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첫사랑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의 『황태자의 첫사랑』은 소설보다 연극과 영화로 더 유명하다. 연극으로 수없이 상연되었고, 영화 역시 15번이나 제작되었다니, 이처럼 유명한 작품의 원작 소설이란 이유만으로도 매력적이다.

 

금번, 출판사 로그아웃에서 완역 출간된 『황태자의 첫사랑』을 만났다. 어쩐지 로맨스 소설의 원조격인 고전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다. 요즘 로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임을 먼저 밝힌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주인공은 다소 엄격하고 암울한 분위기에서 자란 황태자다. 이제 20살이 되어 하이델베르크로 1년간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떠나기 전 군주는 황태자를 가르치던 박사를 불러 당부한다. 그곳에서 대학의 낭만을 배우는 것이 아닌 학문 도야에 힘쓰도록 지도해줄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게 된 박사와 황태자는 점차 암울한 땅을 벗어나 낭만의 땅으로 향하게 됨을 어쩔 수 없다. 특히 박사는 하이델베르크로 가까워지면서 황태자보다 먼저 활력을 되찾아 간다. 그리고 장차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낭만의 길을 박사는 열어주고 권면한다.

 

이렇게 도착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생활은 낭만 그 자체.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방탕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황태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학문수학은 전무하고, 오로지 대학생활의 낭만에만 올인한다. 날마다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결투를 하기도 하고. 그 최고봉은 하숙집 하녀(하숙집 질녀라고 보면 좋겠다.)와의 사랑이다. 황태자는 비로소 젊음의 낭만을 찾아간다.

 

지금 이 시간에 카를 하인리히는 언뜻 깨달았다! 고향 카를부르크에서 사람들이 나를 속여 내 청춘을 몽땅 빼앗은 거야! 나와 함께 놀아 줘야 했던 사람들도 하인들, 내가 함께 말을 타고 돌아다닌 사람들도 하인들, 1년 내내 하인들, 아침부터 밤중까지, 언제나 급료를 받는 하인들뿐이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나는 삶에 관해 아무 것도 몰랐어. 전혀 아무 것도! 사람들은 나를 황금 우리에 가둬 두고 있었던 거야. 길들여져야 할 짐승처럼.(76-7쪽)

 

하지만, 낭만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백부가 건강이 유독하여 3개월 만에 하이델베르크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야만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또 다시 암울한 궁정 생활로 돌아간 황태자. 과연 그의 젊음, 낭만은 이대로 끝인 걸까?

 

소설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황태자와 하녀의 사랑이야기이니, 로설로서는 딱이다. 하지만, 알콩달콩하고 달달한 사랑이나 밀당의 순간들은 생략되어 있다. 그저 폭풍 같은 사랑만 자리한다. 그러니, 요즘의 로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고전의 느낌이 물씬. 하지만, 그럼에도 황태자와 하녀의 사랑이 가슴 먹먹하게 적시는 힘이 있다. 고전이 갖는 또 다른 느낌의 힘이.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 느낌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아, 이 부분도 요즘 로설의 공식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오히려 이 마지막 순간 황태자의 대사가 가슴을 적신다.

 

우리 서로를 마음속에 간직해 두자. 나는 당신을 절대 잊지 않고 또 당신도 날 잊지 않기로. 우리가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서로를 잊어버리지도 않아. 난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케티, 절대, 절대로!(207쪽)

 

그러니 흔히 말하듯 쿨 한 사랑인 듯하지만, 쿨 하지 않다. 오히려 절절하다. 그리고 못났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용기도 없다. 그럼에도 잊을 수도 없단다. 자신도 절대 잊지 않을 테니, 상대도 잊지 말란다. 참 질척하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질척한 사랑이 도리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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