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도둑비 - 순 우리말 민화 동시집 즐거운 동시 여행 시리즈 4
김이삭 지음, 이순귀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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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비 내리는 날도 즐거웠죠. 비옷에 장화, 그리고 우산으로 무장을 하고는 일부러 처마 밑에 서서 굵게 쏟아지는 빗물이 정수리에 떨어지게 하기도 하고, 비가 와서 생긴 웅덩이는 그냥 지나는 법이 없었고요. 작은 웅덩이라도 만나면 그곳은 이내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고요. 그러다보면 아무리 완전 무장을 해도 온몸이 젖고, 옷 역시 금세 더럽혀지곤 했었죠. 물론, 엄마에게 한 소리 듣게 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비 내리는 날에만 누릴 수 있는 재미였기에 포기하기 힘들었죠.

 

그런데, 어느덧 나이가 들며 비오는 날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네요. 비에 대한 감상보다는 불편함이 먼저 떠오르니 말입니다.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러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며, 정말 오랜 만에 비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참 오랜 만에 들어봤습니다. 한참 빗방울이 신나게 지붕을 두드릴 때, 시끄럽다는 생각보다는 빗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어쩌면 이게 불편함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차 한 잔을 곁들였죠.

 

여기 그런 빗소리를 좋아하는 시인이 있네요. 김이삭 시인은 온통 비에 대한 동시로 책 한 권을 꾸미고 있습니다. 시인의 동시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드네요. 같은 비라할지라도 참 여러 가지 종류가 있구나 싶은 생각. 그리고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예쁜 동시들을 노래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말입니다.

 

여러 예쁜 동시들이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 책 제목에도 들어간 <여우비>란 동시가 참 재미나기도 하고, 언제나 악역을 맡는 여우에게 미안하면서도, 화가 나 오줌을 뿌리고 도망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귀엽단 생각도 드네요.

 

악당 / 교활 전문 / 동화 속 나쁜 역할만 시킨다고 / 화가 난 여우 //

맑은 하늘에 / 오줌 잠시 뿌리고 간다

< 여우비 > 전문

 

우박을 보면서 이런 예쁜 생각을 하는 시도 있네요. 이런 예쁜 시를 노래하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예뻐야 할까요?

 

하늘에 큰 냉장고가 있나 보다 // 탁탁탁, 툭툭툭 //

함께 나눠 먹자고 // 얼음 과자 던진다

< 누리 > 전문

 

이제부턴 우박이 올 때마다 하늘의 냉장고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네요. 비에 대한 동시들을 읽다보니, 무엇보다 요즘 극심한 우리나라의 가뭄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가뭄을 그대로 표현한 동시가 있네요.

 

바짝 말라가는 / 남새 논 // 쩍 갈라지는 / 다랑이 논 //

안타까워 / 구름에서 비가 / 뛰어내렸다 //

맙소사 / 이를 어쩌나! / 땅에 닿기도 전에 / 사라졌네

< 마른 비 > 전문

 

이제는 이 땅의 가뭄, 그로 인해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도록 구름에서 비가 뛰어내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비들이 복비, 약비가 달구비로 내릴 수 있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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