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샤일록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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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를 설명하는 말이 참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다작 작가라는 표현이다. 작가는 오히려 이런 표현을 즐기는 듯하다. 일 년이면 대략 5권 정도의 소설을 쓴다고 한다. 심지어 등단 10주년을 맞아서는 한 달에 한 권을 써내는 프로젝트를 했다고 하니 가히 다작을 즐기는 작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이 대체로 좋다. 이렇게 어느덧 작가의 작품들을 참 많이 만났고, 여러 시리즈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웃어라, 샤일록은 작가의 작품 가운데 다소 생소한 주제의 소설이다. 바로 금융 미스터리.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야. 반론은 거절한다.”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할지 한 방에 묵직하게 전해준다. 그만큼 소중한 돈,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이 작품의 내용이다.

 

주인공 유키는 명문대학을 나와 데이토 제일은행에 들어가게 되고, 이번에 새로운 부서인 섭외부로 발령받게 된다. 섭외부는 사실 행원들이라면 꺼리는 부서로 이 부서로 발령 받게 된다는 것은 좌천으로 받아들여지는 부서다. 섭외부는 은행의 채무자들에게서 돈을 받아내는 일을 하는 부서다.

 

그런 유키의 사수는 섭외부의 전설과도 같은 야마가다. 남들이 꺼리는 일을 언제나 웃는 얼굴로 감당해내는 야마가, 아무도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던 채권들을 성공적으로 회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야마가를 따라다니며 유키는 하나하나 배우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야마가가 시체로 발견된다. 물론, 섭외부라는 부서가, 특히, 그 가운데 특출한 성과를 거두던 야마가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기에 충분하다. 과연 야마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마구 쫓아다니진 않는다. ,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 작업이 주를 이루지 않는다. 여전히 주를 이루는 것은 야마가의 죽음 이후 그가 맡았던 채권들을 모두 이어 받은 유키가 어떻게 회수불능의 채권들을 성공적으로 회수해내는가 여기에 초점이 있다. 물론, 그런 가운데 범인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밝혀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반전이 제왕이란 별명을 가진 작가답게 여기에 작은 반전을 감추고 있다. 과연 누구일까?

 

섭외부 직원으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주인공 유키는 여러 채무자들을 만난다. 종교단체 관장, 선거에서 참패한 전직 의원, 야쿠샤의 프론트 기업 사장 등을 만나 하나하나 돈을 받아내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재미나다. 특히, 아슬아슬 정도를 벗어나면서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을 진행시켜내는 모습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나카야마 시치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들 간에 유기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는 점이다. 작품 간에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도 교차해서 등장하는 인물을 찾아내는 재미 역시 작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3장에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단체인 쇼도관의 관장이다. 이 인물은 <비웃는 숙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다시 비웃는 숙녀에 등장하게 된다. 물론 쇼도관의 교주인 진노 다케와키 역시 마찬가지. 특히 이번 이야기에서는 다시 비웃는 숙녀에서의 설정 자체가 교차하여 등장하게 된다. 관장 이나오가 재정난을 겪는 점, 그리고 교주 책 출간 사건까지. 여기에 교리의 내용도 반복해서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리먼 쇼크의 여파로 어려워진 경제, 그 책임이 은행에 전혀 없는지를 질문한다. 은행이 바로 서서 역할을 감당했다면 리먼 쇼크의 여파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특히, 섭외부가 행하는 빚을 받아내는 그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건강한 경제구조에 도움을 준다는 접근이 신선하다.

 

단지 낯선 분야여서일까? 물론 개인적 견해지만 처음에는 몰입도가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작품을 읽어가는 가운데 어느 샌가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후속 작품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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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딸 4 루팡의 딸 4
요코제키 다이 지음, 권하영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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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회자되는 가문이 있다. 바로 “L”의 일족, 도둑의 가문이다. 이 가문의 딸이 형사의 가문 아들과 결혼하였다. 이렇게 <루팡의 딸> 시리즈는 시작된다.


전설의 소매치기 할아버지, 못 따는 자물쇠가 없는 할머니, 미술품 전문 도둑인 아버지, 그리고 귀금속 전문 도둑인 엄마, 여기에 어떤 곳도 해킹할 수 있는 오빠, 유일하게 멀쩡한(?) 하나코는 형사의 가문 아들이자 역시 형사인 남편을 두고 있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안. 안에게는 과연 어떤 피가 흐르게 될까? 두 가문은 서로 안이 자신들의 피를 이어받길 바란다. 형사의 샛별이 되길 바라는 시댁, 그리고 루팡의 샛별이 되길 바라는 처가. 과연 이 사이에서 안은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안은 형사와 도둑 놀이를 하면 유독 도둑 편이 되길 즐겨한다. 과연 안에게는 형사의 피보다는 도둑의 피가 더 흐르는 걸까?

 

<루팡의 딸> 시리즈에는 또 하나의 전설적 가문이 등장한다. 바로 탐정의 가문이다. 루팡의 가문에 비견될만한 전설적인 탐정의 가문 호죠 가문의 후계자인 아가씨 미쿠모. 미쿠모의 활약은 2권에서부터 시작되는데, 3권에서는 미쿠모가 루팡 가문의 장남인 와타루와 결혼하였다. 탐정 가문과 루팡 가문의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루팡 가문과 경찰 가문의 결합에 더하여 루팡 가문과 전설의 탐정 가문이 결합하게 되었는데, 4권에서는 이 둘이 헤어진 채 시작된다. 그렇게 운명적 사랑을 하였던 둘이 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둘은 헤어졌지만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과연 둘은 헤어진 원인을 극복하고 다시 맺어질 수 있을까? 이 점 역시 흥미로운 점이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에서의 진짜 줄거리는 따로 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피해자는 전직 경찰이었다. 그렇게 범인을 추적하던 결과 범인이 특정되었는데, 용의자 역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범행 도구가 집안에서 발견되어진 채 자살한 것. 뿐 아니라 그 역시 전직 형사였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이렇게 두 사람의 죽음은 둘 사이의 금전적 문제로 동료를 죽이고 자살하는 것으로 결론 맺게 된다. 특히 경찰들이 얽힌 일이라 수사를 급히 마무리하려 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걸까?

 

카즈마와 미쿠모는 배후가 있음을 확신하고 자체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차, 실마리가 되는 또 다른 현직 형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형사 역시 둘이 찾아가기 직전 누군가의 피습으로 사경을 헤매게 된다. 어쩐지 이 사건 뒤에는 엄청난 배후가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은데, 둘은 이 사건의 진범을 찾게 될까? 앞에서 나오던 루팡 가문의 숨겨진 범죄자인 레이가 이번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루팡 가문의 오점이자 누구보다 타고난 범죄자인 여인, 과연 이번 이야기에서 그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걸까?

 

이렇게 전직 형사들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가장 큰 줄거리다. 그런데, 또 하나의 커다란 가지가 있다. 바로 하나코를 향해 뻗어오는 검은 손길이 그것이다. 안의 운동회 자리에 루팡의 가문과 경찰의 가문이 총출동하게 되는데, 바로 그곳에서 하나코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과연 그 위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 이런 못된 잔챙이가 더욱 화를 돋우는 이유는 뭘까? 아무튼 이런 양아치들이 세상엔 여전히 많다는 것. 하나코를 향한 이 끈적거리는 못된 손길이 어떤 결말을 낳게 될지도 이번 이야기의 또 하나의 아슬아슬한 즐거움이다. 이제 5권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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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승훈 외 지음 / 마카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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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스토리공모전이 벌써 10년째가 되었나 보다. 그동안 제법 많은 작품들을 만났던 기억인데, 단편 수상작품집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났다. 평소 단편을 좋아하는 편인데,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2023 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을 펼치게 되었다. 도합 다섯 편의 단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첫 번째 단편을 읽고, 두 번째 단편을 읽으며, 묘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둘 다 AI가 등장하는 SF단편소설이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싶다. 혹 응모작품을 받을 때, 주제를 정해줬나? 싶었지만,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스토리공모전이 그렇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기에 어쩌다보니 그랬나보다 싶었다.

 

이렇게 세 번째 단편을 만나 읽으면서 다시 설마? 하는 마음이 든다. 세 번째 작품 역시 안드로이드. AI, 복제인간 등이 등장하는 SF였으니까. 네 번째 작품을 읽으며, 비로소 다른 분야가 등장하며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만큼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이제 앞으로 우린 AI 로봇이 일상인 삶에서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첫 번째 단편 야구규칙서 8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에서는 인간 심판의 자리를 AI 로봇 심판이 대신하게 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미 우리 KBO 역시 로봇 심판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야구뿐이겠나? 인간다운 여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시대가 곧 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소설들이 동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인간다움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인간의 자리를 로봇이 대신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인간의 자리가 위협받는다 할지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인간다움의 중요성은 더욱 필요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 인간다움마저 로봇에게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네 번째 단편인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좀비가 주제다. 하지만 흔한 좀비소설과는 차별성이 있는 게 좀비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난 세상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극복한 치료자들, 하지만 이미 신체의 일부가 훼손된 이들을 향한 혐오에서부터 소설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삶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반백수 영화감독과 극작가의 아픈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는 여보, (Hey, chicken!)관 환경문제를 고민하게 해주는 SF단편소설 울다까지. 다섯 작가의 서로 다른 다섯 소설을 맛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단편집이다. 책을 덮은 후엔 또 다른 종합선물세트를 찾아 그전 수상작품집을 찾아보게 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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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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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란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더 다양한 작품을 읽고 싶어 작가의 책을 몇 권 구입했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바로 이 소설 인외 서커스.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작품들은 참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판타지다. 흡혈귀가 등장하는 판타지 스릴러다. 평범한 이들이 그 흡혈귀들과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 돋보인다.

 

소설 속 흡혈귀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흡혈을 행할 수 있다. 흡혈귀 소설의 공식인 흡혈귀에서 흡혈을 당하면 피해자 역시 흡혈귀가 된다는 설정은 소설 속에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쉽게 흡협귀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다. 흡혈귀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그저 흡혈만 행하고 흡혈귀로 바뀌지 않도록 파괴해버린다. 자신들과 경쟁관계가 될 흡혈귀들이 만들어지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소설 속 흡혈귀는 괴수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 박쥐로 변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흡혈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을 그런 엄청난 힘이. 무엇보다 엄청난 힘은 재생력이다. 그들의 약점이 파괴되지 않는 한 놀라운 재생력을 보이며 다시 회복되어지곤 한다.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진 흡혈귀들조차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단체생활을 한다. 서로를 향한 끈끈한 공동체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에 의해 이들은 단체생활을 한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흡혈귀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기 위함이며, 또 하나의 위협인 흡혈귀 사냥꾼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흡혈귀들을 죽이려는 컨소시엄이 존재한다. 그 대표자는 랜디라 불리는 랜돌프란 사람이다. 흡혈귀들조차 경계하게 만드는 흡혈귀 사냥꾼이다. 바로 그 흡혈귀 사냥꾼들의 모임이 서커스단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흡혈귀 집단이 입수하게 되면서 흡혈귀 집단은 인근 서커스단을 습격하게 된다. 바로 그곳에 마술사 랜디가 있다. 랜디라고? 맞다. 흡혈귀 사냥꾼으로 이름이 알려진 바로 그 이름 랜디다. 그러니 흡혈귀들은 이곳 서커스단원들을 제거하려 한다. 그런데, 이 랜디는 흡혈귀 사냥꾼 랜디가 아니다.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속았는데, 아니다.

 

정말 평범한 마술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맞다. 그의 동료 서커스 단원들 역시 평범한 서커스 단원에 불과하다. 흡혈귀 사냥꾼들이 아닌. 그런데, 흡혈귀들의 공격을 받는 이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긴장관계에서 소설이 진행된다. 서커스 단원들과 무시무시한 흡혈귀 집단과의 대결이. 사실 평범하기만 한 서커스 단원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서커스로 단련된 몸과 자신들만의 고유한 서커스 기술들이 있다. 이 기술들을 극대화하면서 흡혈귀들과 대결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흡혈귀와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어가면서도 빨리 마술사 랜디가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드러내면서 흡혈귀 사냥꾼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게 된다. 작가에게 낚였으니까. 그런데, 마술사 랜디는 정말 평범한 마술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그에게는 마술사로서의 트릭과 기술들이 있다. 다른 단원들도. 그들이 흡혈귀들과 맞서 펼쳐나가는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대결이 가슴 졸이는 맛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긴장감은 흡혈귀 집단 외에 뭔가 거대한 존재가 있다. 서커스 단원들 말고도 누군가 흡혈귀를 죽인 엄청난 존재가. 과연 그 존재는 누구일까? 여기에 대반전이 감춰져 있다. 그런데, 흡혈귀 사냥꾼들, 그들은 정말 등장하지 않는 걸까? 빨리 나타나 위기에 처한 서커스 단원들을 구해주면 안 되겠니?

 

너무나도 강력한 존재들 앞에 너무나도 약하기만 한 인간들. 그러나 그런 인간의 처절하기만 한 투쟁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이 소설의 통쾌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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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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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야스미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었는데, 마침 그 책들이 모두 기억과 연관이 있었다. 작가는 이처럼 기억에 관심이 많다. 이 책 분리된 기억의 세계역시 그렇다. 물론,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 전에 만났던 작가의 책들이 기억이 이어지지 않는 개인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 소설이었다면, 이 소설은 SF 소설에 가깝다. 물론, 광의적 의미에서는 미스터리다. 그러니 SF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의 기억은 인류가 단기기억상실증상을 보인다. 모든 인류에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모든 사람들의 기억은 길어도 10분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글이나 언어와 같은 기억들은 이어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다른 기억들은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인류는 과연 그 동안 만들어낸 문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님 인류는 대혼란을 넘어 마지막을 맞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서 소설이 시작된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소설의 관심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류는 어떻게행동하며, “어떻게될까? 여기에 관심이 있다.

 

이런 관심에서 소설이 진행된다. 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어떤 사건과 맞서 싸워나가는 형식이 아니다. 마치 같은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단편들의 모음처럼 소설은 진행된다. 인류에 대망각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에 대처하는 모습들, 그리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소설의 전반부는 이렇게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대처해나가는 지를 보여준다. 결국 인류는 각자의 기억을 저장해놓는 장치를 만들어 개인에게 장착시킨다. 마치 USB를 꽂으면 그 속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담긴 칩을 몸에 꽂게 된다. 소설의 중반부부터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마치 단편소설처럼 나열한다.

 

쌍둥이의 칩이 바뀌었는데, 알고 보니 바뀐 것이 아니라 쌍둥이 가운데 한 사람의 기억이 둘로 복사되어 두 사람에게 들어갔다. 그럼 둘 중 누구의 기억이 진짜인 걸까? 둘 중 누구의 기억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길에서 우연히 부딪힌 남녀, 둘은 이 사고로 칩이 빠져버린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서로의 칩을 자신에게 꽂았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칩을 거부하는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이어지지 않는 기억속에서도 공동체를 이어간다. 과연 그 공동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기억을 담은 칩으로 각자의 기억을 이어가다보니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죽은 가족의 칩을 보관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꽂게 되면 그 사람의 기억이 그 사람의 몸에 심어짐으로 죽은 이와 대화가 가능하게 되고, 심지어 몸은 다른 이지만, 기억은 사랑하는 가족인 사람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이로 인해 몸을 빌려주는 직업까지 생긴다.

 

이처럼 작가는 기억에 대한 또 하나의 실험을 이 작품 속에 풀어 놓고 있다. 처음 기대했던 그런 추리소설이 아닌 SF 소설이어서 약간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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