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북콘서트 갔다왔다.

기대치에는 못미쳤지만,  나름 메뉴얼 같은 책을 구입하게 되서 좋다.

보고서의 핵심은 핵심이다.

문제는

나의 보고서는 윗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보고서를 쓰는게 아니라

거꾸로 오더를 받아서 쓰는 보고서이기 때문에, 그 사업에 대한 당위성을 느끼지 못할때

참으로 난감하다.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본인들 실적만들기^^)

그 이유와 근거를 짜내서 보고서를 만드니,, 영혼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쯤 바뀔 것인가...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뻘짓의 버뮤다 삼각지대

(과장데스크-나의 데스크- 프린트의 삼각지대)

굳이 이 책을 보는 이유는 보고서에 들이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자동판매기처럼 만들고 싶다.

누르면 나오는, 머리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오게 빨리 만들고 싶다.

그래야 내가 여기에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들은 여러개의 팁중

*요약 = 용건(주장/설명) + 근거/이유

이 구성으로 개요 1장 만들고 나머지는 첨부로 처리할 것.

정말 이렇게 구성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조직에 적용하기 위해

이 강사님 좀 모시면 좋겠다.

* 또 하나 추진배경과 목적의 차이점 / 목적과 기대효과

추진배경은 좀 더 거시적으로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현황은 미시적이적이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목적은 사전적 단계에서 추상적인 것, 기대효과는 사후적 단계에서 나오는 성과물 등 ..

맨날해도 헷갈린다.

 

오늘도 6장의 계획서를 만드느라 거의 하루를 보냈다.

(사실 어제 만들었는데, 사진몇장 넣었더니 날라갔다...ㅅㅂ)

편집도 그렇고, 구성, 배열도 그렇고, 시간만 많으면 점점 완벽해 질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많은가? 아마 이 보고서를 들고 과장한테 가면

대수술 또는 쁘띠시술을 받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사업도 아닌데, 하고 싶은 사람이 좀 쓰면 좋겠다.

 

암튼 먹고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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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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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투를 좋아한다 뭐라고 해아할까 콧웃음치는 말투? ‘ㅎ 라깡이 뭐라하는지 들어보자‘ 마치 이런말투
내가보기엔 ‘ ㅎ‘ 이 리듬이 사사키 아타루 전매특허같다
마루야마겐지의 영향도 받은것 같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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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그리고 기분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나는 나의 할 일을 하면 되는것이고,

그러다보면 기분이 또 나아졌다가 또 나빠졌다가,

그릇의 고인물이 언제나 새것일수 없으니까.

기분이 나쁜 원인을 찾는 일들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뭔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원인 뭐가 되었던, 알고 싶지 않다.

눈 뜬지 두시간 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경멸의 브런치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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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의 일이다.

나는 머리가 길어서 묶으려고 정수리 높이 머리카락을 모아

머리를 묶어서 말꼬리 같은 머리를 돌돌감아 똥머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똥머리 모양으로 둘둘만 머리가 실뱀이였던 것이다. 

에그 징그럽다.

다행히 그 하얀뱀은 아주 가늘어서 그리 무섭진 않았다.

뱀의 조그만 아가리가 낼름 거렸다.

 

뱀의 꿈 오랜만이다.

꿈의 시작에서 나는 여지 없이 깨버린다.

 

그 밖에 많은 꿈을 꾸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날듯 말듯.

낮동안 잠깐씩 이미지만 스치고 지나갈때가 있다.

그럼 그것이 실제일인지 꿈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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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미학 - 타락과 위반의 중세 미술, 그리고 발튀스
백상현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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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여백이 없다.  폰트가 크다  

 다만, 저자의 의도처럼 떠다니는 공백은 있는 것 같다.  리뷰쓰기가 쉽지 않았다.

라깡을 공부하는 중이기는 하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낯설어지는 사태를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프라 안젤리코 회화의 반복되는 동심원과 같이 끝없이 변주되는 라깡의 이론을 가지고, 그가 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자적 환상을 미학으로 보여준듯 하다.

 

   발튀스의 작품 기타레슨을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아마 당혹스러워 했을 것이다. 젖꼭지를 쥐고 있는 아이의 손을 주목하며, 소녀도 학대가 아닌 쾌락의 당사자인 것이 특이했다. 변태가 프로이드식 승화를 실천을 한 것인가? 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발튀스는 94세까지 소녀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었다고 한다. 발튀스는 자신의 그림이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소녀의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왜일까.

단순이 자신의 소아성애적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그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중세의 히스테리적 전통에 맞닿아 있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잘한다)

 

소녀의 엑스타시의 표정과 중세 성녀의 표정은 닮아있다. 예수 고난의 고통으로 흘러내리는 이미지와 그의 소녀들은 같은 포즈로 흘러내린다. 발튀스는 고통으로 표현되는 주이상스의 전통을 은밀히 이어간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통과 쾌락은 같은 이름.

고통이 쾌락이라니.. 주체는 고통이 뒤집힌 쾌락일 수 있다는 것. 쾌락에 대하여 무지하다.

 

  중세는 성상파괴의 시대, 신의 재현이 불가한 시대로, 화가들은 진리를 그리는 대신 이미지의 왜곡을 택했다고 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회화는 불안정한 구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저자는 중세미술이 신의 재현불가능성을, 해석을 거부한 그림들에 대한 히스테리적 성향을 발튀스가 이어받았다고 제시한다.

 

 " 특정한 고통의 이미지가 문명속에서 반복적으로 은폐되어 있다면, 그 이면에 절대적 쾌락에 대한 암시가 은폐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숨겨진 예수고남의 이미지는 교회로부터 생산되어 서구 인들의 사고 속에 스며들었던던 것이도, 이것을 재료로 해서 민중의 무의식은 고통의 쾌락의 변증법을 조작해냈다 .....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고 콰르통의 피에타 작품은 욕망 대상 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이미지가 안정된 쾌락의 영역을 벗어나, 죽음충동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마조히즘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발튀스는 100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오던 성화상의 은밀한 전통을 이어받고자 했던것이다. "

- 119~120P -

 

조금 더 읽어보면,

저자는 아버지의 팔루스가 되고자 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자기 동일시하는 존재로서의 남성이 그리는 욕망의 구도는 예수고난의 매맞는 아이의 환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튀스의 작품에 나타난 이미지들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욕망의 대상이, 팔루스가 질서로부터 빠져나가는 사태다. 흔들리는 욕망의 대상, 흘러내리는 팔루스는 그것을 사로잡으로 하는 문명이 시도를 실패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파라오시스로 부터 시작해서 만딜리온과 프라 안젤리코를, 그리고 시모네 마르티니를 경유하며 살펴보았던 병적인 이미지들의 역사에 하나의 계보가 형성되어 있음을 증명해 준다. " -133P -

 

저자가 말하는 악마적 미학의 계보는 우리가 정상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해독 불가능한 사태를 악으로 규정한 것일뿐 진리의 전령을 부르는 증상과도 같은 균열이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발튀스는 독자적 환상을 구축함으로써 상징계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진리의 절차로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만의 독자적 환상의 구축을 자신만의 반복으로 추구함으로써 타자의 권력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얘기한다. 그 독자적 환상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상징계를 벗어나는 일. 실재에 가까이 가는 길..

 

 

 

발튀스는 후기로 갈수록 소녀를 지운다.

여기서 저자는 발튀스의 작품이 공백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욕망의 대상이 공백으로 전환되어 대상자체의 속성으로 지우고 욕망자체의 역능만 남아있게 된다고,,

도대체 nothing을 어떻게 욕망할 수 있을까?

끝에 가서 잘 이해가 안간다.

대상을 욕망을 하지 말고 욕망만을 남기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

어떻게 해야 할까.. 대상에 대해 속성을 지우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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