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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 - 자본시장과 투자의 미래, 사모펀드 이야기
최우석.조세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월
평점 :
평소 자본시장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는 걸 좋아한다.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예전에 신문을 구독할 때는 따로 스크랩북을 만들기도 했다. 경영학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사모펀드에 대해 간략하게 배운 적은 있었다.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을 암기했던 것도 같은데 모두 단편적인 정의에 그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반가웠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사모펀드에 대한 내용은 정말 얄팍했다. 소수의 비공개집단이 자산을 운용하는 기구라고 들었고, 같은 수업을 들었던 대학 선배가 비슷한 곳에 들어갔는데 정말 업무량이 말도 안되게 많다고 하고, 사모펀드에서 돈을 굴리는 액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등... 그냥 카더라로 들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미지의 영역을 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실제 사모펀드 업계에 종사하는 분과 그 업계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분의 공동 집필로, 생생한 정보가 담겨있는 책이다. 저자가 사모펀드 일을 하면서, 저녁엔 대학원에 다니고, 동시에 이 책을 집필까지 했다는 부분을 읽고 놀랐다. 아무리 시간은 쓰면 쓸수록 나온다고 한다 해도, 시간을 쪼개 책을 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서론부터 얻을 정보가 많았다. 사모펀드가 어떤 일인지 대략적으로 감이 올 수 있는 서론이었다. 투자 결정을 하고, 기업이 생존과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민하는 게 이 일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동안 사모펀드에 대해 황소개구리 같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었고, 나 또한 론스타 사건 등을 접하면서 그런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인식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사실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서 '경영자의 마인드'로 기업을 바라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럴 때마다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그런 마인드는 현실적으로 갖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론을 읽으면서 딱 이 일은 그런 마인드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되지만 멋진 일인 것 같다. 또한 요즘 기업의 미래 먹거리 산업, 미래 트렌드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하게 또 나온다. 역시 투자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 시장의 흐름이 뭘지 고민하고, 앞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이윽고 본론에서는 사모펀드가 무엇인지, 어떤 구조로 운영되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모펀드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사모펀드 제도는 2004년에 국내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2021년 1분기 기준으로 900여개에 가까운 사모펀드가 존재하지만, 2005년에는 15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는 오늘날 사모펀드의 수가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사모펀드는 MBK 파트너스밖에 없었고, 많아봤자 50여곳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추측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모펀드 제도가 생겨난 배경엔 IMF로 인한 M&A 시장의 변화가 한몫 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사실 여기엔 다 적을 수 없지만, 기업의 다양한 사례와 함께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특히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국내의 유명 엔터사들의 인수합병에 관한 사례였다. 얼마전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콘서트에 저스틴 비버가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다. 비록 비대면으로 무대를 따로 했지만, 어쨌든 하이브라는 기업이 정말 크게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하이브가 국내의 여러 사모펀드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고, BTS를 성장 사다리로 삼아 크게 성장하고, 저스틴 비버가 속한 엔터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다른 대형 소속사들의 성공, 실패 사례를 읽는데 예전에 회계학 수업에서 SM, YG, JYP 세 회사의 회계처리의 특징에 대해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던 게 떠올랐다. 내가 엔터 회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사모펀드와 함께 성공한 기업들을 다룬 챕터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친숙한 기업들이 많이 나왔다. 공차 코리아가 대만의 공차 본사를 인수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맘스터치의 사례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 시절 맘스터치에서 잠깐 알바한 적 있는데, 그당시 대학가에서 맘스터치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 맘스터치가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땐 좀 의아했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을 읽고 왜 매각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인수 후 원가를 절감하고 임원을 정리한 뒤에, 영업이익을 대폭 올렸다는 부분에서 감탄했다. 사모펀드가 기업의 문제를 치료해주는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모펀드를 굴리는 기관투자자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사모펀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는 정말 궁금한 부분이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궁금증이 많이 해결된 것 같다. 크레딧 마인드와 에쿼티 마인드에 대해 다룬 부분이 인상깊었다. 사모펀드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일반투자에 비해 한 건에 거액의 금액이 투자되고, 회수 기간도 길다. 그리고 한 번의 실패로 큰 투자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 신중한 투자가 중요하다. 원금을 최우선으로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익률을 확실히 내는 것도 중요하다. 공격과 방어 전략을 적절하게 취하는 능력이 꼭 필요한 게 기관투자자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멋있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상적인 부분을 위주로 적었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이 있었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목차를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목차가 정말 잘 짜여있어 책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한 300페이지가 약간 안되는 분량임에도 많은 내용이 들어가있던 것 같다. 딱딱하지 않은 재밌는 책이었고, 여러 매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급 정보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여러번 더 펼쳐볼듯 하다. 사모펀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흔치 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