울러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과 함께 걸었던 거리, 함께 앉았던 자리, 함께 꿈꾸던 것을 회상하게 되는 계기라는 것도 말입니다. 물론, 남은 자들의 몫은 죽은 이를 향한 기억이겠죠. 물론, 이런 죽음과 기억의 주체는 끊임없이 바뀌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수명을 다한 부표를 교체 작업하듯 말이죠.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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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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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작가의 단편집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한 2022<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시리즈 10권 가운데 한 권입니다.

 

책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책 속에 실린 두 편의 단편은 모두 SF단편소설입니다.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과연 그것이 유토피아인지를 고민케 하는 내용들이랍니다.

 

첫 번째 소설인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장애아 0%에 도전하는 사회에 대한 모습입니다. 임산부 로봇이 아이를 갖고 낳게 되는 사회입니다. 임산부 로봇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잉태한 것처럼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태아가 장애를 가졌음이 드러나면 아이를 중절하고, 임산부 로봇의 기억은 다시 삭제하게 됩니다. 물론 임산부 로봇이 아이를 무사히 출산해도 그 동안은 기억, 감정은 모두 삭제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주인공 임산부 로봇은 헐스는 기억의 찌꺼기들이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과학의 실패로 인한 기억의 찌꺼기야말로 가장 유토피아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임산부 로봇이 간직한 기억의 찌꺼기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랍니다. 인간들은 오히려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고, 로봇에게서, 그것도 실패한 과학 기술로 인해 인간미를 찾을 수 있음이야말로 아이러니하면서도 큰 울림을 줍니다.

 

두 번째 소설인 소년과 소년은 문제아 중3 소년을 둔 아버지가 아들을 새롭게 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과정을 새롭게 하는 과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답니다. 반항기 가득한 아들, 공부와는 단절한 채 자기 멋대로만 구는 아들을 새롭게 하려는 아버지는 일기의 첫 장을 잘못 썼기에 아예 일기를 새롭게 쓰려고 합니다. 아들의 뇌를 모범생들, 그러나 뇌사 상태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뇌로 조금씩 바꿔 간답니다. 자신의 빼어난 의학을 통해 말입니다. 그렇게 아들의 일기를 새롭게 쓰려 하는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노력은 결국엔 몸은 아들이지만, 실상 그 아들을 몰아내고 다른 소년(아버지의 의학, 과학기술의 재료로 사용되는 희생자)이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한답니다. 이런 결말이 어떤 면에서는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 오싹하기도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발달하는 과학기술이 결코 유토피아를 만들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실패작처럼 느껴지는 버그현상이 유토피아에 더욱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또한 결국엔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인간성이 더 문제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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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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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 지원금을 지원하여 출간한 시리즈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시리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도합 10종의 작품인데, 9권의 단편소설집과 1권의 엔솔리지 시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단편집은 모두 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유재영 작가의 도메인이란 작품입니다. 책에 실린 단편은 이란 제목입니다. 제목이 의아했는데, 두 단편의 제목을 합하면 영역”, 즉 책 제목인 도메인이 됩니다. 그러니 두 단편은 별개의 소설이면서 도메인이란 책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게다가 영역은 두 번째 단편인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영역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요? 두 이야기 모두 귀신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귀신이란 존재는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영역 밖의 존재이면서 실재한다면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영역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차원의 존재입니다. 그러한 존재의 유무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입니다. 소설은 바로 이 미스터리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실제 두 소설 모두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첫 번째 소설 은 호러 소설을 읽는 느낌이랍니다. 한껏 으스스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아무 것도 없는 다소 허망한 결말을 맞습니다. 사실 두 번째 소실인 역시 그러합니다. 한껏 어떤 결말을 맞을까 궁금하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들지만 갑자기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결말을 맞게 됩니다. 아니 결말이 없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 삶이란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명확한 결말이 없는 그런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미스터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2022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시리즈 열권을 아직 모두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태 읽은 작품 가운데서는 개인적으로는 제일 재미있었답니다(역시 소설은 재미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으스스한 분위기가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법한데도 끝내 무엇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욱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입니다(평론가의 해설은 호러의 클리셰, 그 관행을 비튼 또 다른 호러, 변주곡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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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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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데뷔작품이자 2017년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을 수상한 시인장의 살인이란 소설은 본격추리소설의 느낌이 그 표지에서부터 물씬 느껴진다. 어쩐지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가 진행될 것만 같다. 이런 기대감으로 소설을 펼쳐들었다.

 

역시 그렇다. 소설은 어느 대학 연극부의 합숙과 함께 시작된다. 연극부는 매년 선배 졸업생의 부모가 소유한 자담장이라는 커다란 산장으로 합숙을 떠난다. 올해 역시 그렇다. 대신 이번 합숙에는 미스터리 애호회 회원들 역시 함께 참여하게 된다. 사정으로 인해 참가자가 줄어든 것을 메꾸기 위한 일명 땜빵으로 참여한 것이다. 신코의 홈즈라 불리는 아케치 교스케, 아케치의 조수격인 하무라 유즈루, 그리고 새롭게 미스터리 애호회 회원인 된 소녀 탐정 겐자키 히루코, 이들 세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이들 애호회 회원들이 땜빵으로 그곳에 참여하게 된 것은 모종의 의도가 있다. 바로 그곳 자담장에서 작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합숙이 어쩐지 사건을 기대하게 만든다(추리소설이니 말이다.). 그런데, 소설은 묘하게 흘러간다. 본격추리소설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좀비가 등장한다. , 이 소설 본격추리소설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본격추리소설을 기대하시는 독자들이라면 아직 실망할 필요 없다. 좀비조차 본격추리소설의 한 가지 재료가 되니 말이다.

 

어느 연구단체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폐쇄되면서 그들은 테러를 계획하게 되고 마침 자담장 근처에서 열리던 록페스티벌이 바로 그 대상이 된다. 이렇게 시작된 좀비들로 인해 자담장은 완벽한 클로즈드 서클 장소가 되고, 그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둘러싼 좀비들로 인해 시체들의 건물, 시인장(屍人莊)이 되어 버린 그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으며, 왜 그런 범행을 저질러야만 했던 걸까?

 

좀비와 결합된 본격추리소설이란 점이 이 소설의 독특함이다. 좀비로 인해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이 긴장감을 더해 주면서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좀비란 존재를 추리소설 속에 끌어 들였다는 점이 놀랍다. 본격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소설을 읽어가는 가운데 처음엔 웬 좀비?’ 했지만 어느새 오히려 좀비란 소재가 더 놀랍게도 추리소설의 맛을 더해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좀비란 존재는 단지 시인장을 만든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좀비는 더 나아가 범인의 범행에 사용되어진다. 그것도 그저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범죄가 아닌 치밀한 의도에 의해 통제되며 사용되어진다. 이런 의도를 파헤치는 추리의 과정 역시 재미나다.

 

또한 작가가 추리의 단서로 느껴지도록 던져 놓은 미끼들도 소설을 더욱 재미나게 만든다. 독자들에게 범인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실상은 속이려는 그런 정보가 말이다. 이런 줄다리기 역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 소설 속에서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몇 차례 언급되는데, <관 시리즈>를 재미나게 읽은 나로선 너무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관 시리즈>와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묘하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 마안갑의 살인역시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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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비친 악마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3
루스 렌들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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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출판사의 <세계추리걸작선>을 하나하나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몇 권 구입한 것 가운데 한 권이 이 책, 루스 렌델의 내 눈에 비친 악마란 책이다. 여러 사람들이 세 들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방은 여덟에 초인종은 일곱인 집)에 살고 있는 아서 존슨은 묘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남몰래 어두운 지하실에 내려가 그곳에서 여자 마네킹을 목 졸라 죽이는 짓을 반복한다. 한 마디로 성격이상자, 인격이상자인 아서 존슨은 지하실에서 이 짓을 해야 안정감을 찾곤 한다.

 

그런데 다른 방에 같은 이름의 존슨이 이사 오게 된다. 아서 존슨과 똑같은 A. 존슨인 앤터니 존슨. 그런데, 같은 이름인 이유로 아서 존슨은 실수를 하고 만다. 앤터니 존슨에게 온 편지를 자신의 것인 줄 알고 뜯어봤던 것. 그 후 사과를 했지만, 아서 존슨은 앤터니 존슨이 자신에게 악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오해가 쌓여만 간다. 이렇게 쌓여 가는 오해가 소설의 또 하나의 커다란 축을 이룬다. 극도로 소심한 아서 존슨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오해인데, 이 오해로 인해 앤터니 존슨의 사랑이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상당히 재미나면서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렇게 오해가 쌓여가는 앤터니 존슨을 향한 아서 존슨의 오해 가운데 하나가 그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앤터니 존슨의 방위치가 아서 존슨이 지하실로 내려가는 장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이라는 점. 이렇게 아서 존슨은 자신의 은밀한 취미생활을 방해받게 되고 점점 신경불안이 쌓여만 간다.

 

아서 존슨이 그저 신경불안이 쌓여만 가는 것이라면 그래도 괜찮을 게다. 문제는 아서 존슨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할 끔찍한 과거가 있다는 점. 남들이 볼 때는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서 존슨, 꽉 막힌 바른생활맨처럼 느껴지는 꼰대 같은 아서 존슨. 쪼잔함의 극치인 그에게는 어마무시한 과거가 있는데, 바로 한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겐본의 교살마가 바로 그다. 어두운 골목에서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인들을 둘이나 연달아 목 졸라 죽였던 살인마. 뿐 아니라 아기의 얼굴에 바늘을 서슴지 않고 꽂을 수 있는 냉혈한. 여러 범행에도 불구하고 어떤 혐의도 받지 않았던 사람. 그렇게 20여년이 흘러 더욱 미궁 속에 빠져 버린 그 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아서 존슨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마네킹의 존재는 누군가를 목 졸라 죽이고자 하는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분출구였던 것.

 

그런데, 아서 존슨은 지하실로 내려갈 기회를 찾지 못한다. 큰일이다. 심지어 어쩜 그렇게 둘의 궁합이 안 좋은지, 앤터니 존슨은 우연히 지하실 한 쪽에 있던 끔찍한 형태의 마네킹을 꺼내와 태워버린다. 이렇게 아서 존슨의 분출구는 불살라졌다. 그렇다면 다시 켄본의 교살마가 부활하고 마는 걸까? 과연 아서 존슨의 살인의 욕구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소설 속에서의 아서 존슨은 살인의 욕망에 몸부림치는 인격이상자다. 소심한 성격,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꼼꼼한 아니 작은 것에 목매는 쪼잔한 성격의 사람, 금욕주의적이고 바른 생활만 하는, 삶의 즐거움이 과연 무엇일까 싶은 사람. 그런 외형적 삶 뒤에 끔찍한 살인의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 그 살의의 출발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어린 시절, 그를 통제했던 이모의 존재가 그것이다. 깐깐한 사감선생 캐릭터인 이모의 존재가 아서 존슨 안에 악마를 키워 갔던 것이다. 아서 존슨이 목 조르던 마네킹은 이모의 옷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인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 는 아서 존슨이고 악마는 이모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존슨인 앤터니 존슨이 이고 악마는 아서 존슨인 걸까? 왜냐하면 앤터니 존슨 역시 아서 존슨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앤터니 존슨은 범죄적 성향을 가진 인격이상자에 대한 논물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아서 존슨의 진면목을 오랫동안 발견하진 못한다. 심지어 앤터니 존슨 역시 자신의 사랑이 문제가 발생할 때, 자신이 쓰는 논문 속 인격 이상자의 행동들, 모습들을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평범한 이웃, 아니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극도로 쪼잔한 이웃이 알고 보면 연쇄 살인마였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가 아닐까? 바라기는 내 눈에는 이런 악마가 비쳐 보이지 않길. 평범을 가장한 악마가 곁에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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