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 우리 시대, 연애하지 않는 젊은이들에 대한 심층 보고서
우시쿠보 메구미 지음, 서라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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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왜 애인이 없냐, 왜 연애를 못하는 거냐.’는 질문에 자연스레, ‘난 연애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야.’란 대답이 따르곤 했더랬다. 실제로는 어떤 이유에서건 연애를 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안하는 거라고 짐짓 허세를 부려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스스로 난 연애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 그렇고말고.’ 이런 식으로 위안을 삼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이렇게 말한다. 연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이 책은 우시쿠모 메구미의 저작으로 사회과학서적으로 볼 수 있겠다.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이 연애를 안 하는 건지 아님 못 하는 건지를 이야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못 하는 거다. 물론, 각자 개인적 선택에 의해 안 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 선택 이면에는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사회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에 실제적으로는 연애를 못하는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 사회를 진단한 서적이다. 하지만, 오늘 한국 사회와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깝고, 괜스레 오늘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포기세대가 되어버렸다. 연애불황을 겪어야만 하는 시대. 왜 그럴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책은 다양한 사회적 이유들을 들고 있다.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다. 경제의 거품이 걷히고, 빈곤을 당첨 받은 세대, 그들은 연애불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낭만은 가난이란 현실 앞에 그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들은 연애보다는 야근을 택해야만 한다. 가난한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나가야만 하는 젊은이들에게 연애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특히,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의 확산이란 괴물에 쫓기고 있다. 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멍청한 인간들이 이를 고용기회의 확산이라 말하고 있는지. 그들의 뇌구조는 어떤지 의심스럽다. 그런 자들이 국가 정책을 만들었으니,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20대 남성의 경우 비정규직 남성 가운데 모태 솔로가 41%나 된단다. 이들은 연애 경험도 없을뿐더러(고로 연애 기술이 없어 기회가 되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커졌다.), 경제적 능력도 되지 않기에 자신감도 없다. 그렇기에 이들의 연애 악순환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낭만이란 단어는 별나라의 언어처럼 되어버렸기에 말이다.

 

물론, 이런 이유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원인들을 들고 있다. 그런 예로, 캥거루족의 증가. 다양한 연애 리스크의 증가(예전에 비해 스토커, 성희롱, 데이트 폭력, 리벤지 포르노 등 다양한 연애 리스크가 증가함으로 연애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되고, 연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것.). 미디어를 통해 성에 대해 빨리 눈 뜨기 때문에 성에 대한 설렘이 없어지고, 또한 가상연애를 통해 성적 욕구를 쉽게 해결하기에 거추장스러운 연애의 욕구가 낮아지게 됨. 세대는 바뀜에도 여전한 옛 연애의 환상들과 현실의 충돌로 인해 연애로부터 멀어짐. 부모의 지나친 사랑의 탓. 등 다양한 이유들을 들고 있다. 물론, 이들 각각의 경우, 보다 더 상세하고 다양한 이유와 경우의 수들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책은 이런 설명들을 알기 쉽게(너무 자세하여 다소 지루한 느낌도 없진 않다. 그만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하고 있어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이런 연애불황의 시대, 연애포기의 시대를 맞아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하다. 오늘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낭만이란 두 글자가 살아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비록 쓰러지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올라 설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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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 - 정신분석학이 사랑의 존재를 답하다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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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참 독특하다.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책 제목은 이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이 책은 라깡의 정신분석학으로 예수 사랑을 바라보는 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끄 라깡, 솔직히 잘 모른다. 그저 정신분석학자라는 정도. 저자는 라깡이 정신 분석의 사상가라 불린다고 말한다. ‘사상가란 칭호에서 느낌이 온다. 어쩜 이 책, 머리가 지끈지끈한 내용일 것이라는. ‘정신 분석의 사상가라는 라깡이 예수 사랑을 욕망한단다. 정신분석학도 머리 아플 텐데, 거기에 사상가란 칭호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어려운 말들이 가득할까 걱정이 든다. 혹 머리에 쥐가 나면 안 되는 데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책을 읽어본다.

 

책은,,, ~ 어렵다. 물론 누군가는 쉽다 말하겠지만, 난 어렵다. 그러니, 이건 전적으로 나의 무지 탓일 게다. 라깡을 잘 모른다는 사실, 게다가 기독교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잘 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이 책을 더 힘들게 만든다. 아마도 영성의 색깔이나 신학의 색깔의 다름이 더 힘들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저자는 신학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지만, 결국 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신학이 될 수 있기에 이런 독특함은 오히려 선지식과 충돌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니, 결국 책이 어려운 이유는 전적으로 독자인 내 탓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레 저자 탓으로 돌려본다면,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친절한 설명보다는 때론 비약과 때론 배배 꼬인 장문으로 내용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쩌면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행간을 뛰어넘는 듯한 표현들이 제법 많다. 물론, 이것 역시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미천한 책읽기의 수준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저자는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의 롤 모델인 예수를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예수가 왜 인성에서 신성이 되었는지를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고 말이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고. 이것을 탯줄거세, 구강거세, 항문거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성욕거세, 언어거세, 죽음거세, 이렇게 일곱 단계로 말한다. 이런 각각의 단계를 성경구절과 예수 사랑으로 투영하며 풀어나간다. 여기에 시인답게 묵상의 시 한편으로 각 단원을 마치고 있다.

 

태어나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자연스러운 장벽들, 이로 인한 거세 즉 상실들, 이러한 상실은 삶에 상처를 낳게 되고, 이런 상처를 외면하기보다는 상처를 바라보며 상처를 껴안을 때 자신을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아울러 사랑받으려는 욕망보다는 사랑하려는 욕망이 될 때, 우리의 인생이 사랑에 머물게 되고, 이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내 삶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가 된다고도 말한다.

 

솔직히 저자가 말하는 모든 내용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 힘이 되는 것은 삶에 상처가 없는 인생은 가짜인 듯 말하고 있다는 점. 게다가 이런 상처를 오롯이 보듬어 안을 때, 그 안에서 자신을 사랑할 힘이 솟아난다는 점. 이런 대표적 예가 바로 예수였다는 저자의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신앙인인 나에게는 알 수 없는 힘이 됨이 사실이다.

 

우린 세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가.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상처 없는 인생인양, 쇼윈도 행복을 만들어간다면 오히려 우리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파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상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직시할뿐더러 소중하게 끌어 안음으로 예수 사랑을 욕망하고, 그 예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인생이 된다면. 그렇게 함으로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를 내 삶의 공간으로 끌어와 하늘나라를 살아낸다면. 이런 인생, 이런 상처,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다.

 

,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부족함 탓이다.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 이해하지 못했으면 또 어떤가. 그 안에서 뭔가 내 삶에 힘이 될 몇 가지 얻었으면 족하지 않을까.

 

얇은 책자라고 얕봤다가 이 책 읽느라 제법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소비했다. 피곤하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상실, 또 하나의 상처일까?

 

마지막으로 저자의 후기 가운데 한 구절을 적어본다.

 

사랑은 사랑받고 싶은 상처 속에 머물기에, 그 상처를 사랑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진리를 깨닫게 하고 자유함을 준다. 그 자유는 충동적인 쾌락이 아니라 고통을 딛고 선 생명이다. 그 생명은 사랑이기에 죽음마저 생명이고 싶은 욕망이다.(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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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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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는 괜히 금지구역처럼 느껴져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면 더욱 찾게 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4면을 감싸고 있는 책장 가운데 어린 우리 형제들이 볼만한 책은 한정되어 있었다. 바로 그림이 많은 백과사전. 이 가운데 난 뱀 사진이 잔뜩 나오는 권을 좋아했더랬다. 언제나 그 책을 펴고 멋진 컬러 사진의 다양한 뱀을 보며 좋아하곤 했다(지금은 뱀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뱀 사진을 좋아했던지, 요즘도 명절에 형제가 모이면 간혹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백과사전이란 말은 나에겐 그 당시 그림만 쓱쓱 살피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 나에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이란 책은 먼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려 보며, 책을 든다. 결코 두껍지 않은 아담한 크기의 예쁜 책 디자인이 먼저 색다르게 느껴진다.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무지 두껍고 클뿐더러 외형 디자인은 칙칙함을 자랑하며, 게다가 여러 권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게다. 이렇게 예쁜 백과사전이라니 싶어 이채롭다.

 

여기에 더하여 그동안 역사소설로 많이 만났던 이재운 작가가 써낸 백과사전이란 점 역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이재운 작가는 벌써 이런 작업물을 여러 권 내놓았는데, 난 소설만 여러 권 읽었을 뿐 이런 작업물은 처음 만났다.). 이처럼 다양한 감정을 버무려 책장을 펼쳐본다.

 

책을 읽는 가운데 또 하나의 색다른 느낌에 빠져든다. 백과사전이라면 그 내용이 따분할 것이라 여겨졌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모호하게 여겼던 많은 내용들을 마치 개그코너 <애정남>에서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주는 것 마냥 알려주고 있어 신나게 끝까지 읽게 된다. 정독하는 백과사전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마치 일반 상식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전해주는 것 같아 재미나게 읽게 된다. 게다가 금세 읽힌다(물론 몇몇 개념들은 조금 딱딱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이런 내용들 역시 명확하게 짚어주기에 유익하다.).

 

물론 모든 어휘, 개념을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정의는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렇기에 책제목에 ‘상대적이며’란 단어가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견이 없는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개념들, 어휘들이 있어, 정확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내려주기에, ‘절대적인’이란 단어 역시 책제목에 들어간다.

 

여기에 책 제목을 또 하나 살펴보면, ‘우리말 백과사전’이다. 그럼, 여기 사전은 사전(事典)일까, 사전(辭典)일까?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말 어휘를 더 바르고 정확하게 정의한 사전이다.” 그러니, 어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사전(辭典)의 의미가 있겠다. 하지만, 실제 많은 내용들은 단순히 어휘에 대한 정의보다는 어떤 사물에 대한 정의 개념이 더 많다. 예를 든다면, 과일과 채소를 나누는 기준은? 찌개와 전골의 차이? 나비와 나방의 차이? ‘벚꽃이 피었다’고 말하기 위해선 얼마나 피어야 하나? 등 사전(事典)으로서의 내용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지 않나 싶다. “아울러 우리말 어휘에 생명과 힘을 부여한 성과물이다.”라고 말이다.

 

이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내용들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알게 된 것들이 참 많다. 작은 책이지만, 많은 지식은 단번에 습득한 마냥 배부르다. 이제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실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보다 더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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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존 켄드릭 뱅스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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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켄드릭 뱅스(1862-1922)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만난 유령』(고양: 책읽는 귀족, 2016)을 통해서였다. 아마도 이 책이 그의 저작이 국내에 소개된 첫 번째 책이었을 게다. 『내가 만난 유령』을 읽으며, 독특한 유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분이구나 싶었다. 소설 아닌 듯 소설이면서도 인문학 서적인 듯싶으면서도 아닌 듯 느껴지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그의 책을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란 책이다.

 

어째 이 책은 첫 번째 만남보다 더 독특한 만남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책은 온통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책이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마냥 언어유희가 가득하다. 언어유희 역시 풍자적이다. 물론 이 언어유희로 인해 책의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유희 단어에 대한 각주를 읽어야 하니 말이다.

 

이 책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는 이미 110년 전의 책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 우리의 세태를 향한 풍자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세월은 흘러 세상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세태는 달라지지 않아서는 아닐까? 특히, 오늘의 세태, 오늘의 대한민국이야말로 ‘엉망진창 나라’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오늘 우리들 역시 앨리스처럼 환상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깨어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현실임에 오늘 우리의 아픔이 있고, 답답함이 있겠다. 그럼에도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오늘 우리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

 

먼저, 작가가 이런 풍자를 하게 된 것은 공산주의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구원할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사상에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있다. 아무리 좋은 이상을 가지고 시작할지라도 그 이념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탐욕 앞에 공산주의는 더욱 엉망진창의 모습을 연출하게 될 테니 말이다. 작가는 바로 이런 점을 통찰력을 가지고 예언하듯 쓴 글이 본 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예언은 결과로 드러났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엉망진창 나라가 될 수도 있고, 파라다이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이상한 나라’와 ‘거울 나라’를 모두 여행하고 돌아온 앨리스는 또 다시 새로운 나라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은 바로 ‘엉망진창 나라’다.

 

정말 그곳은 엉망진창 나라다. 모든 것을 개인 소유가 아닌 시가 소유한다면서 심지어 사람들의 이빨마저 시가 소유한다. 이가 튼튼한 사람도, 부실한 사람도, 모두 평등한 혜택을 누려야 한다며 말이다. 시 뿐 아니다. 아이들도 시가 소유하고, 문학 예술 역시 모두 시가 소유한다. 사회적 평등주의에 대한 풍자가 가득 담겨 있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커다란 철도를 만나게 된다. 시 전체를 휘두르고 있는 기다란 철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철도다. 이 철도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물론, 시장인 모자 장수의 입장에서 타당한 이유지만.). 이렇게 열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사고의 위험성이 사라졌다. 항상 서 있으니 열차를 놓치는 사람도 없다. 열차가 덜컹거릴 걱정도 없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결과란다. 어쩐지 이런 엉망진창 나라를 보며,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 생각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왜 이들 나라가 엉망진창 나라일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그뿐 아니다. 가스공장에서 가스의 냄새가 난다고, 가스를 향수로 바꿔버렸다. 이제 가스의 악취가 나지 않고, 가스폭발의 염려마저 사라졌다고 자랑하는 모자 장수의 모습은 정말 어이없을 뿐이다.

 

시의 모든 아이들은 시가 소유하여 시 당국이 기르게 된다. 그런데, 그 책임자는 다름 아닌 공작부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기가 운다고 때리고 버렸던 그 공작부인이 시의 모든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책임자요, 엄마가 된다. 인재기용 능력이 참 대단하다. 그러니 엉망진창나라일 수밖에.

 

(詩)를 관장하는 부서가 있어, 시를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찍어낸다. 그러면서 그 시스템이 얼마나 유익한지 떠벌리는 모자 장수라니.

 

그 외에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엉망진창인 나라. 그곳의 앨리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앨리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기분이 바로 ‘엉망진창 나라’ 속의 앨리스가 느끼는 기분이기에 말이다.

 

모자 장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알고 있어서만은 아닐 게다. 그나마 소설 속에서 존재하는 그들은 위험하지 않다. 소설 속에만 존재하기에. 하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 시대의 모자 장수들의 전횡은 어찌해야 할까? 110년 전에 썼던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가 오늘 현실에도 여전하다는 것,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현실인 것을. 결국엔 이 꿈같은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아니 현실을 변혁시켜나가야 한다. ‘엉망진창 나라’에서 말이다.

 

『엉망진창 나라의 앨리스』, 오늘 우리 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촌철살인 같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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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 하늘로 보내는 마지막 인사
김서윤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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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의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란 책은 제목만 보면, 왠지 달달한 사랑 내용이 가득한 책일 거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랑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달달하진 않다. 이 책은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달달하기보다는 애틋하고, 먹먹한 사랑을 담고 있다. 바로 죽은 이를 향한 남은 자들의 글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죽은 이를 향해 쓴 제문, 애사, 묘비명, 행장 등을 모은 것들이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부모의 가슴에 묻다 -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애끓는 아픔을 이야기.

2장. 형제, 절반의 상실 - 몸의 절반을 떼어내는 것과 같은 형제의 죽음을 이야기.

3장.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부모의 죽음을 이야기.

4장. 나의 반쪽이여! - 배우자의 죽음을 이야기.

5장. 줄이 끊어지다 -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

6장. 가는 세월을 어찌 막으랴 -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이야기. 스스로 쓰는 묘비명.

 

사실 어느 죽음인들 아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모든 죽음은 무겁다. 그럼에도 몇몇은 너무나도 안타까워 심금을 울리는 사연들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강정일당이란 여자 선비가 쓴 막내딸의 묘비명이 그렇다. 이 여인은 자식을 아홉 낳았다. 그런데, 한 번도 아이들에게서 ‘엄마’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극심한 가난 탓인지 모두 돌이 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아홉째인 막내딸만은 건강하게 길러보길 원했지만, 결국 막내딸마저 돌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어찌 이런 인생도 있을까 싶다.

 

세상을 다 가진 왕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딸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애끓는 심정을 토하기도 하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집안 사정이 나아지기에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효도하겠다 생각했건만 부모님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보낸 부모님으로 인해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연들도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스승을 먼저 보내기도 하며, 마음에 맞는 친구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수많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책은 이야기한다.

 

혼인식보다는 장례식을 가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왜? 기쁨을 함께 나누지 않더라도 슬픔은 반드시 나누고 위로하라는 의미로?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장례식에 다녀오면,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죽음의 무게 앞에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다시말해 장례식은 남은 자들에게 유익함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가 그렇다. 수많은 죽음, 그 죽음을 애통하며 남긴 글들을 보며, 무엇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 곁에 계심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부모님 역시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부모님을 향한 자세가 달라지리라. 자녀를 향해서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서도, 친구들을 향해서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많은 유익을 선물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모두 웃는 가운데 홀로 울며 태어난다. 하지만, 죽을 때는 어떤가? 그 반대가 되어야 마땅하다. 모두가 울되 죽어가는 당사자는 웃으며 갈 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반대라면 어떨까? 난 죽어도 못 죽겠다고(?) 버티는데, 누군가는 그 사람의 죽음을 속 시원해 한다면 말이다. 역시 죽음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바로 이 책, 『그대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가 그렇다.

 

아울러 조선시대의 죽은 이를 향한 애도를 모아 놓은 서적이란 점에서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점 역시 이 책의 유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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