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의 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6
조 놀스 지음, 최제니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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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슴 먹먹한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미국 작가 조 놀스의 『꿈꾸는 나의 집』(원제: See You at Harry's)란 제목의 소설이다(소설 내용을 생각할 때, 원제가 더 낫단 생각이다. 훨씬 임팩트도 강하고 찰리의 잔상도 계속 남는 문구이기에.).

 

주인공 펀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소녀다. 그런 펀은 언제나 생각이 깊고 다소 소심한 소녀다. 터울 많은 남동생 찰리에게 온통 관심과 애정, 사랑을 빼앗겼다 여기면서도 정작 찰리 돌보는 일은 도맡아 해야만 하는 펀. 사람들에게는 존재감이 별로 없어 마치 투명인간처럼 대접 받는다 여겨지면서도 정작 남동생 찰리를 돌보는 일에는 결코 투명인간이 될 수 없는 아이러니 앞에 속상해 하는 게 펀의 모습이다.

 

언제나 가족들을 총동원하여 ‘해리네 레스토랑’ 사업을 일으켜 세울 궁리만 하는 아빠는 이 일로 자녀들을 힘들게 하고, 언제나 바쁘기만 하다. 엄마는 명상에 푹 빠져 바쁘고, 첫째인 세라 언니는 레스토랑 남자 직원과 사랑에 빠져 틈틈이 사라지느라 찰리를 돌볼 수 없다. 오빠 홀든은 게이란 비밀 아닌 비밀(아빠만 모른다. 다른 가족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느라 힘들고.)로 인해 언제나 집 밖으로 나돌기만 한다. 그러니, 찰리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펀 차지.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 펀은 찰리를 돌보는 일에는 이처럼 투명인간이 될 수 없다. 다른 가족들은 그리 쉽게 투명인간이 되어 빠져나가는데.

 

그러던 펀네 가족에게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놀던 찰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이 일로 가족은 와해된다. 무엇보다 모두 자신들의 잘못으로 찰리가 떠났다는 자책으로 힘겨워한다. 이런 엄청난 슬픔 가운데 가족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소설은 보여준다. 쉽게 떨칠 수 없는 슬픔 가운데 가정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되는지 작가는 그려내며, 어쩌면 이렇게 다시 일어섬이야말로 우리말 제목처럼, ‘꿈꾸는 나의 집’임을 보여준다.

 

소설은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홀든 오빠의 성 정체성. 게이이기에 또래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가족에게 고민을 밝힐 수 없어 고민하지만, 사실 가족들은 모두 이런 사실을 알고 인정하며 홀든을 감싸줄 준비가 되어 있다(물론 아빠만은 이 일로 끝까지 갈등하지만 말이다.). 펀은 이 일로 오빠를 괴롭히던 머저리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또 하나의 사건은 소설 중반쯤에 벌어지는 막내 찰리의 죽음. 이 두 가지 사건으로 가족은 갈등하고 상처 나며 깨어진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치유되어지는 과정,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과정, 그 치유와 회복의 과정들을 소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커다란 돌멩이로 심장을 꾹 내리누르는 것 같은 먹먹함이 소설을 읽는 내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먹먹함을 뚫고 솟아나는 밝음의 줄기가 있다. 마치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행복한 댄스파티를 벌이는 것처럼. 여전히 슬픔을 온전히 털어낼 수는 없지만, 이런 뭔가 밝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가족의 회복, 친구의 우정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우리들 삶 역시 펀네 가족처럼, ‘상실의 아픔’으로 힘겨워 할 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오히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매사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어쩌면 여전히 갈등하며 상처주고 상처받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하고, 더욱 단단해지는 가정이 되길 소망한다. 우리네 모든 가정이 책 제목처럼 행복을 ‘꿈꾸는 나의 집’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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