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증후군
이현준 지음 / 손안의책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묘증후군이라는 다소 요상한 제목의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이현준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라는 묘증후군은 등단한지 근 10년 만에 내놓은 첫 번째 소설집이라는 소개가 도리어 관심을 끌어 책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급하지 않게 한 편 한 편 마치 꾹꾹 눌러쓴 느낌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책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책 속엔 도합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2편의 엽편소설(사전적 의미: 인생에 대한 유머, 기지, 풍자가 들어 있는 가벼운 내용의 아주 짧은 이야기)1편의 중편소설, 그리고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괴이하다는 느낌이다. 환상소설들이 상당수다. 우연한 경로로 손에 넣은 쪽지가 초대장이 되어 평소 다니던 길에 문득 생긴 낯선 카페에 초대되기도 하고(꾸오레, 초대장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허락되는 환상적 카페), 사람으로 변신한 고양이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묘증후군). 죽은 영혼이 화자가 되어 짧은 소설을 이어가기도 하고(강의실 7101), 심장이 멎는 이상한 증상의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한다(심장바이러스, 심장이 멎음에도 살 수 있으니 이 역시 괴이한 이야기이자 판타지이다.). 다소 엽기적인 전개를 만나게 되는 소설들도 있다. 바퀴벌레들과의 동거에서 시작하여 개미 먹기까지 이어지는 세렝게티에 가다역시 괴이함과 다소 엽기적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가 철학국문학을 전공한 탓인지, 주인공이 철학을 전공한 경우가 제법 많다는 점도 어쩐지 별개의 소설들을 도리어 낯설지 않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입양아 이야기가 두 편 나오는 것도, 원주, 춘천, 미국 등의 지리적 배경이 반복되는 것도, 그리고 도보 여행의 모티브가 반복되는 것 역시 각각의 소설들이고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한다.

 

많은 소설들이 괴이함 이면에 뭔가에 대한 그리움이 앉아 있지 않은가 싶은 느낌이었다(작가 스스로는 이를 마음이란 공통된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전체적인 느낌이 괴이하다고 말했는데, 진짜 괴이한 건 마지막 중편 소설 금릉여인숙이었다. 어떤 판타지적 장치도 없는 현실 소설이지만, 가장 비현실적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렇다. 소설은 바로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이들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상처와 아픔을 말할 수조차 없이 숨죽이며 살아내야만 했던 이들의 강요된 침묵, 그 침묵의 아우성을 작가는 두 소년의 우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라리, 하다, 향수와 함께 좋았던 작품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좋았다. 대부분 아픔과 상처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움이 있고, 재미가 있다. 작가 스스로 말하기 게을러서이제야 첫 단편집을 냈다고 하는데, 작가만의 속도로 언젠가 또 하나의 소설집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아마 두 번째 소설집(또는 소설)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손에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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