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구미호 블랙홀 청소년 문고 7
김태호 외 지음 / 블랙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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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이웃집 구미호는 특별한 책입니다. 우선 각 단편들은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거나, 존재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귀신이 등장하고, 구미호가 등장하며, 좀비가 등장하기도 합니다(좀비를 퇴치하는 퇴마사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 죽지 않는 노인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다섯 작가들의 서로 다른 느낌의 이야기들이 폭염에 시달리는 여름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줍니다.

 

첫 번째 이야기 사라진 얼굴1등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이룸 기숙학원이란 곳에 들어가 1등이 되길 꿈꾸는 아이들. 아이들의 관심은 최연소 수능 만점자였던 수연이의 만점노트입니다. 수연과 같은 방 룸메이트가 되길 소원하는 아이들. 수연과 같은 방이 된 아이들은 처음엔 성적이 확 오르는데, 언젠가부터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게 됩니다. 어쩐지 수연이란 존재가 의심스럽답니다.

 

이야기는 1등을 위해선 자신의 얼굴이 사라져도, 자신의 이목구비가 사라져도 감수할 용의가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 하필 얼굴이 사라지는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1등을 위해선 봐야할 것을 보지 않고,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않는 아이들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에겐 곁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 건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오히려 나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떨어져나가면 자신에게 기회가 온다 생각하며 좋아합니다. 아니, 나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 뭔가 일이 생겨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어쩜 귀신보다 더 무서운 모습이 아닐까요? 아니, 아이들을 이런 상태로 몰아넣는 세상이야말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요?

 

이웃집 구미호에서는 구미호가 등장합니다. 수호는 언젠가부터 혼자만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 이상한 소리. 병원에서는 이명이라 하지만, 수호에겐 실제 들리는 소리입니다. 결국 수호는 이 소리가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옆집엔 너무나 예쁜 소녀 강미호가 살고 있었고요. 입술이 빨간 소녀 미호. 그런데, 미호에겐 감춰진 비밀이 있습니다. 미호는 다름 아닌 구미호거든요. 그런, 미호에게 감춰진 비밀은 또 있어요. 다름 아닌 아빠의 폭력으로 시달린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 아빠가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아빠다운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호. 그래서 더욱 애틋합니다.

 

이야기 속 구미호는 선한 마음으로 인간과 천 일을 살아야만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한 마음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들뿐입니다. 미호는 한 번도 온전히 천 일을 선사해준 아빠(새아빠)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수호네 집 현관문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다 수호와 눈이 마주진 미호의 빨간 눈동자를 상상하다 오싹했답니다. 그런데, 정말 오싹한 건, 인간이 되기 위해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런 구미호에게 선한 마음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특히나 가정에서 폭력을 일삼는 자들의 모습이 머리를 쭈뼛쭈뼛 서게 만듭니다.

 

지박령 열차에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청춘들이 나옵니다. 취직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청춘이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만 할 정도로 힘겨워 하던 직장생활이 못내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기다릴 엄마를 향한 그리움, 미안함, 애틋함 등으로 인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같은 곳을 순환하는 열차의 지박령이 되어 같은 곳만을 맴도는 영혼. 그 애틋함, 먹먹함이 오롯이 느껴져 눈물짓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소녀가 돌아올 때는 마치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도 받게 합니다. 이사 간 새로운 집, 새 방에서 만나게 되는 귀신. 그 귀신에겐 세상을 떠날 수 없는, 아니 남아 있는 자들에게 외치고 싶은 경고의 음성이 있답니다. 그건 바로 미성년 성폭행을 행하고 영상을 찍어 퍼뜨림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던 원흉의 정체에 대해 외치고 싶은 겁니다. 이야기는 미성년 성폭력, 리벤지 포르노의 폭력성과 피해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아울러 범인을 잡아내는 통쾌한 결말은 덤이고요.

 

마지막 이야기 재차의를 찾아서는 토종 좀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문헌에 재차의란 존재가 등장하는데, 이 재차의를 좀비로 해석하여 풀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좀비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기에 좀비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재차의란 나 여기 있다.’라고 하며 나타나지만 실재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들 재차의(좀비)들을 그들이 있어야 할 죽음의 공간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혹 오늘 우리에겐 이런 행위가 있는지. 없다면, 혹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가득한, 자신의 의지나 생각이 아닌 그저 좀비들로만 가득한 세상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다섯 이야기 속엔 모두 우릴 오싹하게 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정말 오싹한 존재들은 누구일지를 묻게 됩니다. 오히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대체로 연민을 품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 귀신이나 구미호 등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귀신이 아니지만, 구미호도 아니지만, 멀쩡한 인간이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이 세상엔 가득하고, 그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됩니다. 진짜 오싹한 존재들은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이 등골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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