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 그리운 조선여인
이수광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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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을 소설로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 있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만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작가의 재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쩌면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작가가 해석한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만난다는 기쁨은 언제나 크다.

 

팩션의 대가라고 불리는 이수광 작가가 바라본 사임당을 소설을 통해 만났다. 『그리운 조선 여인, 사임당』이란 제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굳어버린 사임당이 아닌 새로운 사임당을 만나게 된다.

 

사임당이 현모양처의 대명사가 된 이면에는 율곡을 높이기 위한 송시열의 정치적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만나는 사임당은 현모는 될지언정, 양처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남편 이원수에게 악처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임당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좋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단순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해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시집이 아닌 처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사임당과 시어머니 간에 갈등이 있었을 것은 당연지사. 소설은 이런 갈등을 보여준다. 그것도 갈등 뿐 아니라 시어머니에게 순종치 않는 그런 다소 되바라진 며느리의 모습을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임당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시대적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프런티어정신이다. 이 부분이 어느 정도나 역사적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는 사임당의 모습은 이렇다.

 

14살 때,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일. 이때의 경험을 <금강산등유기>로 적어 베스트셀러(?)가 된 일. 결혼을 부모가 정해주는 데로 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마음에 품은 사람(금강산에서 만났던 이원수)으로 정하는 일. 주역을 통해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장래 일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완전 무지 용한 점쟁이 수준이다.^^). 심지어 죽은 육촌 오빠의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과거 시험을 치르기까지 하는 모습 등 많은 부분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모습들을 많이 묘사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빼어난 재능과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며, 남편의 기를 누른다는 이유로, 후에는 어미의 이름이 아들의 이름을 가릴까봐 작품을 태우는 장면은 위대한 예술인이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무릎 꿇는 모습처럼 다가와 먹먹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인선은 다소 과장되게 묘사되고 있어, 오히려 영웅의 신화화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마냥 모든 것에 능한 그런 모습에선 실소를 짓게도 한다. 사임당의 어린 시절이 천재성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겠지만, 다소 과장된 모습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사임당의 엄청난 천재성이 과장되는 부분들, 다소 과하다 싶은 영웅담마저 균형을 잡아주기도 한다. 바로 사임당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의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의 내용은 죽음 앞에서 힘겨워하는 사임당,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마저 느끼게 하는 회상을 통해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다소 과한 영웅담마저 시대적 한계 속에서 힘겨워했을 사임당의 인간적 고뇌와 연결된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균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아무튼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공식 속에 갇힌 여성이 아닌, 보다 인간적이고 때론 다소 과격하리만큼 진취적인 여성으로서의 사임당.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꿈꾸며 나아가던 꿈 많은 소녀 인선 사임당. 한 남자를 사랑하던 여인 사임당.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의 외도로 힘겹게 몸부림쳤던 여성 사임당.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끝까지 품었던 딸 사임당.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전심전력할 줄 알던 엄마 사임당. 등 다양한 사임당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만나게 되는 고마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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