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신연의 1
허중림 지음, 홍상훈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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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왜 그리 무협지가 재미있던지, 수업시간에도 무협지를 읽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재미나게 읽던 무협소설의 원조 격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 명나라 때 작품인 『봉신연의』란 중국 고전 신마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번 솔출판사에서 7권 완역 출간되었다. 참 반가운 만남이다.

 

어떤 분들은 『봉신연의』를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홍루몽≫과 함께 중국6대 기서에 올려놓기도 한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책일까 하는 기대감이 먼저 인다. 책을 읽는 가운데, 과연, 가히 기서(奇書)라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지, 두꺼운 책이 금세 술술 읽힌다(물론, 1권 첫 시작은 조금 읽는데 까다로웠지만, 금세 책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정말 술술 읽힌다.).

 

게다가 금번 이연걸, 판빙빙 주연 영화 <봉신연의 : 영웅의 귀환>이 개봉하기에(2016.9.22. 개봉예정) 아무래도 원작소설인 『봉신연의』시리즈가 관심을 받게 되리라 여겨진다. 영화도 좋지만, 대부분 글이 더 좋다. 특히, 이런 판타지 신마소설 역시 그러하다. 무궁한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기에. 소설을 읽고 영화와 비교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중국 최초의 왕조로 일컬어지는 상나라(은나라라고도 한다. 오히려 우리에겐 은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 왕 주왕 시대이다. 주왕의 잔혹하고 무도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영웅들이 강상(강태공)과 함께 주나라를 세우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역사소설이다(실제 역사적 사실 위에 전설과 상상이 가미되어 있다. 여기에 도교와의 만남까지.).

 

그럼 1권의 내용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보자.

 

희대의 난봉꾼이자 세기의 폭군으로 추앙받아(?) 마땅할 주왕이 여와궁으로 분향을 떠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대신인 여와에게 분향을 올리던 주왕은 여와의 미모에 반해 음란한 시를 남기고 만다. 이에 분노한 여와 신은 주왕을 벌하기 위해 요괴들(천년 묵은 여우 정령)을 부르게 되고, 한편 주왕은 여와의 미모를 본 탓에 자신의 여인들이 눈에 차지 않는다. 이에, 주왕의 충직한(?) 간신들 비중과 우혼의 계략에 의해 천하각지의 미녀들을 모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또 다른 신하들의 간언에 뜻을 접는다.

그러던 차 천하각지의 모든 제후들(사방 800제후)이 조정에 들어와 주왕을 알현한다. 이 때, 주왕 곁에 있던 간신들 비중과 우혼은 자신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제후 소호에게 앙심을 품고, 소호의 딸이 절세가인이라며 주왕을 부추긴다(비중과 우혼, 참 못된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기대하시라. 물론,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딸을 바치라는 주왕의 명령에 소호는 주왕의 잘못된 정치를 꾸짖을뿐더러, 이제는 더 이상 상나라를 섬기지 않겠노라 선포한다. 이렇게 하여 소호의 반란과 그 진압으로 인한 전쟁이 한바탕 몰아치고, 여차여차하여 소호는 자신의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게 된다.

 

천하절색인 달기를 아내로 맞은 주왕, 그가 모르는 바가 있으니 그건 달기에겐 이미 여와 신이 보낸 여우 정령이 들어왔다는 것. 이렇게 여와의 복수가 시작되고, 달기의 속삭임으로 인해 주왕의 폭주는 가속화된다. 포락형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만들어내고, 달기를 황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현숙한 아내 강 황후를 잔인하게 죽인다. 뿐 아니라 자신의 친 아들들마저 죽이려 한다. 과연 이 폭주의 끝은 어디일까?

 

이제 『봉신연의』 1권을 읽었을 뿐인데, 『봉신연의』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게 된다. 와, 이렇게 재미날뿐더러 정치적 통찰력을 품고 있는 멋진 고전이 있었구나 싶어 무릎을 치게 된다. 한편, 이런 재미와는 별개로 1권을 읽는 내내 분노 게이지가 자꾸 상승한다. 주왕의 잔혹무비 한 모습에 말이다. 아무래도 1권은 주왕의 못된 모습들이 거듭 등장함으로 새로운 국가, 새로운 군주의 등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런 당위성을 십분 인정한다 할지라도, 주왕 참 못된 놈이다.

 

그나마 난봉꾼 주왕의 처음 모습은 주변 신하들의 직언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이 합당하지 않다는 간언에 자신의 뜻을 굽힐 줄 아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왕의 모습은 달기를 곁에 두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달기의 속삭임에 주왕은 온갖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언제나 미인의 속삭임은 이처럼 덜떨어진 남성들을 완전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아니, 그 속삭임에 모든 이성을 내려놓고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 과연 백년 묵은 여우의 정령이기 때문일까? 이 속삭임은 여성이 갖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무튼 주왕의 모습이 그렇다. 주왕은 주변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굳은 절개와 지조가 있다. 문제는 바른 소리에 귀를 닫는다는 점이지만. 주왕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다. 욕망의 소리에 순종하는 겸손한 녀석이다. 과연 그렇다. 뿐 아니라,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멋도 있다. 들을 귀가 있다. 단지 달기와 간신들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문제지만.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지도자다.

 

고집불통의 군주.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군주. 무엇보다 군주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자다. 백성의 목숨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천자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든 백성은 천자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왕의 모습을 1권은 거듭 보여준다.

 

아무래도 이런 모습으로 인해 『봉신연의』1권은 지도자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내내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지도자 한 사람에게 힘이 집중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역시 느끼게 한다. 특히, 불통의 리더십, 잘못된 뚝심의 리더십, 군림의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주왕은 고스란히 보여준다. 『봉신연의』는 어쩌면 이 땅의 리더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역자는 『봉신연의』를 완역하였을 뿐 아니라, 주석이 필요한 부분에 충실한 내용의 주석을 달아주고 있다. 이 역시 소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쉬운 점은 소설 본문의 주석에 번호가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석은 번호로 표시해야 찾아보기 쉬운데, 작은 동그라미로 주석 표시를 하고 있음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서백후(후에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울 무왕의 아버지. 문왕으로 추대됨.)가 천자의 부름을 받고 조가로 가며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 가운데 백성을 향한 내용을 적어본다. 오늘 이 시대의 지도자들 역시 새겨들을 수 있다면 좋을,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내용을.

 

백성 가운데 아내가 없는 이에게는 금전을 주어 아내를 얻게 하고 가난해서 결혼을 늦추는 이에게는 금은을 주어 결혼식을 올리게 하고 혈혈단신으로 기댈 곳 없는 이에게는 매달 빼놓지 말고 식량을 나눠주도록 해라.(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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