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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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꺽꺽거리며 웃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딸아이가 내 방문을 열어볼 만큼 한참을 웃었다. 딸아이의 궁금함과 황당함이 섞인 표정의 눈초리를 맞으면서도 또 한참을 웃었다. 그만큼 재미난 소설이 배준 작가의 시트콤이다.

 

소설 시트콤은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우선 재미나다. 한달음에 끝까지 읽게 된다. 부작용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누군가 책 있는 내 모습을 이상한 눈초리로 볼 수 있으니 조심하자.

 

솔직히 별로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언젠가 어느 코믹 영화에서 봤던 내용 아닌가 싶은 장면들을 제법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모여 작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신나게 웃고, 그리고 나선 뭔가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을 콕콕 찌른다. 오늘 이 땅의 청소년들의 무게를 살짝 짊어져봤던 것 마냥 느껴져 먹먹하기도 하고,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어보게도 된다. 이것 역시 작가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무더운 여름, 학교 내 평소 사용하지 않던 교실에 수상쩍은 두 학생이 은밀하게 스며들어온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남학생과 누나처럼 보이지만 같은 학년 여학생. 이들 고1 커플이 평소 사용하지 않던 교실에 들어온 건 둘만의 발칙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 , 무모하리만치 용감하다. 사랑이 이런 무모함을 선물하는 걸까? 아무튼 서툴지만 사랑의 행위에 목마른 어린 커플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서툰 거사를 치르기 위해 나름 분투한다.

 

하지만, 이 분투는 또 다른 엄청난 분투를 낳게 된다. 누군가 자신들만의 공간에 침입하기 때문. 이에 둘은 엉거주춤한 행색으로 테이블 밑에 숨게 되고. 4명의 교사들이 에어컨이 고장 난 교무실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쐬다 나간다. 그리곤 잠시 후, 또 다른 수상한 커플이 들어오게 되는데. 바로 조금 전 4명의 교사들 가운데 젊은 남녀 교사들. 이들 역시 수상쩍은 행동을 하려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스며들었던 것.

 

둘 역시 질척거리는 거사를 치르려던 순간, 누군가 또 다시 비밀의 공간, 그 문을 열어젖힌다. 두 교사가 숨을 공간은 테이블보로 은폐된 테이블 아래. 요상한 상태로 급히 들어가 보니, 아뿔싸!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이렇게 넷은 또 다시 야릇한 자세로 벌을 서게 된다. 은밀하고 야릇한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 공간에 찾아온 후래자는 누구일까? 이들은 무슨 용무로 이곳을 찾은 걸까? 그리고 숨어 있는 네 사람은 얼마나 그 안에서 벌을 서야만 하는 걸까?

 

그 뒤로 펼쳐지는 별개의 사건들처럼 여겨지는 몇 편의 에피소드. 그들 에피소드는 모두 절묘하게 하나로 이어지게 되고, 돌고 돌아 다시 요상한 공간의 교실에서 막장 드라마를 그려낸다.

 

중간의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참 재미나다. 전교1등의 가출이야기, 고등학생의 무면허운전(실제는 면허증이 있다. 면허증을 집에 놓고 왔을 뿐.) 이야기, 원조교제가 시체 유기로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바바리맨이 아닌 빤스맨의 등장 등등 여러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상야릇하고 코믹한 공간에서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땐, 웬 딴소리들을 늘어놓나 싶었지만,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절묘하게 서로를 감싸며 엮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막장 드라마는 숨 막혀 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숨통을 보장받기 위해 가정의 해체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막장 드라마가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막장 드라마는 도리어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가정의 회복으로 나아감도 절묘하다. 때로는 막장 드라마로 흘러버리는 것 같아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에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되지만, 결국엔 멋지게 봉합되는 순간이란, 경탄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재미나다. 그 재미난 이야기들 속에 가슴을 콕콕 찌르는 메시지들이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감춰져 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질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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