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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이틀 전에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그 봄에 수백명 넘는 국민이, 자신들을 보호해야할 군인의 손에 비참하게 죽어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전두환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IMF.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었고 가족 동반 자살이 줄이 이었지만 역시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누구 하나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세월호. 꽃다운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어갔지만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아직 모르긴 해도 선원 몇 명외 달리 처벌 받을 사람을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정권 차원에서 책임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병자호란. 우리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였고 굴욕이었으며, 무려 50만명이 포로가 되었던 그 전쟁에서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심지어 전쟁의 책임자들은 포상까지 받았다. 고통은 오롯이 백성의 몫이었다. 강희진의 새 소설 "이신"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단죄를 사적 복수로 대행하고 있다.
배경은 병자호란 직후. 이씨 왕조에 충성하라는 뜻으로 "이신"이라 이름 붙여진 주인공은 청으로 끌려간 청태종의 부하, 즉 두 임금을 섬기는 이신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받던 그는 병자호란의 책임자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영의정의 아들 김흥진을 죽이러 간다. 그러나 김흥진은 이미 자객의 손에 죽어있고 그 자객마저 또다른 자객의 손에 살해당한다. 조선의 무능하면서 뻔뻔스러웠던 집권세력을 대표하는 인물 김흥진.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다는 말인가.
이 소설의 미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역사소설로서 "이신"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은유한다. 병자호란 직후 집권세력이 보여준 후안무치한 모습은 선생님의 말처럼 "40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무능하고 파렴치하며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을 고통에 빠트린 왕, 혹은 집권자가 있다면 그는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섣불리 용서나 참회, 관용을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권력의 문제만 되면 너무나 쉽게 화해와 화합, 용서를 말해왔다. 심지어 눈앞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고스란히 죽었는데도 눈물을 내세우며 도와달라고 말하는 뻔뻔한 모습까지 봤다. 왜 서해야 하는가? 백성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늘 백성들만 도탄에 빠지는데 왜 그들에게 베푸는 용서는 그렇게 쉬운가? 왜 복수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왜? 이것은 권력자는 손댈 수 없다는, 처단할 수 없다는 학습에서 나온 우리의 비겁이 아닌가.
둘째, 스릴러로서 소설은 매우 뛰어난 짜임새를 보여준다. 스포일러 때문에 말하기 힘들지만 죽이러 갔던 자가 목격자가 되고, 살인자가 피해자가 되며, 추적하던 자가 추적당하는 아이러니를 이 소설은 매우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 이것은 가치의 전도라는 소설의 주제와도 맞물리면서 소설의 구성이 주제에 기여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야심차게 추리소설과 러브 스토리, 통렬한 복수극을 병자호란이라는 배경 속에 잘 버무려 넣었다. 빼어난 캐릭터를 보여주는 인물들(특히 환향녀 김씨 부인과 조선시대 오렌지 걸 정이는 특히 빼어나다!)과 함께 이야기는 긴장 넘치게 진행된다. 400 페이지 가까운 분량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훌쩍 다 읽을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이야기이다. 이만한 이야기의 재미는 근래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마지막 장면이다. 왕은 죽었어야 한다. 나쁜 왕은 죽는 것이 맞다. 하지만 왕은 죽지 않는다. 역사소설이기에 작가 마음대로 왕을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