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 세계 최고의 지성 148명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이충호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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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제목이 어마무시하다.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라니. 이 작은 책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그 자부심이 느껴진다. 설마~ 란 심정으로 책장을 펼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이론들에 때론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기도 하고, 때론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며, 때론 입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때론 이해되지 않아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도 하고.

 

이 책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 있다.

「세계 최고의 지성 148명에게 물었다」

 

그렇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지성에게 물은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럼 어떤 물음일까? 바로 이런 물음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고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 〟

 

이 물음은 2012년 ‘엣지’ 질문이다. 먼저, ‘엣지’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 1981년 후기 산업 시대의 주제들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게 리얼리티 클럽이라고 한다. 이 클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모험을 제공한다고 자타가 자부하는 클럽인데, 1997년 온라인으로 그 장을 옮기면서 이름을 ‘엣지’라고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매년 질문 하나를 정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각계각층에 속한 최고 지성 회원들이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2012년 질문에 대한 148명의 세계 최고 지성의 답이 실려 있다.

 

심리학자, 생명과학자, 동물행동학자, 인류학자, 물리학자, 노인학자, 정신과교수, 작가, 배우 등 각계각층의 지성이 생각한 가장 좋아하고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들, 즉 세상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가운데는 다윗의 자연선택설처럼 많은 이들이 1순위로 꼽는 이론도 있으며, 그 외 각기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생각하는 여러 이론들이 실려 있다. 이들 이론들 하나하나를 읽어가는 가운데 왠지 똑똑해진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알고 있던 이론들이 등장하면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 싶기도 하고, 모르는 이론들이 나올 땐 이런 이론도 있구나, 이렇게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구나 싶은 내용들도 있다. 특히, 자연과학적 접근과 인문학적 접근의 이론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점도 재미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차례를 살펴보며 관심이 있거나 궁금한 이론을 찾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론의 핵심을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때론 어떤 이론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은 것들도 있지만(이는 짧은 지면으로 인한 설명의 매끄럽지 못한 이유도 있겠고, 나의 무지 탓도 있겠다.). 또한 읽어나가는 가운데 흥미로운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런 이론에 대해 혹 설명하는 책들로는 무엇이 있을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이 책을 통해 누리게 되는 부수입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멀리할 책이 아닌,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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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리포트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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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생명도 가벼운 것은 없다. 누군가의 잘못에 의해 생명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그 생명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회야말로 공의가 살아 있는 사회일 게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런 공의가 살아 있을까?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말은 참 많이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긴 할까? 그들의 가슴은 어디를 향해 열려 있는 걸까?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란 이 책은 JTBC 방송의 <이규현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특집 3부작으로 방송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리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과연 우리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을까 싶다. 우리 대한민국을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아니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의지가 우리에게 있을까 싶다.

 

자그마치 976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다. 한 생명도 가볍지 않은데, 976명의 희생자라니. 이런 엄청난 사건임에도 여전히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오히려 희생자 가족을 더욱 큰 상실과 슬픔으로 몰아넣는 사회가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고,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또 하나의 가해자임에 분명하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고, 절망과 무력함에 빠져들게 된다.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윤리마저 포기할 수 있는 기업들. 책임을 통감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신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책임전가에만 능력을 발휘하는 관계부처들. 법의 미비만을 핑계로 적극적인 역할을 방기한 정부. 그러면서도 정작 법다운 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국회. 자신이 이룬 학문적 지식과 권위를 기업을 위해 팔아먹은 학자들. 그리고 무엇이 불편하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진실을 파헤치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방송미디어. 여기에 무관심한 우리 모두. 정말 종합 세트다.

 

단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상품을 구입하여 사용하였을 뿐인데, 평생을 자신의 손으로 자녀를 죽였노라는 죄책감에 살아가야만 하는 희생자 가족의 그 아픔, 눈물은 과연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렇기에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방송과 이런 책이 고맙다. 더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고 함께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학물질의 추적, 관리는 물론 공산품 관리도 무방비로 뚫렸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부처는 아무 곳도 없었다. 모두 당시 법대로 했다는 것만 줄곧 강조했다. 분명 피해가 발생했고 수 백 명이 사망하고 다쳤는데 가해자도,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과와 위로 대신 빠져나갈 방법부터 찾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수많은 참사 직후 익숙히 봐왔던 풍경이기도 하다.(88쪽)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이미 공식 활동을 마감했다. 활동 연장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을 향해, 90일간 할 만큼 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 참 대단한 주장이다. 여전히 절망적인 우리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절망을 뚫고 희망의 공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길 기도해본다. 우리 모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 밝은 내일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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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한국 현대사 - 이완용에서 노덕술까지,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은 악질 매국노 44인 이야기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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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청산되어야 할 역사는 여전히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일의 역사 아닐까? 하지만, 그 청산이 쉽지마는 않다. 여전히 친일하였던 자들 후손들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방송매체만 보더라도, 보수 신문 메이저 삼사가 모두 친일의 당사자가 세우고 여전히 그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국영방송국 이사장이 친일의 후손이다. 그러니 방송매체가 이런 친일의 역사 청산에 기사 한 줄 제대로 쓰지 않으리란 것은 명확하다. 교육계 역시 만만찮다. 친일 당사자가 세운 대학교가 민족주의 대학으로 탈바꿈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기도 하며, 수많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몰아세운 대표 친일파가 여전히 여자대학을 대표하는 대학에 버젓이 동상이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정치인들 가운데도 많다(이 부분은 많을뿐더러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국가 최고 책임자들 역시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여전히 한국 사회는 친일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친일 당사자의 후손들은 여전히 친일의 허울을 벗어던지지 못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에겐 친일논란이 그저 불편할 뿐이다. 우리 역시 여전히 친일문제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했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친일의 잔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무능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하고.

 

여기 우리를 조금은 자유롭게 할 책이 있다. 정운현 작가의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는 이러한 우리에게 친일파 44인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1999년에 나온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정판으로,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더 추가하였으며, 그간 새롭게 달라진 내용들이 개정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아니면 모두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어느 친일파 후손의 논리 주장처럼 우리 모두 어쩌면 크고 작은 친일의 행위를 보였던 이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친일을 한 일들이 우리 각자의 선조들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소극적 친일이나 타의에 의한 친일, 무의식적 친일을 말하지 않는다. 자발적이고 적극적 친일, 의도적 친일을 행한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그 출발이 억압에 의한 시작일 수도 있겠다. 또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서의 친일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국엔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친일의 행위를 한 이들, 그들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친일의 행위를 하여 쌓은 것들이 해방이후에도 여전히 그들과 그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었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일제의 하수인으로 활동한 것들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해방이후 정부에 의해 그 활동들을 경력으로 높게 평가받아 친일의 덕을 보며 탄탄대로를 걸었고,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그들만의 성을 쌓은 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금수저 인생이 아닌 서러움과 부러움 때문에 화가 나는 것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친일에 대한 묵인은 공의의 상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엇보다 친일로 축적한 것이 금수저가 되어 대물림 되는 사회라면 이는 우리 사회에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기에 그렇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많은 경우 독립운동을 하느라 힘겹게 된 삶의 무게가 그 후손들에게 대물림 된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옳은 일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보상받기는커녕 가난의 굴레를 여전히 쓰고 있는 사회.

 

이는 암암리 우리들에게 옳을 일을 하면 망하고, 조국이건 뭐건 상관치 않고 센 놈 편에 붙으면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 그렇기에 친일의 역사를 바르게 청산하는 일은 괜스레 과거를 끄집어내어 평지풍파를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며,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일인 게다.

 

또 하나 화가 나는 것은 친일을 행한 이들과 그 후손들의 반응이다. 친일을 하였음에도 해방 후 국가유공자 대접을 받았던 몰염치한 모습. 친일의 역사를 도리어 왜곡하여 민족주의자라는 둥, 초기의 독립행위를 들어 독립운동가라는 둥, 겉으로 드러난 친일은 실제 독립을 위한 위장이었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망발을 일삼는 파렴치한 모습을 책 속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정말 몰염치한 인생들이며, 파렴치한 인생들이다.

 

물론, 어느 친일파의 후손처럼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조의 잘못을 후손이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마땅한 모습이 아닐까. 심지어 그 친일의 행위로 얻은 이점들을 자손들이 누렸을 때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 훈훈해지며 희망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여기 적힌 44인 가운데는 친일의 행위를 본인 스스로 사죄하며, 진실한 참회를 행했던 분들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극히 적지만 말이다. 아울러 그 후손이 자신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사죄한 경우도 있고. 이처럼 잘못에 대해 시인함과 역사 앞에 사죄하는 행위가 역사 청산이다. 이러한 사죄와 역사 청산이 이루어질 때, 우린 친일의 과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친일파를 향한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로 시작하여 친일로 끝을 맺은 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상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세웠을 수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의기를 지켜내지 못하고, 도리어 변절하여 더욱 일제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던 행위들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아울러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도 한다. 아무리 옳은 일을 했던 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바로 서야 진짜다. 끝까지 바로 서지 못한다면, 그전에 보였던 그 어떤 모습도 허상에 불과하게 된다. 나의 삶도 끝까지 바로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역사 앞에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면. 이를 위해 꼭 한 번 읽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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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무지와 오해로 얼룩진 사극 속 전통 무예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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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들은 사극을 참 좋아한다. 방송국에서 그토록 끊임없이 사극을 만들어 방영하고 있음이 그 반증이다. 게다가 이런 사극의 시청률이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사극불패’란 말이 나올 정도일까. 이런 사극의 순기능이 적지 않다. 사극이 방영되면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곤 한다. 이런 사극사랑과 관심은 자연스레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은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역기능이 없지 않다. 픽션을 원칙으로 하는 사극이기에 그 역사해석에 자유로움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자유로움을 정작 시청자들은 역사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 사극이란 옷을 입을 때, 시청자들은 이를 역사로 오해하게 된다. 특히, 역사적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내용들의 경우 이런 잘못된 역사적 인식은 우리에게 잘못된 역사적 정보를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책이 있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란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 우리의 옛 무예에 관심을 갖고 연마하는 무술인이자,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이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사극 속에서 발견되는 조선 시대 전통 무예의 오류를 책을 통해 들려준다. 그 내용이 흥미롭고, 어렵지 않기에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고증에 바탕을 둔 내용을 담고 있어,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역사교양인문서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잘못된 역사적 정보가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스레 주입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된 역사적 정보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넘어갔던 잘못된 역사적 사실들이 많았음을 알게 됨이 이 책이 전해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사극 속에서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엑스트라 포졸들이 들고 다니던 무기(당파: 삼지창처럼 생긴 무기)가 실상은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들이 사용하는 무기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우습고 놀랐던지. 게다가 이 무기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여온 무기인데, 어느 시대건 포졸들이 자연스럽게 들고 다녔던 모습을 사극 속에서 보면서도 모르는 무지라니. 게다가 조선시대 장수들이 삼국시대의 검을 들고 싸우는 모습이 도리어 자연스럽고. 일본식으로 칼을 방에 걸어둔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런 모습들 모두가 역사적 고증에서 벗어난 모습이란다. 심지어 왼손에 칼집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실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란다.

 

이 뿐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중국식 갑옷을 입고 출연하고. 사극 속에 등장하는 활 쏘는 장면은 거의 절대 다수가 우리 전통 활쏘기가 아닌 유럽식 활쏘기란다. 게다가 190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영국식 안장이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말 위에 얹어 있단다. 역시 사극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시간여행도 자유자재일뿐더러, 그 옛날 이미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극 속에 등장하는 말이 전투용 말이 아닌 경주용 말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기병은 절대 말에서 내려와 싸우지 않는단다. 말에서 내려오는 순간 기병이라는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극에선 항상 내려와 멋진 칼솜씨를 뽐내니 사극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이점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진정한 멋진 사내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사극 속에 등장하는 무기와 전투에 관련하여 이렇게나 많은 역사적 오류가 있구나 싶어 놀라게 된다. 실상 이 부분에 있어 바른 역사적 고증 위에 세워진 소품들이 없다 말할 수 있을 정도임을 알게 된다. 물론, 사극이야 픽션의 드라마일 뿐 역사적이고 교육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비록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극을 통해 역사적 정보를 얻는다 할지라도.). 하지만, 저자는 사극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에서도 사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오류들이 이 책,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와 같이 좋은 책들을 통해 줄여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사극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리라 여겨진다. 아울러 사극을 통해 과거를 보게 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바른 역사적 정보를 전해줄 수도 있겠고 말이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사극 속에서 발견되는 무기와 관련된 역사적 오류를 알게 해줄뿐더러, 우리의 전통 무기들에 대해 쉽고 재미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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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Graphic Novel 2016.7 - Issue 18, 빙하시대
피오니(월간지) 편집부 엮음 / 피오니(잡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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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하나의 작품을 택하여 깊이 살펴보면서 당시 시대상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잡지인 『월간 그래픽노블』 18호(2016년 7월호)를 읽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니콜라 드 크레시라는 프랑스 작가의 『빙하시대』이다. 이 책은 루브르 만화 컬렉션 첫 번째 책이라고 한다.

 

잡지가 다루는 내용은 대략 이런 순서다(내가 처음 만난 『월간 그래픽노블』 17호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미 이런 패턴을 형성하고 있는 듯싶다.) 먼저, 다루게 되는 작품에 대한 리뷰가 먼저 이루어진다. 스토리는 대략 어떤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등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이렇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는 작가에 대해 살펴본다. 그러니 『빙하시대』의 작가 니콜라 드 크레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이번 호에는 번역자와의 인터뷰도 함께 싣고 있다. 다음으로는 이 작품의 콘텍스트인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번엔 주로 <루브르 만화 컬렉션>을 이야기한다. 2번째 작품부터 10번째 작품까지 모두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이 부분을 읽다보면, 책을 구입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된다. 모두 <열화당>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번 호를 통해, 무엇보다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있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작은 상식들도 알게 되고(물론 가본 척하려면 내공을 더 길러야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그래픽 노블 잡지를 통해, 만화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됨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래픽노블에 대한 대중적 인문학 잡지라고 말할 수 있는 『월간 그래픽 노블』(Vol. 18)을 통해, 만화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깊이가 있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래도 이번 호에서는 『빙하시대』를 이야기하며,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해석에 대한 문제를 많이 생각해보게 한다. 잡지는 ‘작품을 시대 환경과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감상하는 것’과 ‘오독하더라도 자기 상상력대로 감상하는 것’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언제나 극단은 문제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우린 알아가야 한다. 작품을 잉태하게 한 시대적 삶의 못자리 역시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작가의 의도로만 작품을 해석한다면, 그 작품은 예술작품이 아닌 사용설명서를 곁들인 제품에 불과할 것이다(사실 기계로 동일하게 찍어낸 제품 역시 사용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설명서를 무시하고 말이다.). 작품을 만들어낸 콘텍스트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을 읽어내고 해석해내는 독자의 콘텍스트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 예술품을 감상할뿐더러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물론, 과한 오독은 공감이 아닌 웃음거리가 될 수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호를 읽고 난 후엔 욕심이 생긴다. <루브르 만화 컬렉션>을 모두 읽고 싶은 욕심이. 그리고 괜스레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17호 리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월간 그래픽 노블』은 한 코너도 버리지 말고 정독하길 권하고픈 좋은 잡지다. 자꾸 인터넷 서점에서 그래픽 노블들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점만 빼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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