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나침반 The compass of Zen>은 숭산(崇山, 1927 ~ 2004)스님의 가르침을 현각(玄覺, 1964 ~ ) 스님께서 엮은 책이다. <선의 나침반>은 불교 입문자들에게 '불교(佛敎)가 무엇인가?'를 전반적으로 잘 소개한 책이라는 평(評)을 받고 있다. 좋은 평가에 맞게 간결하면서도 핵심(核心)을 설명하고 있어 불교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데 도움이 되며, 특히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 <선의 나침반>은 어떤 방식으로 불교(佛敎)를 알려주고 있을까. 먼저 책의 제목인 <선의 나침반>의 의미를 서문(序文)에서 살펴보자. 


 '이 책의 제목을 왜 "선의 나침반"이라고 지었는가? 부처님은 우리 인생이 "고해(苦海)"라고 가르쳤다. 모든 사람들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또 다시 태어나고, 우리의 욕망과 집착 때문에 우리는 고해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산스크리트로 이것을 "삼사라(samsara, 輪回)"라고 부른다. 돌고돌고 돈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지혜(prajna)의 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배에는 다른 배들과 마찬가지로 나침반이 필요하다.'(1권 p17)


 '불교 가르침의 진수는 바로 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깊이 함으로써 "오직 모를 뿐......" 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우리의 본성, 참 나(眞我)를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불교는 단지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길(道)이다. 그 길의 이름이 "오직 모를 뿐"이다.'(1권 p28)


 우리가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진리'를 가르키는 진리의 나침반을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나침반을 발견하는 과정이 참선 수행일 것이다. <선의 나침반>에서는 진리 그 자체보다 참선 수행의 목적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여기에 필요한 불교 지식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선의 나침반>에 소개된 여러 내용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리뷰를 작성해 본다. 


 1. 불교(佛敎)와 물리학(Physics)


 <선의 나침반>에서는 불교의 우주관(宇宙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 세계를 시간과 공간으로 구분하고 우리의 상황이 세계 안에서 어떤 관계(인과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세계는 시간과 공간으로 나뉜다. (p112)... 우리가 스스로 시간과 공간을 만든다. 원인과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간이 조건과 결과를 지배한다면 시간은 원인을 지배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인은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수평선과 수직선에 비유해 보면 시간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이며 공간은 수직선이다. 원인은 항상 어떤 조건을 가로질러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다고 할 때 그 상황은 공간이다. 나의 상황은 나의 위치, 방, 관계, 집, 경험, 삶이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원인은 어떤 조건, 상황을 가로질러 "고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1권 p119)

 

 이와 같은 불교의 우주관을 우리는 현대 물리학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의 장(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운동(運動), 그리고 그 안의 질서를 찾아내는 학문이다. 자연의 법칙을 찾는 물리학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불교를 발견하게 된다. 

 '먼저 이 행위들이 전개되는 연출무대는 공간space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space and time임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삼차원이지만, 그래프에는 직선(일차원)으로 표시하도록 하자. 즉, 수평축은 공간을, 수직축은 시간을 나타내는 그래프에 사건의 위치를 표시하기로 한다.'(p138)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







[그림] 시간과 공간 (출처 : http://hkpark.netholdings.co.kr/web/manual/default/manual_print.asp?menu_id=107589&id=2773)


2. 불교와 기독교(基督敎)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내 인식틀은 '기독교'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 신자들의 인식과는 차이가 생겨나지만, 그런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의 나침반> 안에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된다. 그 이유는 <선의 나침반>에서 숭산 스님께서 불교의 용어로 불교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불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 '열반적정'을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자. 


 '열반적정(涅槃寂靜), 생사를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난 피안이다. 신을 찾고 싶으면, 또 부처를 찾고 싶으면, "참 나" 혹은 "절대"를 찾고 싶으면, 당신은 이 완벽한 정적과 소멸의 상태를 얻어야 한다. 이 정적이란 진정한 공이다. 우리 마음과 우주의 본질이다. 14세기에 지어진 한 기독교 시(詩)는 이것을 아주 맑게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은 깨끗하고 텅 빈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모든 모양이 나타난다.

 그것이 본성품이 되어

 밝음과 어둠, 고요함과 폭풍이 된다.


 The God who is pure emptiness(空)

 Is created as form(色)

 Becoming substance, light and darkness,

 The stillness and the storm.'(p140)


 또한, 프랑스 신부님들과의 대화를 소개한 다른 대목에서는 비록 책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의 시간관(時間觀)과 불교의 시간관이 서로 통함을 발견하게 된다. <선의 나침반>에서는 바로 '지금' 이 우리가 성불(成佛)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선사님께서는 "원점(primary point)"이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원점과 하느님의 창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프랑스 신부의 질문)...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단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테이블을 치는 것은 생각 이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부처님 이전입니다. 우주 이전입니다.... 법화경은 바로 이 지점이 어떻게 우리의 본성이고 모든 현상의 본질인지 깨닫게 해준다. 실제 우리는 바로 지금, 바로 이 장소가 아닌 때에 부처가 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 뭔가를 하겠다는 마음이 이미 부처의 마음이다.'(1권p192)


 이와 관련하여 아우구스티누스 는 <고백록> 11권에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당되는 내용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리뷰에서 옮겨본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관련 내용 : http://blog.aladin.co.kr/702641187/8621064] 

<고백록> 11권에서는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1)"는 구절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주된 내용으로 다루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신(神)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개념이다. 하느님(神)의 시간은 영원이며 불변이다.  '시간'과 '공간'마저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조 이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시간은 인간에게 있어, '현재'로 존재한다. 인간에게만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 안에서 시간을 재게 되고, '미래->현재-> 과거'라는 일련의 흐름으로 통해, 생명의 확장이 일어나게 되고, 끊임없는 시간의  확장을 통해 하느님께  영혼이 흘러간다는 것이 아우구스투스의 '시간론'이다.


 '차라리 시간은 셋인데 과거에 대한 현재, 현재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현재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 셋은 영혼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고 다른 곳에서는 이것들이 안 보이며, 과거에 대한 현재는 기억(記憶)이고 현재에 대한 현재는 주시(注視)이며, 미래에 대한 현재는 기대(期待)다'. <고백록> (11권 20,26) 


 이처럼 <선의 나침반>에서는 불교와 다른 종교가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어 하나만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眞理)가 결코 언어(言語)의 형식에 좌우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은 아닌듯하다.


 '나는 미국 가톨릭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참선 지도를 할 때마다 한번도 "부처"라거나 "불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대신 "신성(神聖)"으로 바꿔 불렀다. 수도사들은 아주 행복해했고 우리 모두는 완전히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2권 p185)


 3. 진리를 깨닫다


 이러한 다른 종교의 세계관(世界觀), 교리(敎理)가 통할 수 있다는 점은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는 과정은 <요한 복음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8장을 통해 잘 드러난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If you remain in my word, you will truly be my disciples,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요한 8 : 31 ~ 32)


 한편, <선의 나침반>에서는 '선원(禪圓 The Zen Circle)'을 통해서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깨달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0도는 "작은 나(small I)"이다. 90도는 "업을 가진 나(Karma I)"이다. 180도는 "나가 없는 나(Nothing I)"이고, 270도는 "자유로운 나(Freedom I)"이다. 그리고 360도는 "큰 나(Big I)"이다. "큰 나"란 시공을 초월한 것이다. 나와 너는 하나이다. 선 수행은 바로 이 360도에 도달하는 것이다.'(2권 p128)


 '"나"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만물의 실체를 깨닫는 것이다. 360도에 오면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꽃은 붉고 벽은 하얗다. 나와 이 세계가 언제나 하나가 된다. 그러면 순간순간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된다. 큰 사랑과 큰 자비로 오로지 중생을 돕는 것. 그것이 바른 삶이다.'(2권 p130)


  이처럼 <선의 나침반>은 불교입문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여러 관점에서 불교를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 신자 뿐 아니라 나와 같은 타종교인들도 편견없이 불교에 대한 개관(槪觀)을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ps <파인만의 일반인을 위한 QED강의>의 출판사가 '숭산' 스님과 발음이 비슷한 '승산' 출판사라는 것은 '불교'와 '물리학'과의 관계와는 무관(無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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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15:49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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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2 15:5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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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11:5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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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3 13:04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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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5-24 0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 인식으로는 시간과 공간은 나뉘지 않습니다. 굳이 나눠야 한다면 차라리 그것은 [시간-공간] 한 경계 그리고 다른 [시간-공간] 이 이어지는 연속체이자 무한 다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같이 움직이고요. 과거를 떠올리면 공간과 시간은 따로 오지 않습니다. 함께 옵니다. 여튼 이것도 제 사고실험일 뿐이겠지만요.
시간과 공간을 나누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선적인 세계에 갇히고 인과론적 사고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이런 사고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만. 10차원 상상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죠.

선의 나침반은 저도 읽어보려 한 책인데, 제겐 좀 실망스러운 소식이네요;

겨울호랑이 2017-05-24 07:52   좋아요 1 | URL
^^: 제가 쓴 리뷰가 <선의 나침반>에 대한 전체 내용을 정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리뷰에서 언급한 구절이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잡고 끊임없이 정진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깨닫지 못해서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空)의 세계에서는 시간-공간의 구분도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설명 자체가 필요없겠지요.) 그럼에도 1권에서 ‘시간-공간‘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일반인들과 함께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책의 내용과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호른(Horn) 또는 프렌치 호른(French horn)은 나팔꽃 모양의 금관악기다. 발생적 기원에 관하여서는 트럼펫과 같으나 호른이라는 것은 '뿔(角)'을 의미하므로 특히 뿔피리(角笛)를 그 기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날 호른의 직접 조상은 유럽의 수렵용 호른으로서 특히 프랑스에서 발달하였다.'[출처 : 위키백과]


[그림] 호른


뿔피리에 기원을 둔 호른의 유래를 우리는 <롤랑의 노래>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에스파냐의 마르실왕은 조약을 깨고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가 철수한 틈을 타 롤랑의 후위부대를 공격한다. 롤랑의 후위부대는 피레네 산맥의 롱스포에까지 추격당했다. 롤랑의 전우이자 지략가인 올리비에는 롤랑에게 구원을 청하라고 세번 청한다. 롤랑의 큰 뿔나팔 올리판트는 멀리 있는 샤를마뉴대제의 군대에까지 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롤랑은 오만했다. 자신은 명검 듀렌달을 가지고 있었고 최고의 기사라고 생각한 롤랑은 구원을 청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고 롤랑은 자기 주위에 약 60명 가량만이 남았을때야 비로소 뿔피리를 불어 구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뿔피리 소리를 들은 샤를마뉴 대제가 군대를 돌려 싸움터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모두가 전멸한 뒤였다...' [출처 : 위키백과]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 의 요약

 

1. 하프(Harp)


'18세기 하프 유행은 그야말로 여성의 멋내기 유행 같은 거 아닐까요? 하프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악기죠. 연주 자세에서 예쁜 손과 우아한 팔, 아리따운 옆모습이 돋보이기도 하고... 맞아요. 그 시대는 하프가 살롱의 장식물이었죠. 하프는 로망스들과 함께 했죠. 마리 앙투아네트도 하프를 연주했답니다...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을 빼놓을 순 없어요.'(p78)


 '더블 액션 하프가 개발됨으로써 하프는 오케스트라와 음색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서는 하프가 곧잘 음들을 미끄러지듯 연주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효과를 자아내죠.'(p79)


2. 호른(Horn) / 프렌치 호른(French Horn)


'모난 데 없는 부드러운 소리 덕분에 프렌치 호른은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를 이어주는 중재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약간 불분명하면서도 유유한 느낌의 호른 소리는 우리의 친구 쿠르티나 씨 같은 명연주자의 손안에서 더욱더 매력을 발합니다...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호른 협주곡>들도 빼놓을 수 없죠.'(p82)


3. 팡파르(Fanfare) : 트럼펫, 호른, 트롬본, 튜바


'제가 맞게 이해한 거라면 팡파르는 금관악기들의 4중주네요...현악 4중주나 4중창만큼 완벽하게 일체를 이루는 4중주는 아니죠. 앞에서 얘기했듯이 호른은 금관악기와 목관악기를 중재하는 역할입니다. 요컨대, 이걸 4중주로 치자면 각 요소의 음색이 꽤 상이한 4중주에요. 그래도 현대음악에서 확실한 성공작을 하나 꼽자면 폴 뒤카의 <라 페리>를 여는 팡파르가 있지요.'(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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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1 10:5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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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1 11:0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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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1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뷔시의 <달빛> 하프 연주 버전도 좋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21 16:53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cyrus님 추천으로 들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1950년 7월 25일 - 29일 충북 영동 인근노근리 마을로 가는 쌍굴다리에서 미군 제7기갑여단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자는 약 400여명. 인근 마을 주민이 500-600명 중 일부만 살아남은 그 날의 기록이다.

「그 여름날의 기억」은 한국 전쟁 이후 신속하게 도망간 이승만 정부의 모습과 보도연맹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무기력한 정부와 극심한 혼란 속에서 7월 23일 미군이 임계리로 들어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국민들한테 서울을 사수하자고 그처럼 떠들던 정부가, 국민들 몰래 서울을 버리고 도망쳐 왔단 말인가. 겨우 사흘밖에 버티지 못하고 서울을 적 앞에다 내던진 무책임한 정부. 겨우 그런 정부에게 속고 버림받은 불쌍한 국민들...‘(p55)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마을로 들어온 미군들에의해 주민들은 강제로 피난하게 된다. 공산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주민들과는 달리 미 제1기갑사단과 제25보병사단은 피난민 속에 적이 있을지 모르니, 모든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해 ‘총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이미 받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고루 나눠 갖고, 고루 잘 살게 해 주는 나라를 만드는 게 공산주의라는 것이 그이들이 아는 전부였다.‘(p91)

사흘 동안 계속된 총격, 폭격과 기총소사 후 미군은 살아남은 일부 생존자를 치료해 주지만, 노근리 굴다리에서의 학살은 계속 되었다. 정작 굴다리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해 준 것은 그들이 그토록 피해가고자 했던 ‘인민군‘이었다.

‘군의관들은 창자가 들여다보일만큼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아내의 오른쪽 옆구리를 꿰매고 수액을 꽂아 주었다... 한 쪽에서는 죽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치료해주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두 얼굴을 한 이방인들.‘(p514)

「그 여름날의 기억」은 3일 동안 일어난 한국전쟁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국현대사가 담겨 있다. 노근리 사건속에 그려진 무책임한 정부, 미군문제, 민간인 학살과 피해 등의 문제는 지금도 우리와 연관된 문제다. 위안부 문제,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사건, 베트남 파병, 5.18민주화 운동, 6.10 민주화 항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그 일련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살아왔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런 역사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현대사의 문제 해결은 이에 대한 ‘응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너무 가슴아프지만,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으리라.

2017년 5월 18일.
「5.18 기념식」에서의 대통령 연설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의 상처 치유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마지막으로 노근리에서 숨져간 모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편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그 여름날의 기억」은 흑백채색의 만화책이라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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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5-20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작은연못>도 수작이었어요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겨울호랑이 2017-05-20 15:16   좋아요 2 | URL
저는 아직 영화를 못봐서.. 저는 「작은 연못」을 봐야겠군요. 북프리쿠키님 좋은 영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7-05-20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만화책이 있었군요. 좋네요.
이번 정부는 국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조사와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사려깊은 보상이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20 15:47   좋아요 1 | URL
전체 페이지가 620페이지라 조금 두툼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수 있습니다. 시이소오님 즐거운 토요일 오후 되세요^^:

2017-05-20 20:27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0 20:37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5-20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네바 협정
민간 주민 및 민간 개인은 군사 작전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에서 보호되어야 하며 적대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는 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금지된다

기억은 저절로 갖는 것이 아니예요
망각에 힘을 다해 저항할 때 비로서 갖게 되는 결실이죠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겨울호랑이 2017-05-20 20:50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무기력에 빠진 이들이 폭력을 가졌을 때의 그 잔인함에 대한 기억은 또다른 불행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revoman 2017-05-22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 비군 → 미군 맞나요? ^^

겨울호랑이 2017-05-22 06:41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revoman님 덕분에 오타 수정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第四次 産業革命, 영어: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4IR)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낸 혁명 시대를 말한다. 18세기 초기 산업 혁명 이후 네 번째로 중요한 산업 시대이다. 이 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무인 항공기, 무인 자동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과 같은 6대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다.


 세계 경제 포럼 창립자 겸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의 저서 《제4차 산업 혁명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서 이 네 번째 혁명이 기술 발전에 의해 특징 지어 졌던 이전의 세 가지 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웹에 연결하고 비즈니스 및 조직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며 더 나은 자산 관리를 통해 자연 환경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출처 : 위키백과]

  

<4차 산업 혁명의 충격>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4차 산업혁명의 파급 효과,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 변화 등에 대한 내용을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새로운 기술(디제털 제도, 사물인터넷, 모바일 금융 혁명, 합성생물학, 로봇) 등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발전 전망과 필요한 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의 충격>의 서문에서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특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이 이전 산업혁명과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속도, 범위,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그것과 구별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라고 보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속도와 범위 그리고 시스템에 미치는 충격이다. 현재와 같은 비약적인 발전 속도는 전례가 없다.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비교하면, 4차 산업혁명은 산술급수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산업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혁명에 따른 변화의 폭과 깊이는 생산, 관리, 통제 전반에 걸쳐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한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연결된 수십억 인구는 전례 없이 빠른 처리 속도와 엄청난 저장 용량 그리고 편리한 정보 접근성을 갖춤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해질 것이다.'(p18)

 

[사진]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아이폰(iPhone) (출처 : ttps://estimastory.com/2013/10/05/therebeaniphone/)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한 후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스마트폰으로부터 파생된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이 사실이지만, 한가지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스마트폰이 인류 역사에 가져온 변화는 전례없이 혁명(革命)적인 것인가? 4차 산업에 대한 수많은 낙관적인 전망과 예찬으로 가득한 <4차 산업혁명의 충격>속에서  '기술낙관론에 대한 반박(마틴 울프)' 장(章)에서 이에 대한 답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과거의 혁신은 오늘날 상대적으로 사소한 혁신보다 훨씬 더 큰, 정량화되지 않은 가치를 창출했다. 전화가 없던 세상에서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나 석유 램프를 사용하던 세상에서 전등을 사용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깨끗한 물과 수세식 화장실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누가 정말 인터넷에 관심을 두겠는가?... 우리가 상대적으로 사소한 우리 시대의 혁신에 감동하는 이유는 과거의 혁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p166)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요즘이다. 2016년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이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16년 말로 기억된다. 2016년 12월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클라우드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을 읽는다는 기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제19대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이와 관련한 공약을 제시하면서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사회전반 모든 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다.  마치 4차 산업혁명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곧 도태(淘汰)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년)의 일화를 떠올리게 된다.


 '1929년 10월 14일 월요일 저녁, 어빙 피셔는 뉴욕의 파크 애비뉴 2번지 건축가 교류 클럽에 도착했다. 그는 예일 대학 경제학 교수이며 동시대 가장 저명한 경제학자로 구매관리자협회의 월례 미팅에서 연설하기로 되어 있었다... 피셔는 인사말이 끝난 후 안타깝게도 주식 시장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을 언급했다.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는 고원의 경지에 이르렀다(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

 

피셔의 연설이 끝난 2주 후인 10월 29일 주식은 폭락했다. 그가 말한 ‘고원의 경지’는 ‘끝없는 심연’으로 바뀌었다. 그 후 3년간은 주식 시장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약세장이었다.. '


   많은 이들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끊임없이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하는 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업규모에서 2005년 '블루오션 Blue ocean', '6시그마 Sigma' 등의 신경영기법이 제시되었고, 국가 차원에서는 2008년 '녹색성장', 2013년 '창조 경제'라는 구호가 등장했었다. 세계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IT 혁명이 그러한 패러다임의 예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념들이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여러 현상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같은 시대의 우리가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18세기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 ~ 1819)가 증기 기관을 개량하면서, "자, 이제 산업혁명시대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200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림] 제임스 와트와 증기기관( 출처 : http://unibranding.tistory.com/272)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차원으로 가볍게 읽을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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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19:1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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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19:32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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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8 23:35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07:00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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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5-19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레미 시겔 교수의 저 책을 구판(『제레미 시겔의 주식투자 바이블』)으로 읽었는데, 어빙 피셔의 호언장담은 지금 다시 들어도 여전히 배우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존 템플턴 경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라고 말했던 ˝This time it‘s different˝ 라는 문장도 다시금 생각나고요. 그런 착각들이 ‘튤립 파동‘과도 같은 엄청난 버블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지구는 돌고, 4차 산업혁명은 거센 물결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으니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인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19 14:20   좋아요 0 | URL
^^; 네 oren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oren님 말씀처럼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잘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발이 딛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항상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겠지요. 다만, 이러한 흐름을 잘 타지 못하고 휩쓸려가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oren 2017-05-19 14:2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댓글을 보니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대사 한토막이 떠오릅니다.^^
* * *
인간사에는 조류라는 게 있어
시류를 잘 붙잡으면 큰 행운으로 이어질 수 있소;
놓치게 되면 앞으로 헤쳐가야 할 운명은
얕은 여울에 처박혀 비극으로 점철될 것이오.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면,
지금 밀려들어오는 만조를 붙잡아야만 하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험은 실패할 것이오.
- 『줄리어스 시저』, <4막 3장> 중에서

겨울호랑이 2017-05-19 15:01   좋아요 2 | URL
^^: orens님 좋은 구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님께서 알려주신 글 뒤에 이 구절을 추가해 봅니다.

그러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불행과 공포를 잊어버리시오.
아마 이 고생도 그대들에게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오.
온갖 파란을 겪고, 그토록 많은 위험을 뚫고 우리는 라티움으로 향하니, 그곳에서 운명은 우리에게 안식처를 줄 것이오. - <아이네이스 제1권 202 ~ 205 -

oren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은 아마도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한 말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줄리어스 시저>를 읽지 않아 조심스럽습니다만, 불확실성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oren 2017-05-19 17:51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께서 인용해 주신 『아이네이스』의 싯구도 정말 좋군요. 그런데 제가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안타깝게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이 아니랍니다. 그는 <3막 1장>에서 죽으니까요. ˝브루투스, 너 마저?˝ 라는 명대사와 함께요. 4막 3장은 <줄리어스 시저>의 ‘진짜 주인공‘인 브루투스가 카시우스(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와 함께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 ‘필리피 평원‘으로 군대를 이동시키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브루투스의 대사‘랍니다.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끝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의 군대에 패배한 끝에 장렬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지요.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최후‘를 ‘그림‘으로 구경하시고 싶으시면 ☞ http://blog.aladin.co.kr/oren/6884723

겨울호랑이 2017-05-19 18:09   좋아요 0 | URL
^^: 그렇군요.. 나중에 <줄리어스 시저>를 읽을 때 해당 구절을 찾아 읽어야겠습니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필리피 평원에서 부르투스의 죽음을 다뤘다면, 또다른 작품인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악티움 해전으로 인한 이들의 죽음이 다루어졌는지도 궁금해집니다.^^: oren님 덕분에 세익스피어의 작품세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oren 2017-05-19 18:48   좋아요 1 | URL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무대 장면‘이 무려 42번이나 바뀌는(全 42장) 연극으로도 유명하더군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그만큼 ‘전세계를 누비며‘ 연애를 했기 때문인데, 그 가운데 ‘악티움 해전‘을 빼놓을 수는 없죠. ‘막강한 육군 병력‘을 갖춘 안토니우스가 어리석게도 좁은 항구를 가진 ‘악티움‘에서 해전으로 맞붙은 것부터가 잘못이었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그 전쟁에 클레오파트라를 끌어들였다는 점이 더욱 문제였죠. 그리고 그녀가 겁을 먹고 이집트로 달아나니까 ‘자기가 총사령관인 줄도 잊어버리고‘ 그녀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간 것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고요. 플루타르코스는 그 대목을 가지고 안토니우스를 엄청나게 질타했는데, 셰익스피어는 도리어 ‘세계의 절반 혹은 전부가 걸린 싸움‘도 포기하고 자신의 연인을 먼저 챙기는, ‘세계 최고의 훈남‘으로 잔뜩 미화해 놓았더군요. 하여튼 ‘안토니우스‘는 두 희극에서 한 번은 주연으로, 한 번은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그 남자를 보면 매번 ‘두 가지 생각‘이 겹쳐 떠오릅니다. 진짜 찌질남 같기도 하고 엄청난 훈남 같기도 해서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7-05-19 18:4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한 작가의 작품에서 같은 인물이 그렇게 다르게도 그려지는군요. 안토니우스와 같이 여인으로 인해 평가가 달라지는 ‘당 현종과 양귀비‘를 작품화한다면 참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사 2 - 아리랑 김산에서 월남 김상사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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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史 02>는 2003년 한겨레 신문에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기사를 편집한 책으로 1권에 이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짚어내고 있다. 2권에서는 외국인 차별과 베트남 파병 문제, 독재정권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독립 투사와 김일 성 문제, 군대와 병역 기피 역사, 학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 파병, 군 비리, 사학 문제 등을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자.


1. 반(反) 중국인 폭동과 베트남 파병


 우리는 과거 1923년 발생한 간토대지진(關東大地震) 당시 일본인에 의해 약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음을 '관동대학살'의 이름으로 배웠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책은 우리가 저지른  1931년 7월 발생한 만보산(萬寶山) 사건과 이로 인해 발생한 반(反)중국인 폭동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왜 전국적으로 발생한 반(反)중국인 폭동이 유독 평양에서만 집중적인 살상극으로 발전했을까? 전국에서 희생자가 고루 발생하였다면 모르지만, 평양에서만 집중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평양의 폭동에 "검은 손"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컸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즉 일본, 특히 만주의 관동군과 연결된 조선 주둔 일본군이 만주침략을 앞두고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p23)


  이 폭동의 결과 국제 연맹에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사망 127명, 부상 393명, 재산피해 250만원이었고, 1930년 말 6만 9천명의 화교인구는 1933년말 3만 7천명으로 급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나라에 화상(華商)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국세의 90%와 국민소득(NI)의 60%를 화교사업가가 장악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출처 : KOTRA)처럼 국가 경제가 화교 손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정한 시장 경쟁이 아닌 잘못된 민족주의의 결과로 '화교의 이탈'이 발생했다면, 그리고 그 결과 화교의 세력이 약해졌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반성(反省)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또 자주 분노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분노하고, "일본군 성노예(정신대)"만행에 분노하고, 또 재일동포들에 대개 가해지는 차별에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해자가 되었던 사건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p27)


 지금도 우리는 일제(日帝) 하 위안부 문제와  졸속으로 합의된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로 반성없는 일본을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과거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寬大)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우리의 잘못을 '베트남 파병'과 당시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통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베트남 학살 문제에 대해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구조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에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원인을 병사들의 심리상태 등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이는 구조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한국군의 작전은 1930년대 만주에서 일본군이 조선과 중국의 항일유격대를 대상으로 엄청난 폭력을 수반한 채 진행한 집단부락 건설 중심의 비민(匪民) 분리 전략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한국군의 수뇌부는 일본군, 만주군 출신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조선인으로 구성된 일제의 유격대 토벌부대인 간도특설대 출신들은 한국군의 수뇌부에 대거 포진했으며, 한국 전쟁 중의 "공비토벌 작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p31)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제기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문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다. 비록 아픈 역사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냉철한 반성이 필요하다. 반성없는 우리를 세계는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계는 우리를 이스라엘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Holocaust)을 비난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 人에게 이루어진 무자비한 탄압은 유대인들의 아픈 역사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픈 역사의 청산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반성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사진] 팔레스타인 분쟁(출처 : http://www.eatoncatholic.org/CatholicNews/view.asp?b_id=3599&offset=0)


2. 국민방위군과 통영함 


  1950년 12월 15일 '국민방위군 설치 법안'에 따라 약 50만명의 장정이 소집되지만, 이들은 군번도 무기도 군복도 지급받지 못한채 100여일 사이에 5만명이 죽고, 수십만명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각 교육대 간부들은 국민방위군을 며칠씩 수용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예산과 식량을 빼돌렸다. 이런식으로 빼돌린 예산이 수사당국의 발표로는 24억원, 국회조사단의 주장으로는 50억원 내지 60억원에 달했다... 부사령관 윤익헌이 100여일 동안에 기밀비 명목으로 쓴 돈이 3억원. 국가기관인 감찰위원회(지금의 감사원)의 1년 예산이 3천만 원가량할 때였다.... <중앙일보> 간행의 "민족의 증언"에는 50만명의 대원 중 2할 가량이 병사나 아사했다고 되어 있고, <부산일보> 간행의 "임시수도 천일"에는 사망자가 5만명으로 되어 있다.'(p180) 


  '국민방위군 사건'은 당시 만연한 군(軍)비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6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우리는 과연 과거의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발생한 해군 구조함인 통영함의 어군탐지기 문제는 지금도 군 비리 문제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국가권력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또 다른 학살이었다. 이 사건은 다른 학살 사건처럼 방위군 병사들을 총을 들고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보급품과 식량을 지급하지 않고 횡령해 수만 명을 굶어죽고, 얼어죽고,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한 사실상의 학살 사건이다... 자신들의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에 대한 태도가 이런 지경이었으니 잠재적인 적이나 통비분자(通匪分者)들로 분류될 수 있는 민간인 집단에 대해 적극적인 학살이 일어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p185)


[사진] 통영함과 어군탐지기(출처 : http://m.blog.naver.com/thaitour/220185952493) 


3. 사학 재단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1911년 이상룡을 주축으로 윤기섭, 이시영, 이회영 형제와 김형선, 이장녕, 이장직, 이동녕 등 군인 출신이 중심이 되어 서간도(길림성 류하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으로 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의 전신이다.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들은 서로군정서 의용대,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며 민족 해방에 크게 기여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사진] 신흥무관학교(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hyh45&logNo=20123575985&parentCategoryNo=23&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우리나라에서 근대 사립학교는 국권 수호와 민중 계몽교육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 많은 사학들이 기득권들의 부(富) 세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학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5년 사립학교법을 통과시켰으나,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재개정된다. 


  '2005년 사학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한 사립학교 법이 통과되었다.  학교법인 이사 중 3분의 1과 감사 2인 중 1인을 교수회,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이 참여하는 사학구성원 단체가 추천하여 선임하는 개방형 이사제 및 공익 감사제, 학교 법인 이사 정부를 7인 이상에서 9인 이상으로 확대, 학교법인 임원간 친인척 비율을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은 2007년 재개정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출처 : 위키피디아) 


[사진] 한나라당의 사학법 반대(출처 :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2892&table=byple_news)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사학재단의 문제는 타인이 설립한 학교를 불법으로 갈취하고 이를 불법승계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면에서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사학 비리의 모습을 전 대통령 박근혜의 정수장학회(正修?學會)에서 발견하게 된다. 


 '현재(2003년) 사립학교의 학교 운영비를 보면 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 부담금이 2%에 불과하고, 사립대학은 6%에 머물고 있다. 사립학교의 운영비가 실질적으로 등록금이나 시민들의 혈세에 의해 조달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립학교들이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이 사학재단 관계자들과 수구세력은 언필칭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른 소유권의 절대성을 들먹인다. 그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학재단의 경영권을 빼앗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홍위병에 의한 문화혁명" 또는 "인민 위원회의 사학 접수"라는 터무니없는 언사를 써가며 반발하고 있다.'(p224)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라기보다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 민법 규정에 따르더라도 사학 이사진은 사학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다. 백 보를 양보해서 사학재단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분규가 발생한 사학의 경우 현재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설립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거액의 사유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다.'(p224)

 

<대한민국 史 02>는 2003년에 씌여진 교양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지적한 문제들이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문제로 계속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역사는 발전하고 있는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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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12:0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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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12:1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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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12:27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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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7 12:39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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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7 14: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뉴라이트의 실체를 알아보려고 《대한민국사》를 참고한 적이 있어요. 어두운 실체가 치밀하게 활동하고 있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9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겨울호랑이 2017-05-17 14:53   좋아요 3 | URL
<대한민국사>를 뒤늦게 읽고 있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에 대한 정리가 쉽게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님 말씀처럼 우리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혼란스럽기만 했던 어두운 실체들의 정체를 미리 알았더라면, 잃어버린 9년의 시기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닷슈 2017-05-17 14: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출간즘에 한권한권 기다리며 보던기억이 나네요 바뀐게없고 악화될거라곤 당시엔상상도못했죠

겨울호랑이 2017-05-17 15:03   좋아요 3 | URL
네 불과 일주일전까지 더 나빠질까 걱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네요. 다행히 일단 더 뒤로 가는 것은 멈췄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멉니다..

닷슈 2017-05-17 15:04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시이소오 2017-05-17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정말 쓰고싶었던 독후감 인데 겨울호랑이님이 먼저 쓰셨네요.
왠지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17 20:57   좋아요 0 | URL
휴, 먼저 쓰길 잘 했습니다. 시이소오님께서 지난 여름 작성하신 <한국현대사산책>처럼 리뷰를 작성하셨다면, 저는 리뷰 대신 아마 100자평으로 정리해야 했을 것 같아요. 시이소오님께서 후에 여유있으실 때 <한현산> 후반부 리뷰를 작성해 주시길 고대하는 1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