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국을 뒤집을 14가지 트렌드 - 시티 팜에서 퀴어 비즈니스까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지음 / 알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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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이 밝았다. 모두가 어렵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물론 드라마,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은 역시나 위기 일색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황 때와 같은 엄청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은 없어 보인다. 경제불황이 구매력 하락을 이끌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2012년의 경제 위기에 잔뜩 겁먹고 있는 이때, 한국무역진흥에 힘쓰는 KORTA가 발간한 ‘2012 한국을 뒤집을 14가지 트렌드’라는 책은 경제활동을 하고, 그리고 앞으로도 할 경제인들에게 힘을 준다. 기회는 언제나 있다는 대원칙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KOTRA가 보여주는 세상은 역시나 어둡다. 아무래도 사회적 분석을 해야만 앞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상품이나 사업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와 세계를 열심히 분석한다. 현재 2008년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바뀐 세상은 짠 소비가 대세고 공포분위기 역시 만연돼있다. 그런 세상에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하기에는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KOTRA가 발간한 이 책은 그래도 뭔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형태가 바뀌었다면 판매 상품은 물론 판매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에 생각하지 못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전략이 매우 재미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남성과 여성 이외의 성이라 할 ‘제 3의 성’인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한 판매전략이다. 한국에서야 아직 소수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에겐 점점 거대해지는 시장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무역의 첨병인 KOTRA가 이를 놓칠 리가 없다. 핑크머니와 블루머니를 끌어오기 위해 분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사회적 맥락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은 무척 인상 깊었다. 여기에 경제 위기로 인해 가난한 계층으로 떨어지더라도 당당한 소비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유혹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소비력이 떨어졌다고 여겨졌던 중년 남성에 대한 접근 역시 인식의 개선이야말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만들기 위한 필요임을 제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양극화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시장도 양극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래서인지 자린 고비 소비자들도 늘겠지만 과시 소비 역시 마찬가지로 느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이것을 ‘양극화’란 Chapter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판매전략부서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부분이다. 양극화된 소비 성향 속에서의 사회적 긴장을 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의 목표는 사회학이 다루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난해도 멋지게 살고 싶은 이들이 점차 많아지는 지금, 각각의 시장 패턴에 따라 빠르게 변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그런 방식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이 책은 꼼꼼히 설명한다. 특히 정의나 올바름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은 상품에서도 착한 거래를 통해 세계적 공동체의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공정무역이나 선한 소비자, 착한 기업이란 어휘들이 생기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서로 어려워진 요즘, 이런 공동체 문화야말로 모두를 구원하는 인식이 표현된 것들이리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세계적 사례와 문화는 한국이 나아갈 미래의 장소다. 한류라는 상품이 계속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다만 우리 것을 강요하는 것보다 타인들과의 소통과 함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현명한, 그리고 착한 방식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한국을 위한 지속적인 소비시장이 존재할 것이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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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낯설었다. 언젠가 작가 배수아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때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면 좀 편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허황된 꿈이었다. 그녀는 너무 낯선 인물이었다. 경희처럼.
  신작 ‘서울의 낮은 언덕들’에서 서울은 그리 많이 나오지도 않았고 또한 주요 무대도 아니었다. 또한 이 책 속의 주제는 어쩌면 많이 봤던, 아니면 익숙한 그런 것이라 느껴졌다. 도시 속에서의 소외감이나 고독감, 그리고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은 배수아 작가만의 보관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가 한강처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하기 위해 식물이 되는 소설도 있고 보면 작가 배수아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그런 것들로 채워졌다. 다만 그녀는 다른 매력을 통해 작가의 독특함을 자아낸다.
  이해 불가능? 아니 이해하기 조금 어렵다. 작가의 독특한 관형절이나 관형어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脫평범한 것들이었으며, 세상 역시 평범한 일상이 비일관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특히 현대의 지독한 병의 원인 중 가장 큰 위력을 보이는 자기만의 일방적 표현, 그에 따른 소통의 단절,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적 Cool함 등은 소설 곳곳에 활약하면서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세상은 복잡하고 뒤엉켰고 이해가 매우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어쩌면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무수히 반복되는 도시와 도시인이란 어휘 속엔 그런 세상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리라. 이런 내용 역시 사실 흔하지만 배 작가가 풀어내는 형상화는 기이하면서도 무척 섬뜩하고 기괴한 세상이다. 죽음이 자연스레 나오고 무관심은 도처에 흔하다. 그 속의 인간들과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어구들은 매우 기계적이고 화학적이고 단절되고, 파괴적이며, 또한 다시 듣고 싶지 않을 만큼 냉정하다. 내가 만약 그런 어휘들을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사용한다면 그 이후의 결과는 얼마나 참혹할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다는 확신이 사실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나열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때,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서늘함도 느낀다.
  주인공은 ‘경희’란 여자다. 시작부터 기이한 직업인 무대 낭송 배우란다. 어차피 도시의 기이한 경험을 시켜주려는 작가의 의도인 듯한 이 장치는 결국 마지막까지 독자를 괴롭히는 장치들을 계속 보여주는 맛보기다. 경희란 여성의 과거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한 커플씩 벗겨진다. 결국 평탄하지 못한 그녀의 과거와 그로 인한 것인지 정확한 판별은 할 수 없지만 거칠고 메마른 그녀의 어조와 태도는 세상과의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속해있는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기이한 단체라고 할 여행단체인 카라코럼은 과연 현실에 존재는 하는 것인지 모를 만큼 괴이한 성격을 지닌 여행단체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여행 목적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봤자 공항을 지닌 그곳 역시 도시다. 그런 것을 벗어나기 위해 도보로 국경을 넘으려 하지만 그것 역시 좌절된다. 현대란 시대에 그런 몸부림은 결코 현명할 수 없고 또한 도시인은 도시에서 밖엔 살 수 없는 태생적 비극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도시 속의 부정적 요소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만 경희는 그것들을 독자들에게 괴이하게 확인시킨다.
  가족, 현대의 도시인들이 꿈꾸는 궁전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 도시인들에겐 잃어버린 세계인지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 경희의 가족은 결코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하지 못함은 물론 함께 살면서도 서로가 비밀이란 장막으로 드리워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가족이란 집단으로 이뤄졌다. 더구나 언니가 사라진 과정과 이후의 변화 역시 비일반적이다. 있을 것만 같지만 결코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가족만은 아니다. 피상적인 부분들로만 존재하는 기억 속의 존재들 역시 부정확하고 그래서 기댈 수도 없다. 부유하며 긴장하면서 억지로 사는 도시인들의 가련한 인간 군상이 더없이 소설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희의 과거가 불확실하고 또한 우울함의 연속이어서인지 그로 인해 경희 역시 떠도는 구름과도 같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기도 하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은 불확실하고 파열되고 분절된 단어들을 통해 기록되고 보존된 그런 것들이 사실은 불확실하고 아련할 뿐, 매우 불안한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 비현실 모두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주변이 과연 정상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존재의 나약함 속을 느끼며 말이다. 이 소설, 참 슬프다.



 
 
 
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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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난다. 사회적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진 법정에서의 불법이 자행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저급한 표현이겠지만 법원의 판사들과 검사들에게 국민들이 혈세를 들여 월급을 주는 이유는 억울한 일을 막아달라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요구사항은 묵살됐다. 그래서 그들은 독재다. 사회의 악의 근원이 재벌일 수도 있고 조폭일 수도 있지만 법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기득권이란 권리 아닌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벌인 악행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이런 판검사들을 왜 국민들이 먹여 살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입시험의 수학 문제의 오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의 원인은 반성과 사과를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직의 원리와 상위 1%의 자존심을 위해 진실은 묻혀졌고, 오만만이 득세하게 됐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에서 그런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정직한 사회가 아니었다.
  석궁을 통해 위협만 하려 했느냐, 아니면 죽이려고 작심했냐 하는 쟁점을 갖고 석궁테러 사건의 심리는 진행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실존인물 김명호 교수를 본뜬 ‘김경호 교수(안성기)’에 대해 사법부와 법원, 그리고 대법원과 그 수장은 이미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법정에서 요식행위만을 하려고만 했다. 사건의 진위와 그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고 법원에 대한 도전이란 이유로 그를 단죄하려고만 한다.

 


 

 

 

 

  증거는 중요하다. 범인이 왜 범인인지를 밝히는 가장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실체니까 말이다. 동시에 법원은 공정한 판정을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을 통해 사건을 확인하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법원은 중립적이지도 못했고 공정하지도 못했고, 동시에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김경호 교수의 행동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중처벌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잘난 사법부의 자존심 때문에 말이다. 이미 그 자존심은 오만이란 사악함으로 바뀐 지 오래다.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하락한 사법부가 과연 제대로 뭘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법원에도 양심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초로 법정을 이끌었던 법관이 사직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다음이 더 가관이었다. 더 엉망인 법관을 통해 심리를 진행하려 했고, 이 대목에서 사법부와 법원의 사악함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이미 대법원과 사법부는 착해질 마음이 없었다. 과거 독재정권의 만행을 정의의 마지막 보루에서 또 다시 나온 것이다. 거기에 김경호 교수의 자존심을 뭉개기 위해 감옥에서 벌어진 만행은 한국 사법부의 야만성이 도대체 어디까지 뿌리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사법부가 범죄의 온상인 것이다. 그래서 김경호 교수는 결국 유죄를 받았다. 사법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이 기막힌 판결이 21세기를 시작한지 훨씬 지난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슬프다.

 


 

 

 

 

  국민들은 이런 엉망인 판결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억울한 일에 국민들은 막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민 자체가 그런 불평등하고 추악한 판결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런 부당함을 막아봐야 자기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문제가 많은 이명박 정권을 최고의 지지율로 당선시키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악영향이 부메랑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영화 속 박준 변호사(박원상)가 이민 가고 싶다는 표현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창피했다. 수출이 얼마냐, GDP가 얼마냐 하면서 한국의 성장을 축하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한국민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그것은 3심재가 마련되고 헌법재판소가 마련돼도 국민들이 느끼는 법적 서비스는 요원한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아무것도 좋아진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증거 하나 없는 조작된 증거만 날뛰었던 법정에서 어떻게 그런 엉망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와 검사가 혹시나 고속승진하고 있을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한국은 자성이 너무 필요하다. 그러면서 기득권이 자신의 고고함을 사악함을 지키고 있는 이때, 이들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하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스스로 채찍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1주

 

 

  소한과 대한 사이는 아마도 겨울이란 계절에서 가장 추운 시즌일 것이다. 요사이 전력난으로 인해 난방기구들이 적게 틀면서 한기가 일하는 직장이나 종종 집안으로까지 파고들면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추워지곤 한다. 그래도 이런 추위의 부정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즐겁고 상쾌한 날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즐거운 음악들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화면들로 가득한 영화와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영화와 음악의 친화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영화 속에서 가수가 되거나 작곡가가 되어서 노래를 부른다면 조금은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노래를 부를 때의 가수의 섬세한 표정이나 묘사들이 한결 즐겁게 다가올 것 같다. 이런 매력을 지닌 영화들이 올 겨울에 유난히 눈에 띈다. 그것도 한국은 물론, 라틴 국가인 쿠바와 멀리 북유럽 나라까지 다양도 하다.

 

원더풀 라디오

 

 

 

  한때 잘 나가던 아이돌 가수에서 인기가 그만그만해져서 나중엔 그런저런 라디오 DJ가 되고 만 어느 여가수의 인생을 담은 영화다. PD와의 부정적인 관계 역시 라디오 스타와도 거의 비슷하고 청취자들을 통한 위기 극복과 같은 구성은 사실 과거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라디오 스타’와 묘하게 연결되겠지만 그래도 감동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그때나 이때나 비슷한 만큼 그런 시작이 좋은 결과를 이끌 것 같다. 그리고 김호연의 ‘Blind by love’나 서미래의 ‘That’s when I feel love’에서 아름다운 발라드가 인상적이고 유근호의 모던 록 버전인 ‘Black star’와 같은 뛰어난 노래들이 있지만 그래도 배우들이 노래하는 모습이 가장 좋아 보인다. 특히 배우라서 그런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기 거의 힘들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이민정이란 가수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일 것 같고 사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그녀의 노래하는 장면이다. 세 명의 배우가 You’re my angel이란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 역시 보기 좋은 장면이다. 나는 가수다에 나갈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참 노래 잘 부른다라는 인상을 갖게 만드는 라이브 공연이 영화 속에도 나온다.

 

치코와 리타

 

 

 

  이 영화의 장점은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영상, 감각적인 분위기, 그리고 과거의 그 아름답고 낭만적인 분위기, 그리고 인생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스토리 등은 애니메이션 수준을 한층 높인 영화다. 하지만 그런 좋은 요소들 중 음악의 매력은 단연 압권으로 이 작품이 제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대상으로 이끈다. 특히 라틴 재즈의 매력은 매우 강렬해서, 영화 OST는 그 자체로 걸작이다.
  과거의 우울함과 낭만을 지닌 1948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가 클럽의 노래하는 가수 리타와 어느 밤에 만나는 것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그 둘의 만남은 사랑과 열정, 그러면서도 탐욕과 질투, 그리고 오해 등이 뒤엉키면서 아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여러 화려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당시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배경 속에서 아름다운 라틴 재즈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데, 아마도 인생이란 길이 어떻게 되는지를 슬프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음악은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원스 어게인

 

 

 

  이 영화는 2007년 <원스>라는 영화의 후속편이다.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인으로 발전한‘글렌 핸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그들의 생활과 음악을 동시에 담은 영화 <원스 어게인>을 만들었다. 영화는 이전 영화의 큰 성공을 기반으로 세계 투어를 시작하는데 그 때 둘의 관계는 다소 우울하게 되고 만다. 그런 갈등 속에서 인기 뒤에 가려진 음악적 고뇌와 사랑의 재확인 등 둘이 겪게 되는 많은 사연들을 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정말 그들의 인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들은 음악인이기에 영화엔 음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그들의 뛰어난 라이브 공연은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음악 영화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는 분명 영화음악으로 주목 받아야 마땅하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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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많이 힘들어진다. 어른이 되어서인지 지나온 세월만큼 책임의 무게를 느끼면서도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 역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짐의 하중은 결코 줄어들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 시간, 사람은 그래서 지치기도 하면서 낙담하게 된다. 성공의 가치를 부나 명성의 크기로 잰다면 성공이란 표현이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럭저럭 사는 정도의 수준을 의미할 뿐이다. 언제나 목표는 사람을 이렇게 지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목표가 끝났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목표가 연이어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타성이든 선입견이든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미래의 일정 소득이 없을 때의 상황을 걱정하기에 피곤한 것들을 다 이끌고 미래라는 시간으로 다가간다. 과거의 모든 부담을 짊어진 채로 미래로 달려가는 모습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과 같다. 여행은 어떻든 즐기는 것이 목적인 행위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에 반하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은 그 목적에 반하는 것이 된다. 무거운 것은 부담이고 고생이다. 그 고생을 위해 설마 여행을 가려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자위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계획을 제대로 하거나 아니면 짐을 덜어야 한다. 지혜롭지 못한 여행은 고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깨우침이 없기에 그렇게 하는 우를 범한다. 이 책은 이런 어리석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첫 글부터 인상적이었다. 잔뜩 짊어진 짐의 강점을 자랑하려 했던 딕을 깨우치게 했던 마사이족의 코에이의 질문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목적만을 지상 과제로 삼고 끊임없이 내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약점을 송곳처럼 찌른 ‘이 모든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줍니까?’라는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크나큰 자성을 이끄는 말일 것이다.
  세상살이가 재미없어진 것인 것은 경제적 풍요가 붕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무척 큰 상관관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 호황기에도 인생의 절반을 지닌 이들은 언제나 고민이 많았다. 어쩌면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나이나 상황에 따른 책임과 임무를 부여 받기에 편한 날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고행이란 것은 경제 호황기나 불황기를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인생을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 때문이다. 성적표에서 원하는 점수나 등급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 대다수는 그런 결과치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적표엔 경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설사 이겼더라도 다음 단계의 승부가 기다리고, 그래서 과거의 짐을 잔뜩 안고 나서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그래서 점점 무거워지는 짐들 때문에 힘겨워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포기 못한 책임들까지 힘겹게 짊어지면서 다음 인생의 일정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들에 억지로 매달려 사는 인간들이 자신의 삶 절반에 다다를 때조차도 그 이유도 모르면서 힘겹게 사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 책은 그런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인생의 진미는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닌 그 여정 속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는 도전이 아니라 그 도전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것들이야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자유를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의 인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언제나 준비하고 떠날 것을 권고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여정 속에서 새로운 활력과 여유를 얻을 수 있고, 역시나 과거의 책임을 떨쳐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면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래라는 여정을 즐길 것을 권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생이 편안한 것을 아닐 수 있어도 미래의 새로운 선택이 마냥 즐겁거나 편안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선택 속에서 과거의 짊을 덜어 내고 좀 더 여유로움 속에서 미래로의 여정 과정을 즐기면서 간다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는 분명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그것은 꼭 현재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정의하고 과정을 즐기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새로운 길의 개척만큼의 새로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겠지만 인생의 어느 쯤에 한 번 해봄직하고,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탈피, 자신의 인생의 참맛을 느끼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쉽지 않지만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