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Authenticity는 한국어로 이해하자면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변하는 단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진정성이라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원래, 본래, 또는 진짜라는 성질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한때 정치인을 가리켜 "표리부동하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진 수사로 많이 사용된 까닭에 혼동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이 책은 "진정한 것들"을 향한 욕망에 대한 비판서로 보면 될 것이다. 


현 시대는 근대성의 여러가지 측면에 부정적인 가치를 매기고 그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행처럼 힘을 얻는 공간이다. 개인주의, 소비주의, 기술의 발전, 자연의 파괴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거나 소박한 삶을 살자는 등의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언뜻 당위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현상에 저자는 이견을 제시한다. 그러한 욕망에는 근대화 이전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묻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잘못된 가치판단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원시적 삶이 조화롭고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낭만적 상상에 대해 저자는 인류학적으로 보아 완벽한 헛소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근대화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에 대해서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근대와 어떻게 관계맺음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근대화의 특징을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일단은 종교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환멸이 생겨났다. 그리고 세상은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배당받던" 곳에서 개별적 개인이 모인 집합체로 변했다. 개인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개인주의는 경제적 개인주의인 자본주의로 이어졌고, 이는 의미와 가치가 있던 자리에 시장 교환이라는 허무주의를 가져다 놓으면서 소외를 발생시켰다. 저자는 루소가 이 소외를 극복할 방법으로서 제시한 대안이 현재까지 우리가 근대화와 관계맺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루소는 인간이 타인을 의식하기 시작하게 된 것을 문명사회에 내재된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데, 이는 곧 남과 비교를 하고 우위에 오르려 하는 이기심을 낳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외가 발생하며 그것은 개인이 좀 더 강하고 자족적인 존재로서 주류와 투쟁하는 외로운 반항아가 되는 것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루소의 해법이다. 물론 저자는 이 방법이 근대화와 조화롭게 화해하는 길을 막는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의미없어진 현대의 예술 분야에서 주류에 반해 원본의 아우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작품보다 작가의 이름값을 상표로 삼아 거래하는 판매전략에 넘어가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소비에서는 저항적 소비문화가 베블렌 효과에 의해 과시적 소비로 귀결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유기농도 한물이 갔고 로컬푸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스스로를 과다하게 노출시키는 것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해달라는 욕망의 표출로 해석된다. 정치인의 진정한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허위로 진정성을 꾸며내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세계화 시대에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문화를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 또한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예능 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얼"에 대한 강박도 이런 맥락에 속한다. 결국 진정한 것들에 대한 욕망은 환상의 산물이거나 원치 않던 문제들을 일으키는 경향을 보인다. 


저자는 시니컬하고 사카스틱한 어조를 구사하며 근대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하고 근대 외부에서 진정한 것들을 찾으려는 욕망을 허상이라고 규정한다. 여기까지는 시대 상황을 잘 읽어내고 핵심을 제대로 끄집어낸 분석이라고 본다. 자연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 사이에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오류를 나 역시 종종 본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단순한 환상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어젠다가 되는 것을 보면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 역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근대와 화해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면서 논리는 급작스럽게 빈약해지고 현실타협적으로 나간다. 자유주의와 세계시민주의가 마치 모든 것의 해결책인 양 추켜올리는 모양새는 너무 나이브해 보이고, 종종 인간의 이성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거센 비판과는 배치된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해 주로 문화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가져온 불균등과 불평등의 정황을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세계시민주의 같은 것을 역설할 수 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인 듯한 저자는 전근대적 세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분노와 억압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이들의 숨통을 터준 권리와 자유를 해치는 사회질서를 완벽한 것으로 이상화하며 갈망해서도 안 된다"고 했지만, 그 자유가 지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이용되고 있는지 또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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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나 2016-06-0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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