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이주희 지음, EBS MEDIA / Mid(엠아이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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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양과목에 철학이 있었다. 동서양의 사상가들을 공부하는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지루하기만 했던 기억이다. 당시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를 따지며 고뇌하기엔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고 미래를 향한 장밋빛 꿈을 꿀 때였으니까. 물론 선현들의 가르침을 새겨들을만한 마음가짐이나 기본소양이 모자라기도 했고. 세월이 지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어른들 말씀을 떠올릴 때가 많다. 바쁘게 지낼 때는 시련이나 실패를 겪어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삶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마침 그렇게 마음이 술렁거릴 때 이 책을 만났다. 서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철학자가 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는 문구가 나온다. 옳거니. 나는 지금 철학자의 지혜가 필요할 때인가 보다 생각했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일수록 많은 사상가가 등장한다고 한다. 고통과 갈등이 고조되는 절망의 시대가 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력감에 빠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고 새 시대를 만들기 위해 ‘생각’의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시작된 것이 철학이라는 걸 알게 되니 옛 사상가들의 이론을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삶으로서의 철학으로 받아들일 기분이 생긴다. 공자(孔子), 맹자(孟子), 묵자(墨子), 장자(莊子), 한비자(韓非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헬중국’이라 할 만큼 난세였다고 하는데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생긴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욱 도움이 되는 혜안일 듯싶다.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 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 간교한 기득권에 맞설 때’ 처세에 필요한 지혜를, 나아가 생존을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공자의 도를 하나로 꿰뚫는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서(恕)’이다. 상대방과 나의 마음이 같다고 보는 글자로 풀이하면 ‘공감’으로 해석되는데, 인간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타인과 함께 바람직한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말 중의 하나인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가 바로 공자님 말씀이셨던 거다. ‘네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주라’는 성경의 <마태복음>보다 훨씬 공감이 가는 개념이다. 원하는 건 각자 다른 경우가 많지만 원치 않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법이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고, 묵자의 ‘민중 철학’은 인간을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지니게 한다. 쓸모없는 나무라서 베어지지 않은 탓에 무럭무럭 자라나 커다란 그늘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장자의 사례가 있듯이 쓸모라는 올가미에 걸려 쓸모없음을 지탄하거나 자학하지도 말자. 도망치지 않고 현실에 당당히 맞서 해결책을 찾는 한비자의 정신을 배우도록 하자.

 

이 모든 사상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근본 개념은 사랑과 배려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만든 사랑의 물방울이 모여 커다란 물결을 일으킨다면 결국은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리라. 지금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이기적인 인간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먼저 시작한다면 언젠가 모든 이가 ‘겸애’로 물드는 날이 올 것이라는 묵자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 항상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용기라고 한다. 깨어날 용기, 당장 실천할 용기, 한걸음 내딛을 용기가 말이다. 그동안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늘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다독이곤 했다. 그건 결국 값싼 사탕발림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희망이 생기려면 우선 실행에 옮길 용기부터 가져야한다는 진리를 망각한 채 일어나지도 않고 걷기를 바란 것이다. 집착을 버리면 초월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좌절을 견디면 새로운 날이 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현재를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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