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7년 제157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달의 영휴.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엄청난 타이틀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책을 펼쳐들게 만들고야 만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이 더욱 그러하다. ‘압도적 문장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을 모른 척 하기는 쉽지 않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설렘을 안고 책장을 펼쳐든다.

 

처음부분에서 받게 되는 느낌은 다소 오싹함이었다. 오사나이라는 사람의 어린 딸 루리가 어쩐지 루리면서 루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어쩐지 루리 안에 또 다른 루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어린 루리가 7살에 신열을 앓고 다른 과거를 갖게 된 것 같아서. 이런 부분이 다소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런 오싹함은 사라지고, 달큰한 사랑이 가득하다. 한 마디로 이 소설 달의 영휴는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오싹하리만치 강한 사랑이야기. 죽음마저 이겨내는 사랑이야기다. 제목이 왜 달의 영휴인지는 소설의 중반부쯤 가면 명확하게 알게 된다.

 

소설 속엔 도합 네 명의 루리가 등장한다(루리란 이름은 셋이다.). 유부녀이면서도 한 청년을 만나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하게 된 루리. 그리고 그 루리가 다시 태어나는 루리들.

 

소설 속에선 죽음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언급한다. 하나는 나무와 같은 죽음, 또 하나는 달과 같은 죽음. 세상을 만든 하느님은 첫 인간에게 이 둘 가운데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나무와 같은 죽음. 나무가 씨앗을 남기고 죽듯, 이제 인간은 자식을 남기고 죽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달의 죽음도 있다. 이런 접근이 재미나다.

 

그런데, 소설 속 루리는 자신은 달의 죽음을 맞길 갈망한다. 달이 차면 기울어지고, 기울어지면 다시 차오르듯, 반복되는 삶. 이것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죽음에 대한 접근이다(환생이면서도, 과거의 존재에 매여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철학적이거나 종교적 논쟁은 논외다. 소설은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닐 것이기에. 달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또 다시 머물기를 바라는 사랑이 섬뜩하리만치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이니 말이다.

 

난 몇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날 거야. 아키히코 군이 비칠비칠 할아버지가 돼도, 젊은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아카히코 군 앞에 나타나서 유혹할 거야.”

불사신?”

불사신이 아니야. 죽는 건 죽어. 하지만 죽는 방식이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 나는 달처럼 죽을 거니까.”

(중략)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181-2)

 

이런 사랑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소 섬뜩한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사랑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면, 누가 행복한 걸까? 죽음을 반복하는 이? 아님 죽은 자를 그리워하던 살아있던 사람일까? 이렇게라도 만난다면 정말 행복할까? 모를 일이다. , 상관없다. 작가가 말하려는 건 이렇게 해서 누가 행복한가가 아닐 테니 말이다. 작가는 그렇게까지 사랑하고 강한 집념을 가진 사랑을 말하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아울러 소설을 읽는 동안 독특한 삶과 죽음의 영역을 여행했음에 만족하면 되니까. 달의 영휴참 강렬한 사랑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