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5
이응준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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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시리즈인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 이응준 작가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은 그 적은 분량에 만만하게 접근했다 앗 뜨거워! 하게 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소설 자체는 100페이지 남짓에 불과하며, 글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가 뭘 말하려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되는 작품이다(물론, 소설 뒤편에 작가와의 대담, 그리고 작품해설이 실려 있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 탓에 작가와의 대담을 읽으니 오히려 더욱 아리송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 내지 작가가 말하고자 함을 설명해주는 문장이 있다.

 

이 해병은 죽어서 천국에 임할 것이다. 그가 지옥에서 그의 청춘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베트남에서 구입한 지포 라이터에 새겨진 문구이자, 소설 속에서 거듭 회자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 속 와 익명의 해병이 처한 지옥은 다를 것이다. 어쩌면 해병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조직과 국가의 강요에 의해 지옥에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강요되어진 지옥을 살았기에 천국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일 게다. 반면, 소설 속 는 분명 자유의지에 의해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그것도 대단히 퇴폐적이고 암울하며, 파괴적인 향락에 도취되어 지옥에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여겨진다.

 

주인공 는 재벌2세로 태어나 태생적 부유함으로 인해 희망이라든가 책임감 따위에 매달리는 지질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다. 그런 는 뉴욕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또 다시 베트남에서 악마적 향락에 젖어 지낸다. ‘에게 청춘이란 미래적 희망이 아닌, 현재적 향락과 삶의 소비가 아닐까 싶게 말이다.

 

작가는 모든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한다. 약하기에 악하고, 악하기에 에덴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란 것. 작가의 의도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이 소설 속 와 같은 모습으로 지옥을 살아가진 않는 것 역시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여기에 작가의 역설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는 자유의지가 있지만,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상황을 지배하기보다는 상황에 지배당하며 삶을 함몰시키는 존재다. 어쩌면 현세적 지옥을 벗어나려 애써도 T.에게서 벗어나기 힘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에겐 지옥을 살지 않으려는 의지적 결단과 행동력이 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소설 속 에게도 퇴폐적이고 파괴적이며 함몰된 인생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에게 마약을 공급하던 스티브의 우정. 그리고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순간이 그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들이 를 건져 올릴 구원의 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인생이 해피엔딩일 수 없듯 역시 그 순간을 살려내지 못했고, 결국 는 소설의 첫 문장이 되어 버린다.

 

그는 11월의 전갈자리에서 태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추한 것은, 날개 달린 짐승이 바닥에 얼음처럼 누워 죽어 있는 모습이다.(15)

 

결국 는 추락한 짐승, 파괴되어진 짐승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소설은 줄곧 어둡다. 아니 암울하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그런 어둠 속에 모순적으로 빛나는 미학이 담겨 있다고. 그렇다. 소설을 읽는 내내 추락의 밑바닥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외려 밝음을 갈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작가의 의도처럼 어두운 소설 속에도 분명 빛 한 줄기 존재함이 분명하다.

 

게다가 곳곳에 인상적인 문구들이 포진하고 있음도 소설이 주는 수확이다. 그 가운데 유독 핏기 없는 하얀 심장이란 구절이 가슴에 남는다. 소설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어쩌면 우리 역시 핏기 없는 하얀 심장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며, ‘핏기 가득한 붉은 심장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전갈자리를 살아내길 꿈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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