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장난감 - 이시카와 다쿠보쿠 단카집
이시카와 다쿠보쿠 지음, 엄인경 옮김 / 필요한책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대표적 전통시인 단카에 대해선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뿐 실제 접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차 단카의 거장이라는 이시카와 다쿠보쿠 시인의 단카집 슬픈 장난감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00여 년이 지난 일본 단카 문학계의 거장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마지막 단카집이다.

 

단카집 제목이 슬픈 장난감이다. 장난감이란 단카가 시인에게는 유일하게 즐길 대상이었음을 의미할 게다. 그런데, ‘슬픈이란 단어가 붙어 있음이 시인의 삶이 어땠을 지를 잘 보여준다. 큰 누나도, 엄마도, 본인도, 그리고 사후 아내 역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삶이었으니.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슬픔의 상황, 슬픔의 원인, 그것들을 시인은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슬픔의 못자리에서 시어들을 끌어올린다. 마치 시인이 단카 지망생에게 한 조언처럼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아무개 군으로 하여금 단 하나, 예를 들어 스스로 자신을 가련하다고 한 말만이라도, 그것이 얼마나 또한 어떻게 가련한지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생각하고, 그 다음 거기에서 확고히 움직일 수 없는 숨은 어떤 사실을 승인할 때 비로소 그 아무개 군의 단카는 저절로 생기 있는 인간의 단카가 될 것이라고.(141)

 

책은 다쿠보쿠가 권면하듯 자신의 슬픔의 삶에 오롯이 마주하고 있다. 특히 병상에서의 슬픔을 노래한 내용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아들의 쾌유를 위해 차를 끊고 기도하는 어머니에 대한 노래가 애달프다(마치 기독교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듯 기분 좋게 하는 차를 끊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 어머니 역시 다쿠보쿠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같은 폐결핵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시인을 더욱 힘겹게 했으리라.

 

단카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 하지만, 삶은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런 한계적 삶으로 인한 슬픔. 게다가 떨굴 수 없는 가난으로 인한 슬픔(시인의 마지막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의 악화라고 한다. 결국 가난이 죽음의 원인이었던 것.). 이런 다양한 슬픔들이 승화된 시어들을 단카집을 통해 만나게 된다.

 

단카란 장르가 우리에게 익숙할 순 없다. 특히, 단카는 일본어 그대로 접해야 그 맛이 제대로 느낄 테니까. 책엔 그렇기에 일본어가 그대로 함께 실려 있다. 하지만, 일본어에 까막눈인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번역된 우리말로 접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지만, 읽어나가다 보니 단카가 어떤 느낌인지는 어렴풋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단카가 어떤 느낌인지보다는 그 안에 담겨진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좌절한 천재라는 수식어,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마지막 나날들에서 길어 올린 단카. 그 마지막 단카집의 마지막 단카는 미완으로 끝나고 있다. “큰 보폭으로 가장자리를 걸으니미처 세 줄(전통적 단카는 5·7·5·7·7의 운율을 지닌 531음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시인의 단카는 모두 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을 채우지 못하고 한 줄로 마친 마지막 단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더욱 극적이고 운명적인 표현이 아닐까? 26년의 세월을 살다간 좌절한 천재이시카와 다쿠보쿠가 남긴 문학의 걸음이 어쩌면 큰 보폭임에도 가장자리에 머문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단카집을 처음으로 만났음에 만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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