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이철원 그림 / esteem(에스티임)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분들이 말하길, 여행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행을 계획하고 짐을 쌀 때가 가장 행복하고 설렌다고 한다. 물론, 여행을 하는 기간 역시 행복을 누리지만 말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잊고 있는 또 다른 행복의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신나는 여행 후, 집에 돌아오면, 이런 대사가 무의식중에 튀어나온다. “역시, 집이 최고다!” 여행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여행 기간이 너무나도 즐겁지만, 그 즐거움조차 어쩌면 돌아갈 집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여기 이처럼 돌아갈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화가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인 황선미 작가의 신간 『기다리는 집』이다. 솔직히 이 동화를 읽으며, ‘황선미 작가이기에 너무 기대를 한 건가?’, ‘어째, 황선미 작가 글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역시 황선미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

 

글의 서술이 왠지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사건의 전개 역시 예상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내용임에도 가정에 대한 감동을 잔잔하되 확실히 허락하는 책. 그렇기에 뭔가 묘한 힘이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명길(감나무집의 소유주이자, 돌아가신 주인 사감 할매의 아들)의 아들 재성(소년원에 들어간 사감 할매의 손자)의 외침이 가슴을 울린다.

 

“이까짓 집이면 다예요? 식구도 없는 집이 무슨 집이야!”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나랑.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되잖아.”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엔 진정으로 날 위해주고, 날 생각하며, 날 기다려주는 이가 있는 그곳이 진짜 집이다. 설령, 과거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할지라도 다시 사랑으로 화합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아울러 이 집이 제목처럼 “기다리는 집”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공간이 집 주인인 명길과 재성에게만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또 다른 이들에게도 여전히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집, 기다리는 공간이다. ‘여자애’에게 이 집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끈, 기다림의 끈이기도 하다. 이곳이 버려진 집, 마을의 흉물로 쓰레기더미로 가득하던 공간일 때, ‘여자애’는 어린 동생과 함께 엄마에게서 이 집 앞에 버림을 받는다. 그렇기에 비록 그곳은 ‘여자애’에게는 버림받은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와의 유일한 끈이 연결된 공간이다. 이곳은 ‘여자애’에게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게 되는 “기다리는 집”이 된다.

 

또한 이곳은 태오에게도 “기다리는 집”이 된다. 태오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살아간다. 그런 태오는 친구들에게도 시달림을 받기에 뭔가 기댈 곳이 없고,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한다. 그런 태오는 이곳 버려진 집의 소유주인 명길이 그곳을 홀로 수리할 때, 함께 그 일을 도우며 삶의 의미 내지 활력을 되찾게 된다. 그렇기에 이곳은 태오에게도 역시 삶의 활력과 의미를 되찾게 되는 “기다리는 집”이 된다.

 

뿐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각자의 삶에 무관심한 채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며(그 전의 호기심이 아닌 진정한 관심), 버려졌던 이 감나무 집을 중심으로 마을의 공동체성이 살아나게 된다. 그러니, 이곳은 또한 그 마을공동체에게도 회복의 기다림을 허락한 “기다림의 집”이 된다.

 

비록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여러 의미들을 작가는 우리에게 선물한다. 단순히 내 가정의 회복, 내 가족의 기다림, 즉 타인과 단절된 개인의 집의 의미만이 아닌, 공동체 안의 관계성 아래 놓여 있는 집의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함으로 ‘우리 모두의 기다림’을 갖게 하는 그런 고마운 동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