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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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파주: 다산책방, 2015)로 수많은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올 봄에는 두 번째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파주: 다산책방, 2016)로 우릴 찾아오더니, 금번 초겨울의 추위를 따스하게 덥혀줄 세 번째 소설로 다시 찾아왔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란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책인 이 책이 제일 좋다는 느낌이다. 솔직히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읽고는 괜찮은 작가구나 싶은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소설을 읽고 난 뒤엔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만나봐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소설은 한 여인이 갑자기 겪게 되는 충격, 아픔, 혼란 등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결혼생활을 하며 남편을 내조함이 인생의 전부였던 여인 브릿마리는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다. 이런 충격적인 현실 앞에 브릿마리는 남편 곁을 떠나 낯선 세상으로 뛰어든다.

 

브릿마리는 여태 살림만 했기에 살림 외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이케아 가구조차 조립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남편이 다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운전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안 했던지 모른다. 남편이 항상 운전을 하니 그저 옆자리에 동승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물정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걱정 없던 여인. 십자말풀이가 머리 쓰는 일의 전부였던 여인. 정리정돈에 집착하며, 집을 청결케 하는 일이 삶의 사명이라 여기며 세정제를 사랑하는 여인. 위기상황에 맞닥뜨리면 신경질적으로 청소에 집착하는 여인. 남편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착각하고 자신만의 삶은 존재치 않았던 여인. 다소 까칠한 아니 깐깐한 여인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철부지 소녀와 같은 나이 든(63세) 여인 브릿마리. 그녀가 낯선 환경 속에서 좌충우돌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가 재미나며 귀엽기만 하다.

 

브릿마리가 우연히 찾아가게 된 마을은 보르그란 곳이다. 이곳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정작 도시 사람들은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곳이다. 발전가능성이나 희망은 없고, 낙후되어 가기만 하는 곳.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떠나기만을 소망하는 곳. 언제나 나른한 일상만이 존재하는 곳. 그럼에도 몇몇 아이들은 축구를 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하는 곳. 이런 마을에서 브릿마리는 과연 어떤 일을 겪게 될까?

 

소설은 내내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난다. 게다가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공동체성이 아닐까 싶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도 관심 없고, 알 수도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르그 마을은 온 마을 사람이 한 아이를 함께 기른다는 옛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마을이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반성하게 한다.

 

아울러 브릿마리가 변해가는 모습은 가슴속에 뭔가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게 한다. 안정적이던 삶을 뒤흔든 남편의 외도라는 사건. 이로 인해 익숙지 않은 사회생활 속에 뛰어든 깐깐한 여인 브릿마리가 세상 속에서 홀로 서기를 할 뿐 아니라, 침체된 마을이 브릿마리로 인해 점차 활기를 되찾게 됨이 마치 마법과도 같다.

 

축구를 너무나도 싫어하던 브릿마리가 우여곡절 끝에 동네 꼬마들의 축구 코치가 되어 축구 경기에 열광하게 됨도 반전의 재미가 있다. 십자말풀이가 행복의 전부였던 열정마저 늙어버린 여인에게 다시 설렘의 순간들이 찾아오게 됨도 축복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은 마치 우리의 삶 역시 나이가 어떻든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지금도 꿈꿀 수 있고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속삭인다.

 

이처럼 자신도 주변도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브릿마리를 보며, 삶의 용기를 갖게 된다. 그렇기에 브릿마리 그녀는 오늘 ‘여기’에 있다. 우리들 삶 속에 각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힘이 아닐까? 어쩐지 하얀 차에 파란 문짝 하나 달고 가는 차를 보게 된다면 브릿마리가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다. 한동안 브릿마리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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